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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내 '행복한 밥집'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3. 7. 3.

  제 "행복한 밥집"을 소개해 드리죠. 주소는요 아직 정확히 밝힐 수가 없어요. 왜냐면요 주소를 밝히게 되면 손님이 넘쳐나서 더는 행복한 밥집을 운영할 수 없게 될지도 몰라요. 저는요 조금 벌어서 벌은 만큼만 먹고 살자 주의거든요. 사실은요 지금 제 몸무게보다 30킬로쯤 줄일 계획인데 이것저것 다이어트를 많이 해봤지만 다 소용없었어요. 오직 한가지 최후의 방법으로 굶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중이에요. 그럴려면 식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제 수중엔 돈이 없어야 하거든요. 무슨 까닭인지 저는 돈만 생겼다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아이스크림과 화이트 초콜릿과 제가 시드니에서 먹었던 티본 스테이크 이랍니다.
  하여서 이제는 제 행복한 밥집은 집세를 내고 전기료, 수도세가 밀리지 않을 만큼 가끔 책을 사볼 수 있고 친구들에게 선물할 음식재료들을 간당간당 하게 살 수 있는 정도의 돈만 벌 수 있도록 운영될 계획이랍니다.

  그래도 어디인지 궁금하시다고요. 그럼 조금만 힌트를 드릴까요?  영남이 오라버니가 부른 화개장터 기억하시나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변을 따라 달리다 보면 화개 장터가 나오고요. 거기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한국의 걷기 좋은 길, 하동 십 리 벚꽃길이 나와요.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딱 6㎞, 십 리(4㎞)가 아니라 십오리 길이랍니다. 그러니까 화개장터에서 모암마을쯤 그 거리 어디쯤에 있어요. 앞쪽으론 섬진강 지류인 계곡과 지리산 자락이 딱 버티고 있고요. 뒷쪽으론 산자락마다 녹차밭이 누워 있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무릉도원일 그 어디쯤 구석에요.

  메뉴가 궁금하시다고요. 보통때는요.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그리고 허브차 종류를 팔아요. 애석하게도 식사메뉴는 없답니다. 요리사인 저와 식사를 하실 손님이 그때그때 정하는 수 밖에 없어요. 물론 제 의견이 90% 정도가 되겠지요. 나머지 10%는요 가령 손님들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어떤 연령대인지 무슨 음식을 드시고 싶으신지 힌트만 주신다면 그 힌트에 맞춰 요리사인 제가 창작하는 거랍니다. 미리 염려하실 것은 없어요. 맛이 없어 후회하신다면 환불정책도 있답니다.

  요리는요 하나의 예술이에요. 그리고 그 창작의 기쁨은 오로지 요리사와 드시는 손님 몫이죠. 전 사실 요리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랍니다. 그런데요. 제 사랑이 일편단심이면 좋으련만, 아니 일편단심이었으면 지리산 자락으로 안 왔겠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 다분히 카사노바와 대적할 만한  팜므파탈 부류의  여자랍니다.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아요. 가령 말이에요. 시 같은 것, 소설 같은 것, 영화 같은 것, 음악 같은 것과도 사랑에 빠졌고 심지어는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게 소원 중의 하나랍니다.

  행복한 밥집을 잠깐 보여 드릴까요?  밥집은 제 서재겸 식당이 되겠지요. 테이블이 세 개밖에 되지 않아요.  그 중의 하나는 제 전용테이블이어서 저는 온종일 그곳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때론 그림을 그리겠죠. 나머지 두 테이블만 손님용이에요. 식사는 전부 예약제로만 운용되죠. 인원수에 상관없이 오만 원 이상만 그것도 이틀 전, 48시간 전이 아니면 예약할 수 없어요.

  그럼 혼자서 제 밥을 드시고 싶으신 분은 어떡하느냐고 요. 요건 비밀이지만 제 글을 읽는 분에 대한 감사로 살짝 귀뜸을 해드리죠. 제가 먹는 밥을 같이 먹는 거예요. 어느 땐, 라면도 될 수 있고 어느 땐 쌀국수도 될 수 있고 김치찌개도…. 그러나 늘 색다른 맛을 즐기실 수 있답니다. 가격은 얼마냐고요. 돈으로 환산하지 마세요. 재능기부나 물물교환 어떠세요? 가령 노래를 부르시는 분은 저를 위해 한가락, 기타를 치시는 치시는 분은 저와 함께 '작은 연인들'을 부를 거예요. 시인은 시를 낭송해주시고 화가는 즉석에서 무엇인가를 스케치해주실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재주가 없으신 분은 어떠냐 구요. 가져오실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좋아요. 달걀 몇 개, 푸성귀 몇 개, 아하, 제가 풀을 좋아하니 마당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풀꽃 또한 환영해요. 한 가지 더 노력 봉사도 있지요. 가령 수도가 고장 났을 때 저에게 줄 밥값 대신 수도를 고쳐줄 수도 있겠고 전구가 나갔을 때 전구를 바꿔 줄 수 있는 아주  소소한 것들이니 겁먹지 마세요. 사실 은근슬쩍 철수님의 철철마다 바뀔 감성돔이며 볼락구이, 산낚지, 숭어회와 송국님의 성게비빔밥과 종남쌤의 녹차도 잊지 않겠어요. 이만하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겠지요.

  아하, 하마터면 주의 사항이 하나 있다는 것을 놓칠뻔 알았네요. 노여워하지 마세요. 저에게는 애인이 있답니다. 애인이란 꼭 남자일 필요는 없답니다. 오직 두 세 시간을 나를 만날 일념으로 한 달에 한 두 번씩 날아올, 그 간절함을 확인할 두 명의 애인이 있답니다. 애인이 오시는 날엔 절대 예약도 안되고 밥도 같이 먹을 수 없답니다. 그러나 문은 활짝 열어 놓을 거예요.

  그 또는 그녀와 나의 테이블엔 어떤 날은 개망초가 어떤 날은 엉겅퀴가 어떤 날은 나팔꽃이 심지어 보랏빛 수국을 품은 꽃병이 놓여 있을 것이에요. 반짝반짝 빛나는 포도주잔에는 여름에는 시원한 백포도주가 담길 것이고 다른 때는 바디감이 넘쳐나고  장미꽃 향기가 진한 적포도주, 가난한 연인들이지만 이날 만큼은 2만 원 이상을 넘지 않는 선에서 두 병의 포도주를 비울 거예요. 그 테이블 주위론 때론 말로가 때론 에릭샤티와 바흐와 피아졸라와 쳇 베이커와 카루소와 비쇼츠키가 흐를거예요.

  제 볼은 분홍빛으로 변할 것이고 제 목소리는 평소보다 두 옥타브쯤 높아지겠죠. 내 가난한 애인은 코를 벌렁거리며 내 음식을 음미할 것이고 난 싹싹 바닥까지 드셔 주세요 애원할 것 같아요. 애인의 배는 남산만 해질 것이지만 식사가 끝난 후 연인들은 하동 십 리 길을 팔짱을 끼고 걸을 거예요.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마세요. 부비부비는 생략이랍니다. 난 무서워요. 몸정이 들면 집착이 들 것이고 집착만큼 괴로운 것은 인생엔 없답니다.

  아무것에도 누구에게도 메이지 않는 심지어는 사랑까지도 메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 제 최대의 꿈이랍니다. 조르바 같은, 조르바보다 더 자유로운...

 

 

  자, 이런 제 '행복한 밥집'의 단골 손님이 되어 주시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