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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2. 그녀의 수기 2 - 그녀의 당산나무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09. 9. 13.

그녀의  나른한 일요일 아침입니다.

아침 햇살에 걸친 느긋한 게으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입니다.

몽롱한 기분으로 잠을 털어내기 위해 지지개를 켜봅니다.

이쪽 저쪽으로 다리도 올렸다 내렸다 굽혔다 폈다 요상을 떨어봅니다.

오늘은 유난히 허벅지에  난 흉터가 커 보입니다.

족히 2cm나 됨직한 흉터입니다.

유년시절의 훈장입니다.

 

술주정뱅이 사위를 참을 수 없었던 그녀의 증조외할머니는

어느날 갑자기  보따리를 챙겨 서둘러

자꾸만 뒷걸음치는 외할머니를 데리고 떠났답니다.

그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 엄마의 뒷모습을 그리며

주홍빛 하늘이 자박 자박 내려 앉을 땐

봉창문을 열고

"엄마, 엄마" 목청이 터질듯 온몸이 오그라들 듯 울었다는

그녀의 엄마가 있었습니다.

 

형님대신 징용에 끌려간 아버지를 둔 그녀의 아버지는

큰집으로 입양이 됐나봅니다.

대궐같은 천석꾼 집에  자식이 없어 입양은 되었지만

믿었던 큰아버지 마저 징용에 착출되고나서

큰어머님의 머슴일꾼으로 추락했답니다.

징글징글한 농삿일로 이골이 났지만 그래도 참고 견디면 어느날인가

저많은 전답이 내것이 되려니 생각하니 참을 만도 했을 것입니다.

나이차 군대도 갔다와  다시 큰어머님 집으로 돌아왔건만

이미 큰집엔 큰어머님 친정식구들이 들어차있었고

쌀 세가마니를 받고서 쫒겨났답니다.

물어 물어 개가를 든 어머니를 찾아

황등에서 옥구까지 몇십리를

허리춤에 쌀산 돈을 가지고 걸어왔답니다.

막상 그리도 보고 싶었던 어머니를 찾아왔건만

그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으로 근근히 사는 형편에

입하나가 더 얹혀진 형편이었겠죠.

다행스럽게도 떡대같은 건강한 신체를 믿고 날품팔이로 동네일을 전전하다

마침 막 들어선 교회권사님이 중매를 서주셨답니다.

예수님을 모신다는 철석같은 약조를 하고

꼬박 꼬박 졸면서 참석한 몇번의 예배시간 덕분에

뽀얋고 살가와 보이는 동네 홀아비의 딸을 소개받았답니다.

초저녁 곤한 잠에 몰린 장인어른을 뒤로하고

뻐꾸기 소리로 신호를 주고 받으며 

만나는 꿈같은 시간에

살을 섞고 꿈을 나누며

찬물을 떠놓고 그렇게 신접살림을 차렸답니다.

 

이제 가족이 생겼답니다.

홀아비와 그 딸과 그리고 사위가 한 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오손도손 건강한 신체에 부지런한 마음으로

논밭에 널린 독새기 풀로  풀떼죽도 끊여먹고

뒷산 성곽기슭에 화전도 한뼘 일구었답니다.

처음으로 내땅을 가졌답니다.

문서도 없는 땅이었지만

첫 수확으로 고구마를 캐는 날

시제에 가신 장인어른 덕분에

부부는 3살배기 어린 딸과 함께

화전일군 밭으로 올라갑니다.

황토빛 흙속에서 캐는 토실토실한 고구마에 눈이 팔려

그들 옆에서 호미를 가지고 놀던 어린 딸을 잠시 잊었나 봅니다.

두번의 유산을 겪고 얻은 귀한 딸입니다

찢어져라 울어제키는 어린 딸의 허벅지에

호미로 찍힌  붉디 붉은 피멍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마치 그들부부의 허벅지에 곡괭이로 핡퀸 상처인양

가슴도 다리도 황망했답니다.

그렇게 그녀유년의 훈장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 그녀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돌아가신지 20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산소에 가기를 주저합니다.

친정뒷산 그녀 아버지의 첫 화전땅에

그녀 아버지 산소가

동네를 오롯이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그녀의 엄마가 몇해 전에 곱게 단장한 산소입니다.

두어번 밖에 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가시는 날

그녀는 울지 못했습니다.

헛웃음이 자꾸자꾸 삐져나와

꺽- 꺽 가슴만 쓸었답니다.

 

 

새벽예배 나가는 이들의 자박자박 발소리가 잦아 들때까지 

"테스"며 "좁은문"을 읽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깜박 잠이 들면

아랫목 구들장이 뜨끈해져 옵니다.

꿈결인듯 아스라히 

부엌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새벽녁 헛기침소리와

마른나뭇가지가  자잘거리며 내는  타-아닥 소리와

문틈을 타고 흐르는 메케운 연기냄세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자장가 였답니다.

 

그런 아버지를 그녀는 아직 보내지 못했습니다.

왜냐구요 ?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당산나무 이기때문입니다.

세상을 허허로이 비켜다닐 때마다

걸음 걸음 그녀를 지켜준 마음의 당산나무입니다.

세상이 무섭고 두려울 때

언제나 마음을 지켜주는 당산나무 입니다.

외롭고 슬프고 지칠 때

그녀는 그녀의 당산나무 밑에서 실컷 잠도 잡니다.

목청껏  울어도 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당산나무를 없앨 수 있겠습니까.

결혼을 하고도 여전한 허허로움에 주체가 안될때도

여전히 그녀는 당산나무를 찾습니다.

 

올해 추석엔 꼭 아버지 산소를 찾으려 합니다.

마음은 아직도 한결같지만

그래도 한 발자욱

당산나무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입니다.

대신 그자리에 그녀는 오늘

밀레의 "오후의 휴식" 을 걸기로 했습니다.

 

그녀 어머니의 온몸이 녹을 듯한 슬픔과

그녀의 아버지의  절절한 외로움을

고스란히 담아 태어난 그녀는

선천성 울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슴저미는 감성에 몸이 떨릴 때

 

그러나 그녀는 이제 다짐합니다.

 

홀로 서보기로 합니다.

 

아직도 자라지 못한 내면의 아이를 넘어

마음을 따뜻하게 뎁혀 줄

그런 그림을 걸고 싶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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