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꺼내기도 쑥스럽지만
난, 아주 꼬맹이 때 부터 힘들었던 열등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내가 예쁘지 않다는 것,
외모상으로 말이다.
사실 지금의 어떤 부분의 내가 되도록 성장시킨 원동력은 바로 이 열등감이었다.
"나는 예쁘지 않으므로 대신 지성으로 그것을 보충해야 하며
외모보다 지성이 훨 우월한 것이다."라는 100% 확신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야말로 허겁지겁 책들을 먹어치웠다는 사실,ㅋㅋㅋ
시골출신이고 장녀인데다가
부모님은 순전한 농사를 지으셨던 분들이었는데 내가 접할 수 있는 책의 양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그런데 다행이도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자 마자
학교에 도서실이 생겼고
비록 누리끼리한 중고품들이 많았지만 몇 백권의 책들이 비치되기 시작했으며
그 책들의 보관과 정리, 대출 담당을 나에게 맡기셨다.
또한 마침 그 무렵 대한 민국 전체적으로 고전 읽기 열풍이 불었던 즈음이라
"고전 읽기 대회"라는 것이 있어
주로 그리스 신화같은 책들을 읽고
그 내용에 대한 시험을 치는 그런 제도가 있었다.
그 제도 덕분에 책을 심도(?)있게 읽는 법을 체득했으며...(순전히 시험을 잘보기 위해)
촌 구석 시골학교에서 친구들 몇몇과 함께 군산시내 학생들을 대표해서
도대회까지 진출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난 그때 처음으로 전주라는 곳을 가보았다.
군산시내권 학생들과 대야초등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고
군산을 대표해 선발된 몇몇이 전주로 가서 또 시험을 치르게 된 날,
아마 기차를 타고 긴 여행을 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대빵 큰 도시였던 전주를 간다는 설레임이 아직도 남아있다.
어렴풋이 기억나던, 차장으로 스쳐가는 모든 낯선마을들의 풍경이 먼 이국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내 " 저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우주를 날아서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곳까지 그렇게 자유롭게 날아보리라."는
꿈을 실현하게 된 내 생애 처음의 여행이었다.
그 뒤의 뚜렷한 기억이 없는 걸로 보아
그쯤에서 내 실력은 뾰롱이 났을 것이고...ㅋㅋㅋ
그러나 그 여행은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중의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왜냐 내 꿈이 구체적 실현을 보였던 첫 번째 기회였음므로...
그런 품새로 책과의 여행은 언제나 달콤하면서도 약간은 애잖기도 하고 또 무대포식으로 밀어부치게 되어 수많은 시행착오의 연속으로 상처나고 치유되는 그런 내 삶에 지대한 공헌이 되기도 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그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 시작하던 순간부터
어쩜 난 내 외로움의 실체를 파악했는지
"책이란 것,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아마도 영원히 내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 갈 유일한 내 인생의 벗이 되겠구나. 책보다 좋은 친구는 없어."
라는 확신으로 자기만의 세계속으로 침잠하게 되는
그래서 한없이 오만했던 내 삶의 색깔을 결정짓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야기..ㅋㅋㅋ
문틈으로 스며드는 새벽 찬 공기,
자박자박 새벽기도를 가기위해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그들에게 알은채를 하는 똥개들의 컹컹거림과 대비되는 사위의 적막함,
그시간까지 책을 읽고 깨어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
그래서 뭔가 나만은 남들과 같지 않은
특별한 어떤 운명을 지닌 사람처럼, 하나님의 주신 그 뜻을 실천할 수 있는 어느 날인가를 기다리게 했던
마치 '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중의 하나가 되게 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내 인생의 드라마를 쓰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약간은 과장되고 남들이 알아챌 수 없는 색깔들을복잡하게 덧칠하며
덧칠된 세상에 내 비밀들을 꽁꽁 숨겨 놔 아무에게도 나의 비열함과 열등감과
죄의식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그런 드라마 속의 주인공...
이 어찌 내 운명의 비극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나였고 암튼 이런 저런 연유로 내 삶은
내가 꿈꾸었던 많은 색깔들로 칠해졌는데
어느 날 보니
물감과 물의 농도가 맞지 않아 질질 여기 저기 얼룩으로 촌스럽게 덧칠 된
그런 그림이 그려지고 있더라...(이런느낌 알아채실까? ㅋㅋㅋ)
몇 백년을 몇 천 년을 지나도 그윽한 향기를 품어낼 수 있는
고전 명작과 같은 유화를 그려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런 내가 어느 날 부터 또 생뚱맞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ㅋㅋ
"이젠 나도 누군가의 베아트리체가 되고 싶다."
