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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고독은 전혀 외롭지 않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10. 29.

"볕이 넘 좋아요."

 

점심시간은 다가오는데 웬 유혹!

 

새벽잠을 보충하느라   평소보다 늦게 출근해   헐레벌떡 점심준비를 하고 있는데...

팔자 좋은 우리 **님,

 

"에공, 지도 점심 끝나면 득달같이 은파로 튈라요."

뒤질세라  답을 해대는 나,

 

정말 못말리것다. 꾀꼴 꾀꼴...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가한 점심시간이 빨리 끝이나

후다닦 정리를 끝내고 보온병에 커피를 담고

제과점에 들러 빵도 사고

그렇게 내 좋아하는  은파, 그곳으로 날아갔다.

 

 

 

 

 

매일 같이 그때 그자리 알록달록 거미란 놈도 햇빛바래기를 하는지,

팔자좋게 늘어져 있고

팔자 좋은 나도 느리게 느리게 햇빛 속을 걷는다...

 

 

 

 

 

 

건너다 보이는 가을 풍경이 하 좋아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몇 컷을 담아도 보고

오고가는 사람들의 뒷 모습을 훔쳐도 보고

이꽃 저꽃 그 어떤 넘처럼 방황하는 나비 몇 놈도 만나보고...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 덧 내 좋아하는 그 자리,

그 벤취에 앉게 되더라.

 

 

 

 

 

우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하도 입맛이 안땡겨 빵이라도 먹어볼까

커피와 함께 넘기려 애를 써보지만 목만 메이고...

에공, 이 놈의 팔자는 무슨 팔자길래

밥장사가 밥맛이 이리 없어 이 지랄을 떠는지

목구멍까지 신세타령이 삐져나오려는 것을  겨우 꾸역꾸역 참아낸다.

 

이렇게 햇볕이 좋은 날,

이런 호젓한 분위기에

넘치는 가을 풍경 한 가운데서 난 웬 청승일까

새벽녁에 냅따 휘갈려 내려간  겸손,축제, 포만감이란 단어들이 무색할 만큼...

 

서둘러 마음끈을 조여가며

김연수를 꺼낸다.

 

와, 김연수는 역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작가인가?

 

고비사막 한가운 데서 경험했던 고독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고독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고독은 뭐랄까, 나는 영원히 살 수 없는데

이 우주는 영원히 반짝일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의 감정 같은 것이다."

 

우야면 좋노?

그가 고독이 전혀 외롭지 않았다한 그 순간에

나는 내 사춘기 시절,  그때의 고독으로 , 고독의 경험으로 질주하고 있는 것을...

 

아직 채마르지 않은 채 태워지고 있는 초록풀들의 메케한 냄세와 연기들...

그래도 덤비는 싸납지 않은 모기떼들의 윙윙거림,

꾸벅꾸벅 졸리운 고개를 끄덕이며 이리저리  부채질을 하시는  엄마

하루의 고단한 몸을 코골이로  풀어내시던 아빠

찛고 까불고 먹은 저녁밥을 소화시키느라 용을 쓰던 동생들...

그리고 고독해서 외롭던 외로와서 고독했던 나...

 

하늘에 메달린 수많은 초롱초롱한 별들을 세고 세고 또 세고

그러다 다시 세고 세고...

 

그때는 그랬다.

고독이 뭔지, 외로운 것이 뭔지

다만  저 높고 끝도 없을 것 같은 밤하늘 어딘 가에

내가 가야만 할 어떤 곳이 있을 것 같은 운명이란  것이 느껴졌던..

언젠가는 꼭 말이다.

 

그 날 밤,  밤하늘이 나에게 보여주었던

아름답고 시린 고독에 대한 예감,

 

난 그 예감에 따라 어느 날 참으로 고독했다.

그리고 그 고독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지더라.

 

김연수도 그렇다 한다.

뭔 까닭인지. 그는

"2009년의 하늘은 내게 고독의 본질이 우주의 아름다움에 있다는 걸 알려줬다.

이 고독과 아름다움의 상관관계는 '죽음'과 통하는 것이었다."라고 말하더라.

 

글쎄, 아직까지는 고독과 죽음의 본질이 통한다는 그의 주장을 못들은 척 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혹시 내가 말이다. 어느 날

영화 '디 아워스'의 니콜 키드먼이  되지 말란 법은  없을테니까...ㅋㅋ

 

오늘 나는 그랬다.

 

이토록 호젖한  풍경,

결코 외로울 수 없는 고독이 지천으로 넘쳐나는

그 순간에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나는  고독하니 우주의 본질 속에 내가  속해 있구나,

 

김연수가 고비사막에서 경험했던  전혀 외롭지 않은 고독을

나,  또한 오늘 은파 호수 공원에서 경험했다는  이야기...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