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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늦되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10. 28.

 

 

 

주말에 찾아오는 한가함은

분주했던 주중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의 일상에 내려지는 축복같은 기쁨입니다.

 

주중엔 뼈꼴빠지게 일한 나에게

주말에 찾아오는 한적함은  늘 작은 선물처럼 느껴져

뭔가 특별한 어떤 것을 나 자신에게 해 주어야만 한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아무리 늦게자도

아무리 잠을 설쳐도

아무리 피곤해도

찾아오는 주말 새벽의 깨어 있음이

하여 조금은 서운하기도 합니다.

 

주말엔 그냥 늘어질때로 늘어져

나를 다 풀어놓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이 탓이려나...

 

암튼 오늘 새벽은

베란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소리와 빗소리에 깨어

그래도 비비적 거리며

잠을 청해봤지만

역시 넘치는 생각들이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엣따 모르겠다 글 수다나 펼쳐볼까

그만 컴퓨터를 켜고 맙니다.

 

아니, 사실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이리뒤척 저리 뒤척하면서

들리는 매서운 빗바람 소리에 자꾸 마음이 쓸리는 일이 있어서 입니다.

 

어제는

비오는 차분한 아침이 였는지라

행여 데롱데롱 메달려있는 이슬양 몇 첨을 만날꺼나

허심삼아 들른 은파수변을 얼쩡거렸습니다.

 

가을이 익어가는 풍경들이 알싸하게 내 마음으로 스며들기 시작할 무렵,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가지만 남은 벗나무들에 마음길이 쏠렸습니다.

 

이른 봄,

화려한 꽃들을 먼저 피우고

어느 놈들 보다도 먼저 저렇게

또 다가올 겨울을 위해 옷을 벗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인데

 

아직 채 떨구지 못한 어떤 벗나무에   

살갑게  붙어있는 몇조각의 여린 이파리들에 눈길이 쏠렸습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읊으시던 어느 시인의 싯구가 뱅뱅 가슴에 맴돌며

왠지 그 시인의 싯구에 대비한 나의 시를 이렇게 읊고 말았답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를 알지 못해 지척거리는  이들의 뒷모습은 얼마나 애틋한가?"

 

ㅋㅋ

아름다운 시인의 싯구에 이런 장난을 치는 내가 좀 한심하기는 했지만

내 마음이 그런 걸 어찌 하겠습니까, 그 순간에.

 

 

 

"너희 들은 무슨 까닭으로 저리도 가야할 때  가지 못하고

밤새 모진 비바람에 시달리며

늦장을 부리고 있니?

그것도 실하지도 못한 것들이..."

 

가만히 카메라를 들이대며 묻습니다.

 

그랬더니

 

"아, 글쎄, 아주머니

제가요 다른 아이들처럼 빨리왔다 빨리가려고는 생각했지만

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됐구만요.

제가 의도한 바는 절대 아니고요

그래도 하느님이 저에게 허락하신 제 시간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제 운명인데 어찌 하겠어요.

바로 한결같이 말씀하시는

이 모습이

제꼴데로 사는 나의 가장 최선의 삶의 모습입니요.

염려하시는 것 만치롬

절 가엾게 생각치 말아주시랑께요.

저는 충분이 남아 있는 나의 날들을 즐길 것이고

이 늦가을이 주는 주변의 정취와

 스산한 바람비마저도

아니 다가올 이른 서리마저도

고스란히 제 안에 받아들이며 남은 제 날들 기쁨으로 누리다 가렵니다요.ㅋㅋㅋ"

 

 

그렇게 말하는 소리들이 하 기특해

 

"에궁, 그래 너희들이 내 인생의 스승이다. 이놈들아.

자, 내 하도 너희들이 기특해

몇 장 더 찍어볼란다. 선물이당."

 

그렇게 몇 장의 컷을 이리저리 방향을 잡아가며 눌러댔답니다.

 

 

그러고 있는 사이 갑자기

 

내 나이 쉰하고도 둘

 

남들  인생보다 언제나 한참을 뒤쳐져 버벅거리고 있는 내 모습과 비슷하구나

이런 생각으로 까지 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남들과 비슷한 삶의 속도에서 이탈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고집,

"절대로 절대로 난 남들 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을꺼야."

철부지 초등시절 어느 한 순간의 결심이

어느 날 남들의 사는 모습들보다 한참이나  뒤쳐져  헐레벌떡 거리는 나를 만나게 되다니...

 

설익은 땡감의 맛을 그 때 알았더라면

오늘 날 어쩜 홍시의 단 맛을 즐기고 있었을까나?ㅋㅋㅋ

 

 

맞이할 인생의 희노애락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면

나는 남들이 걸어가던 삶의 속도에 나 자신을 맞추려고 애를 써가며

남들처럼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가끔씩 묻곤 합니다.

 

나에겐 만용을 부릴 수 있었던 무식함이 있었고

오만을 만끽할 수 있었던 꿈이 있었고

현실을 바로보지 못해 늘 지상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가벼움이 있었단 말이지...

 

그렇게 은파수변 산책길을 어슬렁거리다

만난, 아주 늦되고 여린 벗나무 이파리 몇 장에 시선을 두며

내 과거의 현재의 미래의 모습들을

그들과 대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래, 그 작고 여린 놈들이 말하는 이치데로

이것이 어쩔 수 없는 내 운명이었더라면

받아들이고 이 늦되고야 말았던 내 운명, 아니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내 꼴데로 그냥 사는 거야.

남들 사는 모양새에 나를 비교하지도 말고

더이상 닮으려고 애를 쓰지도 말고

부러워하지도 말고...

내 모습, 내 팔자 그대로의 기쁨과 축복을 만끽해보는 거라."

 

ㅎㅎㅎ

이런 망상을 하면서  걷는데

저쪽에서

어찌 그리 다정해 보이는 청둥오리 한쌍이 유유히 유영을 하고 있는지...

 

아, 이 지랄 맞은 내 운명의 비극이여...

 

 

이것이 어제 아침 내가 품었던 소갈머리 없었던 한조각의 내 생각이었고

오늘 일요일 새벽

내내 성성거리고 있는 그 생각의 파편들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어제보다도 더 매서운 비바람에 쏠릴

그 여린 잎들도 나처럼 이 시간에 깨어있어

제 운명을 고스란히 견디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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