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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뜯지 못한 고지서 몇 통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11. 4.

며칠 전에 그녀가 짠 나타나 나를 놀래켰다.

가끔씩,

"어~~이, 김여사, 어뗘?"

 

공사가 다망하고 군산의 인기녀 1위쯤 될까?

사람들 속에서 항상 배우고 산다는 그녀는

내가 돈까스를 만들때, 내가 김밥을 쌀때, 내가 김치를 담글때,

혹은 가끔씩 그 넘이 아직도 미친 듯 그리울 때,

혹은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조차도 일 순위로  생각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두번, 아니면 두 달이나 석 달에 한 번, 그렇게 밖에 만날 수 없다.

워낙 인기녀라서 나까지 차지가 되려면 순번을 기다려야 되지만

나는 순번같은 것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속으로 지가 꼴리면 오겠지.

그래서 "올려?" 메세지에 응답이 없어도

난 서운하지 않다.

"가시네, 목욕탕 간겨...틀림없이 " 그렇게 치부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런 그녀가 나타나면 나는 그동안 쌓아놓고 말하지 못했던 내 일상들을 주저리주저리,

그리고 이실직고 털어 놓는다. 왜냐?

누군가에게는 발설하고 싶은 이 욕망을 도저히 억누르지 못할 때

그나마 유일하게  나를 보호한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 확신이란 것도 근거가 없지만 그냥 믿어버리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해서라도 내 발설의 욕망을 해소시켜야만 나도 남들처럼 밝게 살아갈 수 있으므로...

엥, 쓰다보니 서론이 넘 길었다.

 

암튼 그녀가 나타나

주절주절 내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책상위에 놓여있는 뜯지 않았던  고지서 몇 통을 들켜버리고 말았다

 

"뭐여, 이건?"

벌써 내 가난을 알고 있는 눈치빠른 그녀는 고지서들을 들춰낸다.

 

"야. 냅둬, 가시네야. 국민연금, 의료보험, 전기세...등등 독촉장이랑께.

사실 아직 낼 형편도 못되는데 뜯어봤자 심정만 상해서 아예뜯지 않고 있어야,

11월에 계타면 좀 해결이 될라나."

 

"바로 그거여. 네 꼴이라니깐, 네가 고통이나 아픔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이 바로 이거랑께.

유예

참 귀엽다."

 

또 심리학가짜박사 그녀는 졸가리를 찾아간다.

 

"긍가, 그럼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우리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상실의 고통도 유예되고 있나보다,잉"

 

그녀의 낚시밥에 또 순진한 나는 걸려들고 말았다.

 

89년, 서울 올림픽을 끝낸 다음 해니깐,

그해 3월인가. 4월인가의 마지막 날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나는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 미친 듯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고 용을 썼다.

사방이 울음으로 시끄러웠었는데 나만 울지 않았다.

잠시 그들로 부터 분리된 어떤 순간이었다.

부끄러웠다. 울지 못한 나가.

분노했다. 울지 않던 나가

그리고 두려웠다. 울지 못한 나가...

 

난 장녀였고 성인이였고 아버지에게 언제나 자랑스러운 딸이었는데...

아직 동생들이나 엄마와 그때의 이야기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틀림없이 그네들은 나를 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사만 해도 그렇다. 절대 가지 않는다.

강산도 두 번이나 바뀌었음에 불구하고...

 

어느 날 그러드라.

어떤 넘 뒤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걷는데

문득 그 넘에게서 우리 아버지를 발견하드라.

시리고 쓰린, 단단하고도 안쓰러운, 고독하면서도 고고한...

내 아버지의 뒷 모습을...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그 넘을 사랑한 것 같았다.

 

나는 아직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보내지 못했다.

상실의 유예된 고통이 가끔씩 날 괴롭힌다.

사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올 땐 특히나 아버지가 그립다.

그리고 그는 항상 내 곁에 있다.

 

아버지와 얽힌 수많은 기억들

그리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었는데

그리 많은 말들을  나누고 살지도 않았었는데

아니 어느 한 동안은 싫어했던 아버지이기도 했는데...

난, 아직도 그분이 돌아가셨고 내 곁에 계실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까?

 

그녀가 지적한데로 이건 심리학의 문제일까?

 

내가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어리섞음,

고통앞에  비굴할 수 밖에 없는 자아본능,

 

지금까지 읽은 모든 심리학책에 한결같이  모든 고통은 인지하고 순전히 받아들인다면

더이상 고통으로 남아있지 않다고, 치유되고 해방되는 기쁨을 맞을 것이라고 수없이 들어왔음에도

그리고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에 결심을 하곤 했음에도

나는 아직도 유예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니...

 

내가 내 인생에서 맞딱뜨리는 모든 고통들에 대한 태도가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유예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지적하더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고통과 상처에 맞딱뜨리지 못하고 빙글빙글 그 주위만을 헤멜뿐

그래서 어느 날인가 더이상 고통도 상처도 잊혀져가길 바라는 나만의 고유한 방식,

치유되고 그래서 해방되어야 할 것들을

이렇게 차곡차곡 내 안에 쌓아두고 사는,

남들이 보면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같은 내 모습 이면에

이런 진실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뜯지 못했던 고지서 몇 통으로 

그녀는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잊을 꺼라고, 잊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라고

내 뱉고 있는 그 넘에 대한  내 마음도

이렇게 켠켠히 쌓아두고 있는데

그래서 불쑥 미친 듯

"그대가 있어 오늘도 행복합니다" 라는 문구가 저절로 나오고야 마는데...

 

"그려, 가시네, 너 참 잘났다.

그렇게 까발리면 니 속이 후련하냐?"

 

야속한 듯 그렇게 억지를 부렸지만

나는 안다. 그녀가 나에게 어떤 메세지를 보냈는지를...

 

"용감해져봐. 한 다리만 건너면 돼. 내가 옆에 있어 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