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은 잠자는 것도 먹는 것도 종종 잊으며 맡겨진 책임완수를 위해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정말 화살처럼 휙 시간이 흐른 듯하였다. 그 와중에 한 통화의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나 차상 받았어. 상금은 20만 원."
언젠가 부안에서 마실길 축제가 열린다고 한 날, 시를 쓰는 후배가 전화를 했더랬다. 토요일쯤이었나. 함께 마실길 축제에서 시행되는 백일장에 참석하자는 권유였다. 그냥 여행 겸, 함께 만날 겸 나들이 삼아 건너오라고 했거늘 짬을 낼 수 없어 참석하지 못했음이 못내 미안했다. 만나면 이런저런 할 이야기가 많아 언제 시간이 갔는지 모를 상대이건만 손을 내밀 때 손을 잡아주지 못하는 경우엔 늘 미안함만 앞선다. 그러던 그녀가 부안 바람꽃이라는 주제하에 열린 백일장에서 차상을 받았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장원이 없는 차상이라니 참가자들 중 1등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그녀의 격양된 목소리를 접했으면서도 마침 저녁요리를 하는 참이라서 간단한 인사치레로 축하한다는 말 몇마디가 전부였었다. 마음껏 축하해주지 못한 나를 생각해보니 가끔 이렇게 나는 너무 말을 아낀다는 생각을 많이 들었다. 남을 칭찬하는 일, 남에게 용기를 주는 말에 늘 인색하다는 생각을 하는 즈음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라는 문정희 시인님의 산문집을 읽게 되었다.
"삶의 외줄을 타는 영혼들에 바치는 문정희 시인의 산문집!"
이 얼마나 근사한 화두인가? 사랑의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회자하는 그녀의 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만났을 때의 떨림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도서관 서가에 꽂힌 그녀의 산문집에서 나는 열꽃처럼 피어나는 뜨거움을 즐기는 중이다.
"줄을 탈 때 편하고 행복했지만, 땅 위에 우글거리는 나의 적들은 기실 적이 아니라 나의 문학을 키우는 기름진 재료임을 알았다. 그래도 본질에서 나를 가로막는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싸우고 근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한 가지뿐이다. 창의성의 고갈이나, 열정의 쇠퇴를 걱정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말한다.
그냥 쓰고 또 써라. 그것이 전부임에랴."
그녀는 시를 쓰는 작업을 외줄 타기에 비교한다. 시라는 외줄 위에서 가장 자유롭고 편안한 생명이라는 인식하에 치열한 시쓰기 작업을 일생의 업으로 여기는 시인의 말들이 새삼 마음을 뜨겁게 한다.
또한 터키의 노벨 문학상작가인 오르한 파묵은 그의 "아버지의 여행 가방"이라는 작품의 수상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왜 글을 씁니까? 저는 쓰고 싶어서 씁니다! 제가 쓴 것같은 책들을 읽고 싶어서 씁니다. 오로지 현실을 바꾸었을 때에만 그것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에 씁니다. 종이 연필 그리고 잉크 냄새를 좋아하기 때문에 씁니다.
삶, 세계, 모든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경이롭기 때문에 씁니다. 삶의 그 모든 아름다움과 풍부함을 단어들로 표현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씁니다. 도무지 행복할 수 없기 때문에 씁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씁니다."
오늘 온종일 자박자박 내리는 빗소리를 배경으로 나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읽었다. 내가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내가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며 누군가에게 절실히 필요한 말들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한마디의 말, 한 구절의 언어가 어쩜 한 인생의 길을 밝혀줄 수 있는 그런 일이 될 수도 있는 일, 오늘 저녁은 상금받은 그녀에게도 이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다.
"그냥, 쓰고 또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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