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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널 至純 이라고 부르겠어.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10. 28.

가끔씩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찬 내 처소를 바라다 볼 때

혹은 친정집 창고에 가득 쌓여져 있는 내 짐짝들을 볼 때

어찌그리 버리지 못하고 끼고 사는 내 폼새가 한심한지...

 

그렇게도 단순하게 살기를

소로우의 모습을 털끝만치라도 닯은  내가 되기를 갈망하지만

여전히

나는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

버리지 못하는 인연들

버리지 못하는 생각들로 넘쳐납니다.

 

어쩜 난 구닦다리

내 손때가 묻은 물건들

희노애락을 같이 했던 인연들

연이은 고리를 풀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미련한 마음들에

내 한쪽을 채우며 사는 지도 모릅니다.

 

퍼내고 또 퍼내면 새로운 어떤 것들로 가득 채워지길 바라는

내 인생의 허기짐에 대한 불안 심리에 대처하는 방법인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넘쳐나기도 하지만

이토록 오래된 것들에 대한 미련도

내가 내 인생을 엮어내는 내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사춘기때 쓰던 일기장 몇권도

대학때 쓰던 교재 몇권도

 

쓰레기장 재활용터에서 주운 객석 1984년 3월 판 창간호마저도

또 내가 즐겨보던 잡지 나무랭이들 마저도

늘 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사실 어쩜 죽을 때 까지도 한번도 들춰보지 못할 것들이건만

언젠가는 언젠가는...하는 생각에 욕심에 미련에 늘 이렇게 삽니다.

 

그렇다 보니

어느 새

내가 물건에 대한 가치를 사람에 대한 진솔성을 시간에 두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내가 버리지 못하는 오래된 것들이 나에게 최고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내 고집 그대로

어떤 오래된 사랑을하는 연인들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고

어쩜 그들의 모든 인격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무엇보다도 한없이 그들이 존경스럽고 부러울 따름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부터인가

나는 至高至純하면서도  죽을 때 까지 계속될 사랑에 대한 환상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내 살아온 날들중에

어떤 사람을 15년쯤 가슴 속에 품고 살았다는 터무니없는 로맨스조차

그런 내 환상에 대한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 그렇게 믿고 있었던

믿고 싶었던

어떤 연인들의 오래된 사랑이야기를 듣고

내 마음이 한없이 따뜻하면서도 부러웠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 내가 그 사람을 바라다 보았던 그대로

그 마음 속엔 그런 따뜻함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며칠이 지나

여지없이 내 환상이 무참하게 깨지는 순간

나에게는 내 환상에 대한 멘붕의 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오래되고 깊었던 그들의 사랑도

무참히 어느 순간에 깨질 수 있다니...

상대의 배신에 의해 울고 있는 한 쪽의 아픔을 목격했을 때

마치 내 일인 것처럼

나도 울고 있는 나 자신을 만납니다.

그것이 그녀에 대한 연민이라기 보다는

내 환상이 깨지고 말았다는 아픔과 배신의 눈물이었다면

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그래 정말 나는 어쩔 수 없는 속물이구나 나 자신을 책해가며

그녀의  가슴속 눈물을 고스란히 받아냅니다.

 

무엇인가 그녀의 눈물앞에 내 위로가 필요 했으련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녀의 오래된 사랑과 그 배신에 아파하는 이야기들을 들어 줄 수 밖에 없는 나의 무능함이 싫었고

솔직하게 이렇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충고해줄 수 없는

나의 이중성이 부끄러웠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얼마든지 사랑도 사람도 변할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막상 오래된 사랑이 깨지는 아픈 시간에 내가 그것들을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내 사랑에 대한 환상을  배신 당했음을  확인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니...

 

 

그 일이 있기 전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내 남은 인생에 최고의 덕목을  至高至純한 사랑에 두겠어."

이런 나의 망발에

비웃음 반, 사랑에 달관한 도사의 명민함 반의 무게로 그녀는 이럽디다.

 

"앞으로 가시네, 너를 至純이라고 부르겠어.

근데, 지순아, 꿈 깨

 至高至純,

애당초 그런 것은 없어.

단지 꿈일 뿐이야.

다 변하게 되어 있다니깐,

그것이 세상사의 속성이야.

거스리지 말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지고지순한 사랑보다

구둘장같은 그런 관계를 꿈꿔라, 요 철딱서니 없는 것 지순아."

 

"넌, 너무 지나치게 똑똑혀.

사랑에 달관된 너의 자세가 좀 거시기하다.

근데, 야 아. 어감이 넘 촌스럽다.

그냥 至高라고 불러주면 안되겠어.

가시네, 至高라고 불러."

 

막무가네로 억지를 쓰고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려, 그려 .至高다 지고...

지순아 至純아."

 

낄낄낄 대며 여전히 지순이라고 부를 것을 주장하는 그녀의 다정함이 내내 귓전을 맴돕니다.

 

지금 이 시간

 

至高至純한 사랑따위 어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애석하기도 하지만

 

또 어쩜 세상 어느 구석에선가는

분명

내가 꿈꾸는

至高至純한 사랑이 존재 할 것 같은

반드시 그래야만 된다는 억지를 부려봅니다.

 

부끄럽지만

至高至純한 사랑이야기의 시작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딱 한편

 

"꽃 무릇 그녀"라는 이름으로 시작 했기는 했지만

너무 넣고 싶은 이야기들이 넘쳐나 잠시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아마 풀어가기 시작 전에

우선 내 식의  至高至純한 사랑에 대한 확신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꽃 무릇 그녀에게서 많은 나의 모습들을 들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는지 모르겠고

장거리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이렇듯 망설이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뜻 내키는  어느 날

또 졸작이지만.

" 내 친구 K"의 경우처럼

一筆揮之의 자세가 나올 수도 있공...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면

내 이야기 속에서만 이래도...

그것이 오늘 내 지고지순한 사랑의 환상에 대한 위로가 될 수도 있음을

아니 그 속에서나마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내 환상을 간직하고 싶은

이 터무니없는 욕심!!!

 

오늘 아침

여전히 바람에 휘둘리는 나목들 마냥

내 마음도 요 모양, 지 꼴데로 끊이없이 흔들리고

또 나는 이 흔들림을 이렇게 즐기고 있나 봅니다.

 

새벽잠을 보충키 위해 이제 컴퓨터와 작별하고

뒤척이다 뒤척이다

늦, 잠 삼매경에나 빠질랍니다.

이래서 일요일이 그지없이 좋습니당...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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