웃지 마시람.
20대 초반의 얼굴만 이쁜 베아트리체가 아닌
누군가에게 끝임없이 영감을 줄 수 있는,
그 혹은 그녀의 베아트리체가 될 수 있다면...
웬 황당무게한 호랑말코같은 꿈이란 말인가?
이유는 그것이다.
어떤 넘의 암컷이 되지 못할바에는
수많은 넘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고 싶은 이 비극적인 소망...ㅋㅋㅋ
내 인생에 딱 한번을 제외하곤 줄창 짝사랑에 휘둘렸던,
가엾은 내 암컷의 본능을 발휘하지 못한 내 긴 사랑사에 종지부를 찍고
나를
누구도 실체를 알 수 없는 묘령의 여인 내지는
꿈으로 밖에는 가질 수 없는
그래서 수많은 걸작들을 탄생케 하는 영원한 24살의 베아트리체...
이것도 모다 지금까지 내가 앓고 있는 내 외모에 대한 열등감의 산물들이라니...
그런데 말이다. 내 나이 쉰하고도 둘.
나 어젯밤 짱나게 기분좋은 말을 들었다.
그것도 미술대학 산디과 교수님들에게 말이다.
(아쉽게도 여자 교수님들이서...)
"저, 사장님, 모델이 되어 주시지 않으실래요.
넘 멋지세요."
요게 뭔 말이시?
요는 내 품새가 너무 멋져 어떤 작품의 모델로 나를 쓰고 싶으시단 달달한 말씀.ㅋㅋㅋ
"저를요? 하, 교수님 부끄럽사옵니다.
난생 첨으로 그런 말을 들어보닝께..."
그렇게 농담으로 껄껄 웃으며 넘겼지만 지금 이 새벽까지 내내 기분이 짱이다.
그런데 이러던 참에 이 새벽
컴퓨터를 열고 메일을 뒤져보다 모델같은 나를 발견한다.
어제 출사에 동행했던 어느 님이 뾰~~용,
이런 선물을 쏴 주셨당. 나 몰래, 펼쳐진 황홀경에 빠진 나를 잡으셨던 순간을...
나, 이렇게 멋있어도 되남?
혹시 나 정말 누군가의 베아트리체가 될지도 모를 일...
참 그래서 난 즐겁다.
이렇듯 황홀한 꿈 속을 헤메는 내가 예쁘당.
그렇지 않으면, 않았드라면,
내가 내 이 오래되고 깊고 비참한 열등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세상 누군가에게 이 계절은 추하고 비루했을지도 모르고
세상 누군가에겐 이 계절이 욕정과 발설의 고통을 치뤄내게 했을지도 모르고
세상 누군가에겐 나락으로 까지 몰린 자기집착에 눈물 흘렸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이 계절이
왜 이렇게 황홀하단 말인가?
단 하나
"나도 누군가의 베아트리체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으므로...
이탈리아의 위대한 시인 단테가 9세 때 첫눈에 반해(단테는 "그때부터 사랑이 내 영혼을 압도했네"라고 씀) 1321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생애 대부분과 시 작품을 바치며 사모한 여인.
단테는 40년에 걸쳐 완성한 〈신곡 La divina commedia〉에서 베아트리체를 찬미했다.
베아트리체는 피렌체 귀족의 딸인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이 여인은 시모네 데 바르디와 결혼했다가 1290년 6월 8일 24세의 나이로 죽었다. 단테는 서정시를 덧붙인 산문 작품 〈새로운 인생 La vita nuova〉(1293경)에서 베아트리체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연대기를 썼다. 여기서 단테는 베아트리체와의 만남, 그녀의 아름다움과 선량함에 대한 찬미, 베아트리체가 자기에게 상냥하게 대하거나 냉정하게 대할 때 그가 보인 강한 반응, 두 사람의 인생에 일어난 사건에 관해 쓰고 있으며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의 본질을 설명한다. 또한 〈새로운 인생〉은 베아트리체의 죽음을 전해들은 날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 사건이 일어난 뒤 괴로움에 가득 찬 마음으로 쓴 몇 편의 시도 담겨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에서 단테는 "베아트리체에 관해서 아직까지 어떤 여자에 대해서도 씌어진 적이 없는 작품"을 쓸 수 있을 때까지 더 이상 그녀에 대해 아무 것도 쓰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이 약속은 〈신곡〉으로 실현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쓴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는 〈지옥편 Inferno〉에서 그의 중재자가 되고, 〈연옥편 Purgatorio〉을 통해서는 그가 닿고자 하는 목표가 되며, 〈천국편 Paradiso〉에서 그를 이끌어주는 안내자로 등장한다. 〈연옥편〉에서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본 순간 9세 때와 같이 압도당하게 되고, 연옥을 여행하는 동안 베아트리체의 존재는 줄곧 눈부시게 그를 비추다가 천국으로 올라간다. 정신적으로 승화한 이러한 사랑의 표현은 단테가 완전히 영적인 존재에 몰입하는 것으로 끝난다.
