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난 늘 기쁨의 도취 속에서 살고 있어,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말이야...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11. 1.

미칠 듯 불어 제키는 바람소리에 여지 없이 심란해진다.

아마 아파트와 아파트 사잇길,

그것도 월명산 고갯마루를 향해  뚫려있는 길이

고갯마루를 넘어 나운동을 지나야하는 해망동 바닷바람의 통로가 되고 있나 보다.

겨울 내내

또 나는 이 통로를 지나갈  바닷바람을 다 맞으며 살아야 하나보다.

우짜쓰꼬... 이것도 내 운명인가?

잠시 엄살을

이 불어제키는 바람에게 좀  떨어보자. 나도...

 

어젯밤이 10월 마지막 밤이었나 보다.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치 못했는데  뜬금없이 나타난 지인들이

"오늘이 10월의 마지막 밤이래요."

한마디 씩 하시는 통에,

"아, 글구나" 괜실히 이것 저것 배알이 꼴리기 시작했던  밤이었다.

 

왜냐?

이런 날은 으례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축제의 밤,

발광의 밤이 될 것임에 심사가 뒤틀리는 것이겠으므로...

 

자발적 왕따라고 누누히 내가 주장하는 나의 한적함이 이런 날  여지없이 또한 우울한 것을 보면

모든 것이 3류일 수 밖에 없는 나를 꼭 확인하게 된다는 것,

 

3류의 센치함에 젖어 그나마 나를 찾아왔던  내 단골들을 보내고

일찌감치 작파하고 집에 가서 드라마나 때려보자고 막 짐을 꾸리는데

 

"오늘 같은 밤, 내, 그대와 함께"

 

만면에 은밀한 미소를 띠며 나타난 쭈쭈빵빵, 그녀,

 

사실, 점심시간에도 나타나 심도 있는 장시간의 대화를 나누었던...

내 인생중의 어떤 시기에 나를 가장 많이 보여주었고

현재의 나의 비밀을 그래서 가장 많이 품고 있는 그녀,

울며불며 시간에 관계없이 내 민폐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그녀가

내 쓸쓸할 지도 모르는 10월의 마지막 밤을 위해 저쪽 휘황찬란한 축제 현장을 물리치고 

그렇게 보무도 당당하게 등장했단 말이시...

 

"야,   지랄떠는 세상에 우리 고상한 대화의 장이나 펼쳐 보자잉"

 

주섬주섬 요즈음의 나,

요즈음의 그녀에 대해 끝없는 자뻑들을 펼치고 있는데

 

그놈들이 나타났네. 중학교 동창 머시마들...

사실 워낙 내 반경이 튼튼해 걸러질데로 걸러진 손님들의 품새들이지만

가끔씩 이렇게  일부러 2차라도 팔아주자,

고마워 하지도 않는 나를 꾸역꾸역 찾아오는 그래도  친구들의 그 맘들은 알것는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합석을 주장하는  그 놈들 땜시 기분이 왕창 상해 버리고 말았다.

 

이 장사를 하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은

앉기 싫고, 나누기 싫은 야시꾸리한 환경에 내가 있게 되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자기들을 대접해주지 않는다고 지랄을 떨 던 말던 난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니

내 자리를 고수하며 그녀와의 한 판 대화를 하면서 내린 결론은,

 

"그래, 내가 살아온 색깔데로 남의 것 베끼지 말고

남의 시선 괘념치 말고

너는 네식의 그림을 그리고

나는 내식의 글을 쓰고,

우리 그렇게 알콩달콩 한 시절을 지내자잉."

 

"네가 있어 내 지금이 든든하고...

네가 있어 시린 내가 따뜻해지고...

네가 있어 내 눈물이, 내 웃음이 꽃이 되었구나. 고맙다, 가시네."

 

나, 사실 아부떠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소리내어 그녀에게  말하고 말았다.  부끄

왜냐면 10월의 마지막 밤이었고, 그녀가 나와 함께 였으므로...

 

난 이렇게 2012년 10월의 마지막 밤, 이 날이 내 행운의 날중

 하나

하루 였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라고

그런 맘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생각해보니 내가 하루종일 나도 모르는 황홀 속에 들떠 보냈음에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는 사실...

 

비밀,ㅋㅋㅋ

 

바로 우연찮케 내 그대를  훔쳐볼 수 있었다는 것을...

그것도 아침 댓바람부터 말이다...

 

"그대는, 어찌그리 예쁘신가요?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오셨길래?"ㅋㅋㅋ

 

참 알다가도 모를 내 심사다.

 

언제부턴가, 내 다시는 그대를 보지 않겠다.

내 정강이에 바늘을 찌르면서까지도 참아보겠노라 결심에 결심을 하는 숱한 밤이 지나고 있건만

이렇게 오다 가다 내 눈길에 씹히는 그대를 볼 때마다,

단지 먼 발치에서 그대의  차님을  우연찮게 보는 것만으로도

단지 바람결에 들리는 그대의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여지없이 내 가슴은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마냥

훨훨 어딘가로 날 수 있다는 사실,

아, 이게 뭔 조화속이람,

이젠 헤아리는 것조차 멈춰버리고 만

나는 그저 미칠 것 같이 좋기만 하단  말이시...ㅋㅋㅋ

그런 행운의 날이었는데...

 

집에 돌아와 김연수를 읽는데 또 그를 잠시 빌려 오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의 혁명가였던 로자 룩셈부르크가 1917년 언니에게 쓴 편지가 있다.

 

"내가 지금 어디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지 알아?

정원에 작은 식탁을 갖다 놓고 푸른 숲 속에 앉아 있어.

오른쪽에는 정향 냄새를 풍기는 노란 까치밥나무,

왼쪽에는 쮜똥나무 덤불,

앞쪽엔 진지하고 피곤에 지친 키 큰 은백양이 천천히 하얀 잎을 흔들고 있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행복한지.

벌써 성요한절 분위기가 느껴지네.

울창한 여름과 생명의 도취가 느껴져."

 

이 편지를 쓸 때, 로자 룩셈부르크는 수감 생활 2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녀에게 감옥의 참담한 환경, 권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고립감,

협소한 공간, 갇힌 처지, 열악한 식사 같은 건 문제가 되지 못했다.

뒤이어 그녀는 ' 난 늘 기쁨의 도취 속에서 살고 있어,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말이야"라고 썼다.

라고 말하면서 이런 김연수식 결론을 맺더라...(지지않는 다는 말p150)

 

"행복과 기쁨은 이 순간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이유없이 즉각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행복과 기쁨이란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겨울에는 눈이 내린다면, 그날은 행운의 날이다."  라고

 

 

난 김연수는 무조건 믿으니깐,

난 김연수라면 무조건 좋으니깐,

난 김연수라면 아무리 어려워도 파고 들어가고 싶으니깐,

난 김연수의 왕팬이니깐,

 

이렇게 말하는 김연수가 바로 나니깐...

 

이런 썰을 푸는 이 순간이 바로 행운의 순간, 행운의 시간임을 믿어 의심치 않겠다, 난.

 

아, 오늘  또 나는 어떤 색깔, 어느 형태의  행운들을  나꿔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