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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92번째 외출 - 日常茶飯事 72 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3. 6. 19.

  한 여자가 있었어. 그녀는 오랫동안 아니 평생 오직 하나의 꿈만을 간직하고 살았지. 마당이 있는 집을 골라 꽃밭을 만드는 일이었어. 너무나 작은 꿈이라서 남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꿈은 그녀의 가슴속에서만 늘 서성거렸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그녀는 한 사내를 만났데. 그녀는 그의 냄새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나 봐. 그의 냄새가 나는 공간에서 세상을 향해 긴장을 풀 수 있었고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든 그녀의 인생에 몰두할 수 있기를 바랐지. 그녀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던 거야. 그의 전 생애 동안 오직 그녀만을 사랑하고 그녀 또한 단 하나의 남자만을 사랑하며 평생 하나의 생을 온통 함께 사는 것, 그들의 냄새를 다른 냄새와 뒤섞지 않는 것, 그녀의 꿈은 그것뿐이었으며 그것은 흡사 하나의 이념과 같이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고 또 믿었지. 비로소 그녀는 그의 냄새를 사랑하기 시작한 그 순간에 그녀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확신은 그녀를 불꽃으로 만들었어. 비록 미세하지만 너무나 활활 타서 그 불꽃은 그를 그만 데우고 말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사실은 말이야. 비록 그녀가 그의 냄새를 사랑하기 시작한 순간도 그는 전혀 그녀를 마음에 두지 못했지. 그는 그랬어. 진실한 사랑이란 일생에 꼭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하다고. 그리고 자신의 사랑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이제는 욕망만 남았을 뿐이라고. 삶에 대한 욕망이란 육체의 욕망과 비례 되는 것뿐이고 지금 자신의 삶은 그 욕망을 쫏는 일이라고. 그것이 자신의  온전한 삶을 이루는 방향이라고 했다지. 그녀와 그의 방향은 너무 달랐어. 차라리 평행선이었다면 마주 보며 달리거나 걸을 수도 있었겠지. 전혀 낯선 두 방향이라서 차라리 다행이었을성싶지만 여자는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못했지. 왜냐면 그녀는 자기 직감을 믿었거든. 그녀의 평생에 처음으로 누군가의 냄새를 알아차리고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운명이라고. 운명이란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나봐.

  "사랑은 거절할 수 없는 미혹이며, 독이 펴지는 듯한 도취이며, 백다섯 조각의 처형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사랑이란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독자적 영역이다. 더없이 신성하고 더없이 누추한, 비상이면서 동시에 추락인 이상한 벼랑이다."
  지금은 나는 알겠어. 그녀의 사랑이 더없이 신성하고 더없이 누추한, 비상이면서 동시에 추락인 이상한 벼랑이라는 사실을…. 전경린이 그랬다지. 아마도 청춘의 그녀들에게 사랑의 단면들을 보여주고 싶었나 봐. 그녀는 더는 청춘이 아니었음에도 여전히 사랑에선 청춘의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던 것 같아. 생각해 보니. 비상과 추락의 극점에 있어본 자만이 인생이 허락한 오미 五味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아. 더는 사랑의 아픔은 아픔일 수가 없겠지. 아니 오히려 아프면 아플수록 쾌감의 극점에 도달할 수가 있겠고 그 지점을 통과할 때에야 비로소 삶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언젠가 친구가 그러더라. 인생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허락한다고. 아마도 그녀가 어떤 식으로든 사랑의 오미를 경험한 그 후에도 여전히 새로운 사랑을 꿈꿀 수 있는 그런 여자가 되어 있기를 바라게 되는 밤이야. 또한 그 언젠가 꼭 그녀의 꽃밭에 채송화도 사루비아도 분꽃도 피어나길 기도할래.
  나도 잠시 오늘 밤은 그녀가 되어 어떤 간절한 심정이 되고 싶다. 가령 말이야.
  "그대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 생각은 조금이라도 하지 않을까. 보고 싶다. 이 순간에 전화가 울려주던가 아니면 짧은 문자라도 보내준다면….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때론 그대도 나를 생각할까. 그대의 마음을 알지 못해 막막한 이 심정을 짐작이나 할까."

  이런 생각 말이야. 아무튼 삶은 신비하고 그 신비의 꽃은 사랑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