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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당신은 무엇을 욕망하는가? - 日常茶飯事 69 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3. 6. 9.

  며칠 전 우연히 TV를 보다가 뜻하지 않은 좋은 강연을 듣게 되었답니다.
" 내가 원하는 욕망을 직시하라."라는 제목의 왕따를 경험했다던 변호사 임윤선씨의 강의였답니다. 30대의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서울대 출신의 여자 변호사의 명쾌, 상쾌한 강의를 들으며 이것 또한 나를 위한 강의가 아니었나 융의 "동시성의 원리"가 작동한 것은 아니었나 무릎을 쳤답니다. 요즈음의 내 화두 중의 하나와 일치되어서 무척 반가웠던 강의였지요.

 지금까지 내 삶은 욕망을 직시하기보다는 행여 누구에겐가 내 욕망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고 살았다고나 할까. 육체적 욕망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욕망까지도 늘 채우지 못해 혹은 발현하지 못해 갈증에 허덕였다고나 할까요. 난 내가 크게 욕심이 없이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그러더라고요. 아주 꼬맹이 때부턴 욕심이 많았다고.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욕심은 많았는데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요.

 

  아니 어찌 생각해보면 내 욕망을 누르고 사는 길만이 우아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자신을 수없이 다독이며 살았겠지요. 이런 내가 가여워 찔끔거림을 위안 삼아 세상 사람들의 잣대에 나를 맞추어 가며 남들처럼 크게 모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잘 살아가는 방법임을 수없이 자신에게 주지시키면서 말이에요. 그런 삶을 살다보니 어느덧 오래된 습習에 의해 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색깔은 희석돼 버려 도무지 구분할 수 없는 회색빛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어젯밤은 참으로 편안한 밤이었습니다. 일찍 퇴근하려고 나서는데 마음이 동해서 누군가와 밤 바닷가를 달리고 싶었지요. 한 방의 전화에 쏜살같이 나와준 친구를 옆에 두고 창을 있는 데로 열어놓고 달리며 맞는 6월의 밤바람은 마치 비라도 몰아올 듯이 습하기도 했지만 차가운 기운 때문이었는지 상쾌하기 이를 데 없었답니다. 밤바다 너머로 건너다보이는 사람들 세상의 아련한 불빛도 왠지 따뜻해 보이고 가로등 불빛이 바닷물에 비쳐 어우러지는 조화가 어느 때보다도 환상적으로 느껴질 만큼 우린 훨씬 감성적이 되었었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

  남아있는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훨씬 줄어든 지금, 사실은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인생의 제2의 성장통을 걷고 있는 즈음인지라 우리의 화두는 데미안의 그것,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단계가 아닐까, 어찌 청춘에만 그런 시기가 있을까?

 

  "난, 그래. 내 욕망을 따라 살겠어."

  갑자기 "욕망"이라는 단어를 불쑥 꺼내 든 나를 보고 그녀가 희미하게 웃었지요. 어쩐지 내 말투의 결연성이 그녀의 박장대소를 억눌렀을까?

  "그럼, 넌 네 욕망이 무엇인지 이젠 알았겠네?"
  "응.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그럼, 네 욕망에 따라 산다면 그 후의 책임은 고대로 네가 질 수 있을까?"
  "당근이지. 책임질 수 없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어느새 우린 용감한 50대의 아줌마가 되었다. 세월 탓일까, 살아온 연륜 탓일까. 아마도 삶의 지혜의 문턱에 도달하고 있다고 애써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요. 어젯밤엔…

 

  "Desiderare. 이 라틴어는 별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한다는 뜻이야. 욕망의 원래 뜻은 사라진 별에 대한 향수이며 그리움이야. 사라진 별. 그건 별이 인간의 조상이고 고향이라는 의식의 근원이 욕망이라는 말 속에 있는 거야.  모든 욕망은 향수인 거지. 우리는 전혀 모르는 것을 욕망할 수는 없어. 우리가 무엇을 욕망한다는 것은 실은 상실한 것에 대한, 말하자면 소유한 경험에 대한 향수라는 말이기도 해. 과거에 가졌던 것을 우린 욕망하는거야. (전경린,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중에서).

 

  "그래. 무엇을 욕망한다는 것은 우리 내부의 어떤 부분에 이미 내재하여 있었던 것에 대한 그리움, 그 그리움을 우리의 삶에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닐까 해. 그럴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각자의 자아성취, 자신의 삶의 그림을 완성에 이르는 길이 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이제 막 세상의 사는 이치를 터득한 것 같은 그런 쑥스러움 속에는 남아있는 생에 대한 뿌듯한 기대감이 넘쳐나던 밤이었답니다.. 그녀에게 물었지요?

 


  "네 본질 속에 있는 욕망을 발견하는 일, 그것부터 시작해보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