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상당히 좋은 사람이거든요. 저랑 한번 사귀어 보실래요.?
좀 차갑게 보이는 면은 없지는 않지만
속은 따뜻하고 정말 저 괜찮은 사람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학 2학년 때 쯤 만났던 그애와의 첫대면의 순간에
이런 비스꾸무리한 말을 했던 걸 기억한다.
물론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다라는 말을 빨리 밝혀야겠다.
괜한 기대심리가 작용할라, 혹 배신감마저...ㅋㅋ
암튼 난 그애가 맘에 들었고, 친구의 친구였던 그애를 첫 눈에 보자마자 사귀어 보고 싶었다.
그 아이는 첫 대면부터 이러고 나오는 내가 얼마나 쌩뚱맞았을까?
사귄 지 한참 뒤에서야 그런 기억을 꺼내 놓으며
깔깔 웃어제키며 나를 연구대상 인물로 낙점해 나름 분석하고 즐겼음에 틀림 없었을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살아오면서 가끔씩 난 이런식의 정공법을 택하며
내가 맘에 끌리는 사람에게 접근하곤 했던 것 같다.
여자든, 남자든 말이다.
특히나 생각해보니, 대학교 1학년 때 쯤
뒷모습에 반한 어떤 남자 대학생에게 접근해
"저랑 한 번 사귀어 보실래요?"
팔마재 근처에서 말을 붙였다가 영영 그 사람을 못본 기억도 나고(내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한 번 살아보고 싶은 어떤 이에게
"저랑 한 번 살아 보시지 않겠어요.?
가진게 없고 아직 이혼한 상태는 아니지만 Yes라고 하시면
다시 인생을 시작해보려고요."
죄송하다. 그 때는 그랬다.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상대는 내가 자기를 희롱한다고 생각할 만큼
나의 이 무모한 도전은 아직도 끝이 없다.
웃기지 않은가?
아마도 앞으로도 난 내가 맘에 드는 사람, 여자든 남자든 사귀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꼭 도전해 보려고 한다. 아님 말고... 선택은 상대의 몫이고
내 몫의 선택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가끔씩 하느님(우주)에게도 이런 식의 정공법을 쓴다.
"당신은 무슨 연유로 날 이 지상에 보내셨나요?
뭔 이득을 보시려고 나를 내려 보내셨나요?
나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무엇을 경험하게 하시려고 이 험한 세상에
이 끝임없이 흔들리는 지조없는 여인네을 떨어뜨리셨나요?"
이런 식의 얼토당토한 도전을 감행한 것이 겨우
중학생쯤 되는 사춘기 무렵이었는데
아직까지도 이 물음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쬐께 이런 것이 아닐까, 저런 것이 아닐까 잡힐 듯 말듯 그런 상태이다.
그리고 꼭 덧붙이는 것이
"하느님, 보시요. 저 이만하면 쓸만혀지 않소.
쓸만혀면 좀 빨리 깨닫게 해 당신 뜻데로 하면 안되겠능교?"
이런 억지조차 부리기도 한다.
" 저 뭐든 준비 됐당께요. 얼릉 쓰시지 않으면 저도 삐쳐버릴 수 있응께
얼릉얼릉 쓰시든 말든 가부간의 결정을 빨리 내리시랑께요."
이런 협박조의 말투까지 섞어가며 당신을 윽박지르는 내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은 얼마나 기가 차실까?
아니면 이런 내 모습이 혹시 넘 귀여워 껄껄 웃으시고 계시지 않을까?
ㅋㅋㅋ
내가 서론을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 우주를 도와 주는 방법"
김연수가 그러더라
"뭐든 잘한다 잘한다 하면 다른 것도 잘하게 되는 법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주위 사람들이 기대감을 가질 때 가장 크게 발휘되는 것이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을 때는 스스로 가져도 괜찮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는 일은 우주적 손실을 면하게 하는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해 버리자."
(지지않는 다는 말, p102)
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글쟁이 김연수,
오늘 또 나에게 말하기의 화두를 짱 던져 놓았는기라.
"뭐든 잘한다 잘한다 하면 다른 것도 잘하게 되는 법이다.
여건이 허락하지 않을 때는 스스로 가져도 괜찮다.
내 자신의 행동이 이 우주적 손실을 면하게 하는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해 버리자."
이 얼마나 타당하고 멋진 말인가?
"난, 멋진 여인이야, 난 괜찮은 인간성도 가졌고,
비록 암컷임엔 조금 부족하지만 누군가의 베아트리체가 될만큼의 지성도 가졌고
너의 눈물을 보면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감성도 가졌고,
네가 힘들 때 옆어 있어 주는 것만으로 든든한 배경이 될 수 있는 넉넉함도 가졌고...
아, 끝이 없어라....
한 마디로 난 짱 멋있는 인간이야..."
웃지 마시라. 난 이렇게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다.
크게 외칠 수 있다.
문제는 타인에 의한 인정이 아니라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바로 내가 이 우주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인가를 날마다 날마다 내 자신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이며 그런 고무적인 주장에 의해 이 가을 나는 춤추듯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오늘 한가한 점심시간.
