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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귀천 하신 화가 김 점선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09. 11. 12.

화가 김점선.

오래전에 헤이리에서 나는 첨으로 그녈 봤다.

잘 생각나지는 않지만 조그만 갤러리에서 그녀의 개인전을 했던 걸로 기억난다.

그녀의 그림들을 보고선

아! 이렇게 그리는 사람도 있구나.

이런 색감

이런 소재

이런식으로 구성할 수 있겠다.

오다가다 그녀의 인터뷰하는 장면을 슬쩍 훔쳐 보았다.

잘 모르니깐 참 특이한 화가인갑다, 그런 생각을 했다.

얼마전에 그녀의 귀천행을 듣고 쬐금은 안타까움이 들더라.

며칠전 늦은밤 벨리하우스에서 잠깐 그녀에 관한 책을 훝어봤다.

 

 김점선 스타일 1

세상에는 비슷한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마치 오래된 친구같다.

 

"나는 홍진을 사랑한다.

도심을 메우는 빨간 먼지를 나는 사랑한다.

나는 진창 가운데서 살고 싶다.

부대끼면서

늘 먼지를 먹으면서 살고 싶다.

죽어서 지구를 떠난다면

광화문의 먼지,

그 더러운 먼지를 그리워할것이다.

금강산의 절경이 아니라,

광화문의 먼지를..."

 

그녀의 말이다.

 

" 나는 예수의 십자가보다, 사반의 십자가가 좋다.

끊임없이 부대끼고 흔들리고 울고 웃고 미친년 지랄떨 듯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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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예쁜 그림책을 보는 듯하다.

세상의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녀의 색감과 소재가 참 조 오 타.

그녀는 세상에서 놀때는 화가, 영화찍는사람, 통역사, 인터뷰어등등의 많은 직업을 가졌다한다.

귀천하신 몸이 또 그곳에서는 어떻게 노시고 있을까 ?

아마도 천상병시인이나, 공초선생같은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한바탕 신나게 노실 것 같다. 나도 귀천하면

그런분들 딱갈이라도 하고 싶다.

오늘 난 선생의 그림들을 모아놓고 참 부자가 된 듯하다.

 

이런 그림들을 시시때때 들여다보며

내 마음도 그렇게 색칠하고 싶다.

 

 

1946. 4. 24 경기도 개성~2009. 3. 22 서울.
서양화가.
개성에서 태어났으나 6·25전쟁 때 가족과 함께 마산으로 피난 왔다. 어린 시절에도 그림을 그리면서 지냈다. 부산 경남여고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시청각교육과에 입학하였다. 4학년 때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신문에 소설을 응모하였다가 낙방하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우며 신춘문예에 여러 차례 응모하기도 하였다. 졸업 후 이화여자대학원에 들어갔으나 필수과목 수강을 거부해 한 한기 만에 제적당하였다. 고등학교 재학시절에 비트 문학에 심취해 비트의 본 고장인 미국으로 유학하겠다는 꿈을 가졌는데, 이 때문에 대학 재학 중 영어를 열심히 익혀 대학원을 그만두게 된 이후 2년 여 동안 선교사의 통역을 하면서 지냈다.
생을 마감하게 된다면 가장 한(恨)이 될 일이 그림을 못 그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26세의 나이에 그림을 시작하기로 결심하였다. 많은 대학에서 미술학부로의 편입을 허용하지 않아 유일하게 비전공자를 받아주는 홍익대학교대학원에 원서를 넣었고, 1972년 높은 경쟁율을 뚫고 홍익대학교대학원 서양학과에 입학하였다. 이때부터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그 해에 제1회 앙데팡당전에서 파리 비엔날레 출품 후보로 선정되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983년 박여숙화랑 초대 개인전으로 첫 전시회를 시작한 이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시회를 열어 모두 60여 회에 걸쳐 개인전을 가졌다. 2002년 오십견으로 인해 붓을 잡지 못했을 때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같은 해 12월에 첫 디지털 그림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3년 여간 디지털 그림을 그리다가 어깨가 완치된 후 2005년 다시 붓을 들면서 디지털 그림과 유화의 만남을 시도하였다.
그녀는 어떤 미술사조도 따르지 않고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였다. 구도나 원근법을 무시하고 단순하고 투명한 선과 색채로 오리·말·꽃 등 자연을 표현했다. 어린 아이 작품처럼 서툴게 보이는 그림, 동화적인 작품세계 등의 평가를 받지만, 그녀는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은 '자유'라고 요약한다. 그녀는 다작(多作) 작가이면서 또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그림을 그렸기에 원하는 사람이면 큰 부담 없이 작품을 소장할 수 있다. 이는 대중과 나누는 미술이어야 한다는 그녀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직접 자른 짧은 머리에, 사시사철 운동화에 한두 벌의 옷, 거침 없는 솔직한 말투 등 파격적인 언행으로 주위의 시선을 받았다. 그림 그리는 일 외에는 어떤 것에도 구애되지 않았고, 2007년 난소암 발병 후에도 생애 마지막 시간을 작품활동을 하면서 보냈는데, 이때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그렸다. 세상을 떠나기 2주 전 그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준비해온 자서전 〈점선뎐〉이 발간되었다. 작품활동 외에도 1998년 〈나, 김점선〉·〈김점선 스타일〉·〈10cm 예술〉 등 여러 편의 책을 썼고, 양희은·장영희·박완서 등 예술인의 책과 음반 등에 삽화를 그렸으며, KBS 텔레비전 〈문화지대〉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1987년과 1988년 예술평론가협회 선정 미술부문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을 연속해서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