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보다 예쁜 풍경은 없다.
특히나 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풍기는 은밀한 매력,
뒷모습이 말하는 그 사람의 역사를 읽어보고자하는 관음증에 푹 빠져있다.
물론 관찰자와 피관찰자간의 괴리에 대해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누구의 뒷모습에서 무엇을 읽는가는 관찰자의 심리에 의해 판단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에...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 때는
그냥 단지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언젠가 부터 정말 내가 외로운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한 시점부터였으리라, 아마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훔쳐보기 시작했으며
그 뒷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내 아버지를,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하나 하나 찾아내는 버릇이 생겼나보다.
아마, 뭐랄까. 지독히도 혼자이고 싶지 않아서 였을까?
그러던 어느 날 부턴가는
또 풍경속에 있는, 특히나 우시두시 둘 셋 모여있는 사람들을 바라다보는 맛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허락받지 않고 물래 찍은 내 카메라속의 인물들...
허락받지 않은 사진들이라서 밖으로 꺼내놓을 수 없지만
마음이 허 할 때, 하여 혼자있는데 혼자 있기 싫을 때
숨겨논 곳감빼먹듯 하나 하나 꺼내놓으면
웬지 내 마음이 스멀스멀 뭔가에 뎁혀지는 느낌이 든다...
어디 사람들 뿐이랴,
우시두시 생긴 것끼리 모여있는 풀들,
꽃들, 곤충들. 동물들...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혼자인 모습도 좋지만
특별할 것도 없는 무지랭이 같은 것들이
얽히설키 엮어내는 풍경에 더 마음이 간다.
그 까닭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본 나의 결론은
나는 영원한 아웃사이더일 수 밖에 없구나.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갈망,
그것이 때론 고통이 되기도 했지만
내 운명에 순응한다면 이 모습 또한 내 꼴이니 적당히 포기하고
내 꼴데로 살아가는 것이 훨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임을 이제사 알겠다.
포기가 아니라 순용이라고 바락바락 소리 지르고 싶다.
때론 말이다.
헷갈릴 때도 있어
그 순간이 비참할 때도 물론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50여년이 넘게 살아온 나의 품새가
이렇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내 행복은 시작되었더라...ㅋㅋㅋ
84년인가. 85년쯤
여하튼의 사연으로 집안이 망하고
동생들은 대학생 하나에 고등학생 둘,
엄마아빠는 마치 세상에 버려진 고아들처럼 잠시 그렇게 넋이 나가셨을 때
나는 지방대학이지만 4년제를 졸업한 자랑스런 집안의 장녀였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내 가족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었다.
한 번도 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대학졸업하면 대만쯤으로 유학을 가고, 돌아오면 소도시 시간 강사자리,
그러다 운이 좋으면 전임강사가 되고 정교수가 되는 게 내 인생길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피터지게 열심히 공부 한 적은 없지만
그 당시에는 막 내 전공이 뜰때라서(중문학)
적당히 나라밖에서 학위를 따오기만 하면 기회는 지천으로 깔렸을 때 였으니...
그런데 이렇게 유학을 가려던 계획이 틀어지고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나는 어떻게 직장을 잡아야 하는지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 정말 알지 못했다.
적당한 빽이 있으면 이름없는 사무실 여직원이라도 채용되었을 텐데...
그 빽이란 것도 나에게는 없었다.
우연히 잡지대학을 가면 잡지사에 취직을 할 수 있겠다 싶어
무슨 사단법인에서 실시하는 잡지대학 강의도 들어보고
(나중에 알았다. 주최측의 돈벌이의 수단이었다는 것을)
타자의 급수를 따면 행여 개인사무실이나마 취직을 할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고
타자며 주산학원에도 다녀보고...
일케절케 용을 써봐도
한 푼도 내 스스로 돈을 벌 수 없다는 참담함,
지금생각해보면 차라리 공장이라도 취직했었으면 좋았으련만.
정말 세상을 몰랐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렇게 용을 쓰던 시절에
무교동 전북은행 건물 지하에 문구를 비롯한 잡동사니를 파는 매점을 맡아서 하면 어떻겠느냐고
친구가 제안을 해 왔다.
그 곳에서 주로 판매와 배달일을 했다.
한 2년쯤...
지금생각해 보면 참 열심히 일한 것 같다.
오르락 내리락 몇 백원하는 만두도 배달해 주는 시절이었으니...