오랫만에 친구들이 찾아왔다.
"야, 너 이실직고 말해. 너 사랑에 빠졌지. 지금까지 본 중에서 오늘 너 젤 예뻐보여.
좀 살도 빠진 것 같고. 누구야 누구?"
"이놈의 가이네들,,, 나 힘들 땐 코빼기도 안보이드만 이제 와서 비밀이나 캘려고,
흥,
니들이 그런다고 날 들킬 것 같니?"
그동안 자발적 왕따가 되었던 나이지만 내심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았던 그녀들에게
"미쳤냐, 나 아직 유부녀야, 뭔 지랄 맞은 사랑
글구 어젯 밤 술이 떡이 되어 부시시한 얼굴에 피곤기가 줄줄 흐르는 내가 젤 예뻐보인다고...
그럼 그동안 나 어땠는데..."
속으로 야속한 마음을 꾹꾹 누르고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법을 이젠 알 것 같아.
그리고 지금 실천 중이지... 이번 가을이
내 인생의 모든 가을 중에서 젤 행복하고 축복처럼 여겨지는 계절이지비..."
그렇게 갈무리를 하고 말았다. 서둘러...
왜냐면 한 번 그녀들의 촉수에 닿기만 하면
내 모든 비밀이 까발려 질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크기도 하공...ㅋㅋ
자꾸 본론이 옆으로 새고 있다.
나의 짧은 글 솜씨이니 이해바라고
모든 결론은
남이 인정을 해 주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 아니 나라는 존재가 이 우주에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
내가 하는 일은 이 우주를 도와주는 방법이므로 열심히 해서
이 우주의 손실을 면하게 해주자."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설사 평법한 가정주부라 할 지라도
설사 직업을 애타게 찾고 있는 백수일지라도
설사 몸이 불편해 자꾸 쪼라드는 자신을 발견하며 안으로 안으로 사그라 들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설사 주고 받은 상처에 모든 원인을 내안에든, 타인 안에서든 찾고자 하는 혼돈 속에 아직 헤메는 사람들일지라도...말이다.
난 객관적으로
코딱지 만한, 그것도 월세 몇십만원의 저 시골 촌 구석
하마같은 식당 아짐에 불과해 보일지라도
난 이렇게 오늘도 우주의 중심이 되고 싶고
우주를 도와주는 한 방법으로써 열심히 살수 밖에 없는 운명의 소유자라고 생각해 버리자라는 말...ㅋㅋㅋ
내 정신 건강을 위해
이 우주를 위해...
자, 건배!!!
절대 장난 아니다.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란
교육심리학에서 많이 쓰이는 것으로서 심리적 행동에 하나로, 교사의 기대에 따라 학습자의 성적이 향상되는 것을 말합니다. 교사기대 효과, 로젠탈 효과, 실험자 효과라고도 합니다. 포괄적인 의미로는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아울러 '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 왕에서 유래된 교육심리학에서 쓰이는 용어입니다.
자신의 조각을 사랑한 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의 왕이다. 키프로스 섬의 여인들은 나그네들을 박대하여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아서 나그네들에게 몸을 팔게 되었다. 그때문에 피그말리온은 여인들의 이런 방탕하고 문란한 것에 탄식하며 독신으로 혼자 살았다. 그는 상아로 아름다운 여인을 조각으로 만들어 그녀와 언제나 함께 생활했다. 그는 이 조각상에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치 자신의 진짜 연인인듯 여기고 옷도 갈아입히고 몰래 입맞춤도 하면서 혼자 탄식하곤 했다.
그러던 중 아름다움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축제날이 다가왔다. 피그말리온은 축제에서 자신의 몫의 제물을 바치면서 자신의 집에 있는 조각상이 진짜 여자로 변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프로디테가 보낸 에로스가 조각상의 손에 입을 맞추자 조각상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였다. 이 때 갈라테이아의 손에 반지가 하나 생겨났는데, 이는 두 사람의 사랑이 영원토록 지속될 것임을 나타내는 에로스의 반지였다. 아프로디테가 피그말리온의 사랑에 감동해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피그말리온은 사람으로 변한 여인과 베누스 여신의 축복 아래 그녀와 결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아들을 자신의 고향 이름을 따서 "파포스"라고 지었다.
카르타고의 전설적인 여왕으로서 아이네아스를 사랑하다가, 그가 떠나자 불 속에 뛰어들어 자살한 디도의 오빠 이름도 피그말리온이다.
피그말리온 이야기의 재해석
후대에 이 상아 조각에서 사람이 된 여인은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이 붙는다. 괴테는 이 여인의 이름을 ‘엘리제’라고 했다.
중세시대에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우상숭배의 표상으로 여겨졌으나 후대에 와서는 수많은 사랑이야기의 소재로 쓰이게 되었다. 자신이 만들어난 창작품이 사람으로 변하고 또 그 창조물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이 피그말리온 이후 수많은 예술작품 - 회화, 소설, 희곡, 영화 등의 모티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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