단테가 〈신곡 La divina commedia〉의 〈연옥편 Purgatorio〉에서 썼고, 13~14세기의 일부 시인들이 쓴 문체.
대부분 피렌체 사람들인 이들은 소네트·칸초네·발라드 형식을 빌려 진지하고 섬세하며 음악적인 방법으로 정신적·이상적인 사랑과 여성관을 노래했다. 볼로냐 시인 구이도 구이니첼리가 스틸노비스티(stilnovisti)를 처음 쓴 사람으로 간주되며, 이 유파에 속하는 유명한 시인들로는 구이도 카발칸티와 단테(서정시에서)가 있다. 이류시인 중 이 유파에 속하는 대표적인 사람은 치노 다 피스토이아이며 그밖에도 라포 잔니, 잔니 알파니, 디노 프레스코발디 등이 있다.
이 문체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는, 궁정연애시 전통을 지니며 이탈리아 소네트와 칸초네로 발전한 시 형식을 쓴 프로방스의 음유시, 성 프란키스쿠스와 그 추종자들의 단순성과 신비주의, 프로방스 형식에서 소네트와 칸초네를 만들어내고 이탈리아 시에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처음 쓴 13세기 시칠리아파 시인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플라톤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등을 들 수 있다. 스틸노비스티 유파는 모두 이러한 요소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구이니첼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인 온화한 문체로 시를 썼으며 〈온화한 마음 속 사랑이 그에게 안식을 주네 Al cor gentil ripara sempre amore〉는 칸초네에서 고상한 여성관과 애정관을 보여주었다.
이 운동은 단테와 카발칸티의 천재성 덕분에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단테는 〈향연 Il convivio〉에서 연애시를 위해 자신이 의도적으로 감미롭고 음악적인 언어를 골라 썼다고 밝혔는데, 〈신생 La vita nuova〉에 자주 등장하는 베아트리체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서정시는 그의 시도가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단테는 사랑을 매우 고상한 것으로 생각하여, 베아트리체가 살아 있을 때에도 그녀를 천사처럼 묘사했고, 그녀가 죽은 뒤 〈신곡〉에서 그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안내자로 그렸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단테의 사랑에 담긴 넘쳐흐르는 행복감은 그의 '첫 친구' 카발칸티가 어수선한 마음으로 종종 괴로움에 가득 찬 사랑을 노래하는 서정시에서 표현한 정서와는 조금 다르다. 사랑의 복잡함을 노래한 시인 카발칸티는 돌체스틸누오보로 놀랄 만큼 아름다운 "저기 오는 여인이 누구인가, 모두 그녀를 바라보네"로 시작되는 소네트를 비롯해 작품들을 썼다. 카발칸티는 〈한 여인이 나에게 애원하네 Donna me prega〉라는 난해한 칸초네도 썼는데 이것은 사랑의 본질을 분석한 유명한 작품이다. 이 칸초네는 남자가 자기가 그리던 이상형의 여인을 만날 때 사랑이 생기고 이상적인 여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사랑도 사라진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스틸노비스티는 그 시대뿐 아니라 후대에 페트라르카, 로렌초 데 메디치(의식적으로 스틸노비스티를 모방), 미켈란젤로, 피에트로 벰보, 토르콰토 타소,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에즈라 파운드 등의 시에도 영향을 주었다.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롭다고 말하고 싶을 때 우리가 하는 짓 (0) | 2012.11.03 |
---|---|
저주는 나의 기쁨! (0) | 2012.11.02 |
난 늘 기쁨의 도취 속에서 살고 있어,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말이야... (0) | 2012.11.01 |
장난하냐? - 절대 장난 아니다. (0) | 2012.10.31 |
우리는 꽃보다 아름답게 만나게 됐다. (0) | 2012.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