그래도 몇 십만원이라도 내가 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러던 중에 내가 바람이 나기 시작했다.
무교동 무슨 산악회에 가입해서 등산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여행이니 좋아서 따라다니다가
급기야 산악회 대장을 짝사랑하게 되었다.
별, 미친...ㅋㅋㅋ
지금 생각해 보면 성질이 나지만
그때는 지고지순의 자세로
열나게 반찬같은 것을 만들어 아침 출근길에 산악회 사무실 앞에 몰래 가져다 바치기도 하고
어느 날 밤인가는
뭔가에 홀려
우이동계곡까지 그 놈을 따라갔다가 죽는 줄 알았다.
(열심히 상상해 보시람. 그 땐 내 인생이 까딱했다간 쫑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얼마뒤에 그 산악회 대장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 그때 수녀가 되기로 작정했었다.
그것도 일생을 봉쇄된 수도원에서 세상을 위해 기도만 하는 갈멜 수녀원의 수녀로...
(이 글을 쓰면서도 웃긴다.)
그 때 생각은 이러했다.
"나 같은 사람은 이 세상밖에서 있어서는 안돼.
남들에게 죄를 짓게 하는 원인제공자가 될 뿐이야.
죽지 못할 바에는 이 세상에서 격리돼 인류를 위해 기도하는 고고한 자세가 필요해."
이 정말 황당무게, 호랑말코같은 경우봤나.
그래서 혜화동에 있었던 카톨릭 대학교 성소모임을 한 동안 나갔었다.
내가 수녀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몇 개월을 다녔는데
어느 날 말이다.
낡은 교실 유리창 너머로 앙상한 가지에서 메달려있던
낙엽 한 잎이,
또르르르 또아리를 틀며 떨어지는데...
이유모를 웃음이 터져 나왔고 내 갈멜수도원의 수녀로서의 일생은 끝이 나버렸다.
참다 참다 터진 웃음에
강의를 하시던 수녀님도, 거룩한 뜻을 품고 모였던 장래의 수녀님들도
뻥, 띠셨겠지만
부끄러움에 황당함에 교실을 뛰쳐나온 나는,
절대 수녀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고
그냥 성당이나 다녀야겠다.
사는게 무서우니 하느님이나 의지하고 그저 그렇게 살아야겄다
제 분수를 알게 되었단 전설...ㅋㅋㅋ
아무때나 터져나오는 내 웃음 하나 참지 못하는데...
아니 어느 때 터져나올지도 모르는 웃음을 참아야 한다는 고통이 얼마나 끔찍할텐데...
나름 현명한 나의 판단을 지금은 이렇게 추억하며 살 수 있어서 좋다.
갑자기 사람풍경을 읊어 대다가
쓰달데없는 내 추억 한 조각을 때리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참 복잡허것지만 이게 나니깐.
난 삼류니깐, 이해바란다.
암튼 그렇게 바보 멍텅구리 쪼다 같이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추억해 보면
이런 저런 내 모든 과거의 행로들이 어느 날 지금의 내가 되어있더라.
이렇게 저렇게
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가벼움에
사는 것이 많이 부끄러운 시간이 찾아오드라.
언제나 혼자서 내 인생을 선택하고 결정하고 혼자서 감내하며 살아야하는 내 폼새가
지독히도 싫은 때가 찾아 오드라.
특별할 것도 없는 내가
왜케 남들처럼 비스꾸무리한 색깔로 살 수 없을까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운 때가 오드라구요.ㅋㅋㅋ
그리고 이제는 그런 아픔 또한 과거가 되어 버렸다.
이번 가을로 쫑 친거 같다.
장자가 그랬다.
"이 세상에는 그 어떤 독립적인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모든 존재자들은 각자 자신의 고유한 본성에 따라
서로 얽혀 유전하는 하나의 그물망 속에 그물코 하나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존재의 실상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란,
시비是非와 선악이 모두 각자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
자기 생각으로 상대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것,
존재자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것,
그리하여 각자의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요. 내가 내 꼴데로 그렇게
존재의 그물망 속의 그물코데로 살아가고
네가 네 꼴데로 그렇게
그물망속의 한 코가 되고
얼키설키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는
다양성의 조화를 이루는 세계
그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사 알 것 같다는 말씀...
아, 넘 지루해...
그래서 나는 고로
함께 있는 모든 존재들의 풍경이 좋다... 이게 결론이랑께요...
미안혀요...
한 마디 더
"그대가 있어
오늘
참으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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