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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88번째 외출 - 日常茶飯事 70 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3. 6. 17.

참으로 놀라워. 전경린의 장편소설 '최소한의 사랑'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어쩜 그렇게 문체가 감각이 넘쳐나고  사랑에 대한, 인생에 대한 아포리즘이 곳곳에 숨어있는지…. 내가 쓰고 싶었던 글들이라서 놀랐어.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 그러나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책, 아마도 그래. 다분히 전경린의 소설은 나처럼 현실과 상상 사이를 순간마다 오가는 덜떨어진 인간들에게 알맞은 글들이구나 생각돼 피식 웃었어. 아마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며 그냥 던져버렸을 것도 같아.
"인생이 그렇게 만만하냐, 그런 감정놀음하느라고 진 빼지 말고 호미라도 들고 콩밭이나 매라."

  뭐 그럴 사람도 있을 법한 그런….

  책을 읽으며 생각을 좀 해야 되겠다, 혹은 언젠가는 약간씩 비틀어서 표절의 뒤탈이 안 날 정도만으로 인용할 구절들을 카메라에 담아두면서 읽고 있어요. 어떤 여자의 사랑법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야.
 "그들은 최소한만 이 땅에 살고, 최소한으로 사랑하고, 그리고 36도의 체온이 정제시키는 여백 안에서 가능한 한 자유롭게 존재하고 싶어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곁에서 사는 동물들이나 다른 대륙에 사는, 전혀 모르는 타인들과도 최소한의 사랑을 적극 나누려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그 최소한의 사랑을 적극 나누려 하는 사람이 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어. 적극적인 최소한의 사랑을 하며 가능한 한 자유롭게 존재하고자 하는 방식으로의 삶이 바로 내가 꿈꾸는 삶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 사랑이 지난 뒤, 아니 믿었던 사랑에 배신을 당한 뒤라도 자신의 최소한 사랑이었으므로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물론 아픔도 있겠지, 하지만 자신의 근본엔 흔들림이 없는…. 영악한 사랑이지. 그래, 남들이 볼 때는 영악하단 판단이 옳아.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 길만이 자신의 삶을 가장 잘 사는 방법이라는 확신하고 있거든.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 말야.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을 했어. 나는 그런 사랑을 선택하겠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랑을 위해 나는 오늘도 인내하겠어.
 사람마다 삶의 색깔이 다르고 무엇을 제1순위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다분히 개인적 취향이야. 난 내가 좀 순수해서 그 모든 것 위에 사랑이란 것을 놓았으면 좋으련만, 그렇질 못하는 나에 대한 씁쓸함이 쓸쓸하기만 한밤이야. 그녀가 묻더라. 오늘.
  "넌 네 인생에서 지금 가장 힘든 것이 뭐니?"

  서슴없이

  "내 건강"

  이라고 답했지. 아니 처음에는 그랬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죽음의 이별."

  그랬더니 하나만 택하래. 그냥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건강"이라고 대답했더니 그녀가 이렇게 졸가리를 타더라.

  "사람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답은 천차만별일 것 같아.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은 아마 돈이 제 일 순위의 아픔일 것 같고, 사랑을 잃은 사람은 그것이 가장 아픔일 것 같고…."

  맞는 말이긴 한데…. 생각해보니 부끄럽지만, 세상에 내 존재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타자의 존재,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인식하의 내 사랑방식에 대한 생각에 조금 어지러운 밤이야.
  아, 이른 장마가 시작하나 보다. 굵어지는 빗방울이 반갑기 그지없네. 소낙비라도 쫙쫙 쏟아져 내려 내 안의 맺힌 것들이 혹여 있다면 씻겨 내려가 주길 바라는 밤이야. 사실은 말이야, 내가 많이 아프지 않은 게 이상스레 부끄러워. 모든 상황이 어쩜 그렇게 이해될까, 널 이해한다는 것이 사실 짜증이 나. 묻고 또 물었지. 가끔은 말이야. 내가 좀 나사가 하나쯤 풀린 여자 같아. 이틀을 찔끔거려 얼굴이 퉁퉁 부어버린 주말을 지내고 나니 오늘부턴 왠지 또 다른 내가 기다리고 있었어. 더는 아프지 않고 나는 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은근히 기쁜 하루였다면…. 내 최소한의 사랑방식을 감탄하는 밤이 기다리고 있어서 좋아. 오늘 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