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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공초 오상순을 만났던 그 시절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09. 11. 3.

요즈음 시인 채규판 교수님으로 부터 시 창작에 관한 강의를 듣는 중인데

우리 근 현대시인들의 일화를 듣고 있으면 아련한 옛일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때 엿나.

국어시간에 공초 오상순 시인의 담배야길 듣고

실재로 그런 시인을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꿈 꿔 본적이 있었다.

책장을 여기저기 훝어보니

그뒤 한참을 지나 87년 5월 23일 난 그를 만났나 보다.

물론 공초 선생님은 63년에 여행을 떠났으므로 악수 한 번 못해 봤지만

정공채 시인의 '우리 어디서 만나랴.'란 오상순 평전을 통한 조우였다.

 

 

그 시절을 회상해보면

학교 졸업하고 집안 몰락하고 직장못잡아 빌빌거리며

하루하루 사는일이 버거웠던 시절이었을 게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혹은 잊기위해

뭔가 미친 짓을 해보고 싶었던 시절이었나.

오래돼 누렇게 변색된 책 갈피마다 밑줄 친 글들이 그 시절을 짐작케한다.

 

"사람은 고통의 핏줄을 타고 태어난다. 고뇌하면서 고통하고 고통하면서 소리 없이 울고 또 운다.

이 울음은 원초적인 피울음에 현세의 진통이 더하고

다시 내세의 갈구같은 아련함이 부추켜 들어 끝없는 원형의 울음 - 고뇌와 고통을 만든다.

누가 울지 않고 태어나 보았는가.

그 누가 울음이라는 사람소리를 내 보지 않고 인생을 살았는가.

한 인생을 마감하는 종착역까지 구름가고 물 흐르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도대체가 무엇인가, 하고 회의하고 고뇌한다." -100쪽

 

인생을 고통의 축제라고 노래하는 시인에게 경도됐었나

아니면 그 시절의 나의 암담함을 이겨보고자 하는 발버둥이었나,

 

" 웃는 사람 따라서

  웃지 못함은

  고통이다.

  그러나

  우는 사람 위하여

  울지 못함은

  더 큰 고통이다." -101쪽

 

이다라고 인생의 허무와 고뇌를 노래했던 공초선생의 삶에 몰입했고

그런 삶을 살겟노라고 다짐하며 보냈던 시절.

어찌 어찌하여 수유리 빨랫골 공초 선생의 묘소를 물어 물어 찾아갔었다.

소주한병과 사과 한알, 종이컵두개, 아참 담배 한갑도,,,

그때는 지금처럼 묘소 주위에 철책도 없었고

덩그마니 쓸쓸해 보였던 그곳에서

선생과 나는 소줏잔을 주거니 받거니 횡설수설

한참을 웃다 울다가 내려왔던 그런 시절이 생각난다.

 

그 시절 아마도 가장 절실했던 나의 꿈은

선생처럼

고독했지만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것이었나보다.

그 뒤 어찌 어찌하여

홀몸으로 비행기를 탓었고 십여년 가까이를 떠돌며 살았다.

 

허무의 시인

공초 오상순을 통해

내 젊은 어떤 한 시절은

내 삶에 큰 흔적을 만들었고

그 흔적이 내 인생에 대한 큰 버팀목이 되었었지

라는 생각을 하는 오늘 아침은

그때의 '삶의 열망'이 아직 남아있어

깨어있고 명료한

내 마지막 시간들을 만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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