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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들

보고 싶은 영화/위험한 관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11. 15.

장사라는 것을 펼쳐놓고 보니

세상돌아가는 모양새에 한 참 뒤떨어저

비루한 하루하루의 일상에 침잠되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날

기를 쓰고 현실의 자신과

이상속의 자신과의 균형을 맞추려고 안간힘을 쓴다.

 

생각해보니

계절의 변화에 따라 사각의 틀을 벗어나

줄기차게 밖을 향해 달렸던 마음도

또 지루함과 쓸쓸함에 위로를 주고자

수없이 컴의 자판을 두드리는 시간들도 모두

내 삶의 균형을 맞추기위한 발악 내지는 최소한의 자신에 대한 예의였지 않을까?

 

엊그제는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영화이야기가 나왔었는데

도대체 내가 영화관에 가본 지가 언제였든가?

장사시작한 시점부터 한 번도 영화관에 가본 적이 없구나

쓸쓸한 심사가 되었다.

가끔씩은 가게에서 보고싶은 영화의 목록을 세어가며

지냈던 시간도

요즈음엔  도무지 먼 옛일인양 씁쓸하다.

 

우리나라 영화감독 중에

허진호 감독의 작품들이 전적으로 내 취향이다.

 

잔잔한 사랑이야기로 마음을 뎁혀주혀주었던 8월의 크리스마스,

봄이 오면 가는 때가 있는 것처럼

사랑도 뜨거웠던 순간이 있었으면 변한다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명대사를 남겼던 봄날은 간다,

증오와 절망으로 부터 갑자기 전이된 격정을 유감없이 발휘한 외출,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처럼, 다시 그 사람이 온다면 그 시절이 마치 나의 시절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던 호우시절,

 

딱 4편의 영화로 밖에 만나지 못했던 감독이지만

잔잔하고 수채화 같은

때론 느린 격정속에 몰입하게 만드는

그의 썰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그가

다른 색깔의 영화를 낳았다 한다.

칸에 이어 부산 국제 영화제에 선을 보였고

상영중이라고 한다.

마음이 설레이기도 하지만...

 

아쉬움은 늘 달콤하다

그리고 기다림이다.

어느

으슥한  11월의 밤,

틀림없이 전주 어디쯤에서 나는

허진호를

아니 위험한 관계를 만나고 있지 않을까?

 

 

 

 

 

장동건만 마성의 남자? 허진호 감독도 변하고 싶었다
영화 <위험한 관계>를 흘리지 말아야 할 이유, 허진호의 새로움 바라보기
 
지난 10월 열렸던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한 허진호 감독.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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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감독의 상관관계를 논하자면 허진호 감독은 자신과 가장 닮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감독 중 한 명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호우시절> <봄날은 간다>를 떠올리면 아련해지는 마음 한구석을 어찌할 수 없다.

그런 그가 영화 2012년 <위험한 관계>를 내놓았다. 이미 지난 5월 칸에서 전 세계 관객들에게 선보였고 약간의 수정을 거쳐 국내에서도 상영하고 있다. 중국 자본으로 제작돼 사실상 중국 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데다, 워낙 한국 영화가 흥행한 탓에 많은 관객과 만나진 못했지만 허진호 감독을 떠올린다면 올겨울 <위험한 관계>를 그냥 지나치긴 어려울 것이다.

변화 갈망했던 허진호 감독, "영화 3편을 찍은 느낌"

인터뷰 당시 허진호 감독은 "<위험한 관계>를 찍고 나니 한꺼번에 영화 3편을 찍은 느낌"이라 설명했다. 장백지, 장쯔이, 장동건을 데리고 대규모 자본으로, 그것도 해외 로케이션으로 찍었으니 피로감이 클 법했다.

그간 중저예산의 작품을 통해 멜로 영역에서 마니아층을 확보한 허진호 감독은 <위험한 관계>로 새로운 도전을 맞이했음을 강조했다. 큰 규모에서 멋진 배우와 제대로 판을 벌여보자는 심산이었다. 이미 수차례 리메이크된 엄가령 작가의 소설을 허진호식으로 푸는 것 또한 숙제였다.

"변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있었어요. 원작이 있고 규모가 큰 판에서 인물이 많이 나오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죠.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펼쳐보고 싶었어요.

도전이었죠. 제가 보통 작업하는 방식이 있는데 의도적으로 그 방식을 깼어요. 컷 수를 늘리고 공간 자체를 세트로 가져왔어요. 그간 세트를 찍어본 적이 없어 인공적 세트가 낯설었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선 촬영감독에게 많이 기대기도 했습니다."

