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와중에 잠시 시간을 내서 쉴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나를 둘러싼 반경 10미터 정도,이게 바로 내가 사는 세계의 전부구나.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몇 명,
혹은 좋아하는 물건들 몇 개,
물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계가 그렇게 넓을 이유도,
또 할 일이 그렇게 많을 까닭도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김연수의 산문집 '지지 않는 다는 말'p54중에)
어제는 그야말로 한가한 일요일을 보냈습니다.
새벽녁에 깨어
두편의 조각글을 때리고
새벽잠을 보충하고 누굴 만나 점심을 함께하고
은파를 산책하다
가게로 돌아와 4분의 손님을 치뤄내고
그리고 또 조각글 한편을 치우고
집으로 돌아와 쓰다만 조각글 한편을 정리하고...
그리고 12시가 넘어 잠이 들었건만
또 새벽에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무리하면 안 되니깐... 애써 잠을 청해 보지만
결국 이렇게 깨어 어젯 밤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마시며
읽다만 책장을 뒤적거리다 위의 글들을 만났습니다.
김연수는 어찌 그리 절묘한 타임에
내가 느끼는 요즈음의 내 한 켠의 생각을 꼭 집어내 말해 버리고 말까?
실로 사랑스럽기도 하고 얄미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일수록
현재에 대한 불만족지수가 높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것도 같은데
난 요즈음 특히나
내 과거의 삶을 반추하고 내 현재의 삶의 깊은 맛을 느끼며
내 미래의 삶에 대한 설레임으로 내 마음살을 앓고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나를 가슴뛰게 하는데
가끔씩은 책도 실수를 아니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듯도 합니다...
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을 맹신하고 있는 나는
이제는 거를 줄도 아는 내가 되었으면...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김연수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어제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나의 태도에 대해 줄곤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제 5명을 만났는데 그 중 4명은 처음 뵙는 분들이었는데
4분중 한 분은 멀리 평택에서 일부러 나를 만나러 왔었고,
만났던 5명중
1명은 우연찮은 인연으로 속내까지 말하는 사이가 되었고
마치 젊었을 때 나를 보는 것 같은 연민과
그녀의 눈물을 보면서 내가 새롭게 결심하는 상황들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다정한 친구와의 오랜 통화,
낄낄 거리며 나눈 수다의 결론에 대한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최고의 지향점은 '달콤한 사랑'에 두자."
사랑을 믿지 않는 다고 강한 부정을 설파하던 그녀의 입에서
결국 이런 결말이 튀어나왔고
"그래서 가시네야, 이제부터라도 네 자신을 열어두라고... 그렇게
마음의 대문을 꼭꼭 잠궈두지 말고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옳곧은 '사랑'이란 놈을 향해..."
나에게 그렇게 낚싯밥을 던지고 끊어버린 통화의 오랜 여운이 또한 아직도 숙제처럼 남아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금 이 순간, 이 가을이 여러면에서 나에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시점을 계기로 나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겠다라는 기대감입니다.
엊그제 잠깐 언급했던 내 '가슴 뛰는 삶'의 밑그림도 완성했고
어제 언급했던 내 '숨말하기'의 옳곧은 방향도 정해졌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반경도 이젠 제법 알 것 같고
내 주변인들에 대한 내 태도에 대한 충분한 고찰도 이루어졌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살아갈 미래에 대한 내 의식의 균형
'사실과 서정'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 기분 좋은 확신...
김연수 식으로 말하면
100m 정도의 나의 일상이 이루어질 반경안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몇 명
내가 하고 싶은 일 몇 개에 대한
흔들리지 않을, 그러나 흔들릴 수밖에 없는 사실과 서정의 균형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그 배경에는
어쩜 까뮈가 말하려고 했던
인간과 인생의 도전이라는 부조리한 사상을 내 안에 받아들이며
관성으로 살지 않겠다는
내 오랜 고뇌의 결과물들에 대한 확신이기도 합니다.
이 새벽에 이렇게 깨어
달콤하지만 찬 새벽공기를 폐 깊숙히 들여 마시며
나를 점검하는 시간,
신화속의 시지프의 모습
찡그린 얼굴, 바위에 부벼대는 뺨, 진흙에 덮인 바위를 멈추려고 푸른힘줄을 드러낸 다리의 근육들
버겁기만 한 돌의 무게를 견디는 팔의 날 선 근육과 닳아빠진 양손,
그리고 땀범벅이 된 그의 얼굴이
내 어쩔 수 없는
부조리한 내 운명과 오버랩되며
지금 이 순간 내가 아는 내 가을의 전부는
이러한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자는 항복일지도 모르는 겸손함과 연민으로 시작되었고
그것이 또한 내 운명의 축제 한마당일 수 있음에 대한 自慰의 포만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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