▲ 위험한 관계 셰이판(장동건 분)은 상하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최고의 플레이보이다. 여자를 만나되 언제나 여자에게 마음을 주는 법이 없기에 늘 상처받는 쪽은 여자다. 이런 셰이판이 정숙한 과부 뚜펀위(장쯔이 분)를 함락할 수 있는가를 두고 모지에위(장백지 분)와 내기를 벌인다.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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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데를로 드 라끌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가 원작이라지만 시나리오는 엄가령 작가의 손을 거쳐 재탄생했다. 엄가령은 첸 카이커 감독의 <매란방>을 비롯해 장예모 감독의 신작 <진링의 13소녀>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다.

"중국 소설가들이 뽑은 유명 소설가 중 한 명이에요. 기획 초반부터 만나서 원작을 어떻게 가지고 갈 것인가 고민했죠. 이 작가가 상하이 출신인데, 공간적 배경을 상하이로 두고 시대적 배경을 언제로 잡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1차 중일전쟁으로 할지, 혹은 <색계>의 배경인 1940년대로 할지 대화했어요. 결국 선택한 게 전쟁이 일어나기 전, 1931년 당시 난민들이 상하이로 내려오는 시대였죠."

중국의 현대사를 허진호 감독의 감성으로...독특한 화면과 감성

허진호 감독은 영화를 통해 1930년대 중국을 충실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중심 이야기는 상류층 젊은 남녀의 사랑이다. 말하자면 중국 시대극에 허진호 감독만의 독특한 감성이 담긴 작품인 것.

"엄가령 작가의 버전과 함께 <호우시절>에서 호흡을 맞춘 작가와 다시 써보기도 했어요. 장동천 고려대 중문과 교수님께도 자문을 구했어요. 1930년대 상하이에 대한 자료가 굉장히 적은데 그분이 <상하이 모더니티>라는 책을 번역했거든요. 매번 찾아가서 당시 상류층이 어떻게 살았는지 물었죠."

당시 상하이 사람들이 읽던 잡지와 도서 등 많은 부분에서 고증의 흔적이 보였다. <위험한 관계> 곳곳엔 '납함' '양우' 등 여러 서적이 등장한다. 중국 작가 루쉰의 단편 소설집 '납함'이 당시 서민을 계몽시킨 주요한 책이었다면 '양우'는 상류층 여성들이 읽던 잡지였다.

"상류층 여성들이 어떤 치약으로 이를 닦고, 아기에게 어떤 분유를 먹였는지까지 참고했죠. 어수선한 시대였지만 상류층은 조니 워커를 주로 마시는 등 굉장히 소비적으로 살았어요. '양우'라는 잡지는 모지에위(장백지)라는 인물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였고요. '납함'을 쓴 루쉰이야 서민에게든 귀족에게든 존경받는 문호였어요. 뚜펀위(장쯔이)가 의식 있는 사람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설정한 거였죠."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에 참여했던 허진호 감독(오른쪽)과 배우 장백지, 그리고 존보 미디어의 첸 웨이밍.
ⓒ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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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므파탈 장동건, 허진호의 손길 담았다

영화의 중심축은 결국 장동건이었다. 장동건 역시 "난생처음 이런 나쁜 역할을 소화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허진호 감독이 바라본 장동건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지만 틀이 있었다. 장동건 스스로 그 틀을 깨고 싶어 했단다. <위험한 관계>에서의 셰이판은 결국 변화에 대한 장동건과 허진호 감독의 욕구가 한데 만나 탄생한 캐릭터였다.

"장동건씨는 전작에서 주로 강한 역할을 맡았잖아요. 남성적인 느낌이 강했죠. 영화 <친구>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였기에 그 이후 강한 역할을 하게 된 거였지만 <위험한 관계>에서는 자연인이자 생활인의 모습이 들어가야 했어요. 이걸 해보고 싶어했다는 건 자신의 틀을 깨고자 했다는 겁니다.

장동건씨는 품성이 좋고 결이 좋은 사람이에요. 욕망이 있는데 그걸 표출하는지 안 하는지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거 같아요. 틀을 새롭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장동건씨가 아이디어도 많이 냈어요. 그가 착용한 선글라스나, 뚜펀위가 그의 편지를 찢고 나갈 때 우는 모습은 대본에 없던 거였어요."

영화<위험한 관계>에서 세이판 역을 맡은 배우 장동건.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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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이 궁금했고 호기심을 가졌던 부분은 정확한 디렉션이 없는 상황에서의 장동건이었다. 그동안 장동건이 맡아왔던 캐릭터는 대부분 철저한 분석과 감독의 디렉션을 통해 창조된 경향이 강했단다.

허진호 감독은 장동건이 하고 싶어 했던 만큼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돈 많은 바람둥이가 장동건과 만나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위험한 관계>로 장쯔이와 장백지의 연기 호흡을 봤다면 이제 새로운 부분에 주목하자. 허진호, 장동건 두 남자의 변화 욕구가 농후하게 담겨있을 테니. 영화는 한창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