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좋아하는 작가 김연수는 저서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숨말하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냅니다.
국어사전에 '외롭게 말하다'에 해당하는
'獨語하다' 즉 '혼잣말하다'라는 용어는 듣는 사람이 없는데도
뭔가를 계속 말하는 행위를 가르키는 동사라고 지적하며
그것과 구별되는
'그게 가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계속 말하기'에 해당하는 단어로써
'숨말하다'라는 단어를 짓고 싶다고 했습니다.
'숨말하다'는 '숨쉬다'처럼 모든 사람에게 일생동안 총량이 정해진 말하기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건 소통이전에 생존 자체를 위한 말하기라고 덧붙이며...
말하는 사람으로서는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말하는 말하기
어떤 심연 앞에서 말하기
즉
"가까운 사이인데도 난 당신을 몰라요.
당신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그러니 한 번 더 말해 주세요."
그 말에 당신이 한 번 더 말하기 시작하면,
설사 그 말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 번 더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한 번 더 말하고 내가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면,
관계는 구원 받을 수 있으리라.
그러니
우리사이를 유지하는 건 막힘이 없는 소통이 아니라 그저 행위들 ,
말하는 행위, 그리고 듣는 행위들일지도 모릅니다.P47~8
라는 주장을 폅니다.
김연수의 이런 기발한 생각들을 읽으면서
나의 '숨말하기'행위에 대한 어떤 싸함이 가슴 한 편을 시리게 합니다.
각자 사람마다 평생 말하기의 총량이 있는 듯 한데
살아오는 동안 느리지만 꾸준히 자기의 용량을 일상에서 채워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연유에서 그 총량을 채우지 못해 초조한 사람처럼
어느 시기에 마구마구 말하기에 돌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날의 내 모습을 보면서
오랫동안 말하고 살지 못해 ,
나의 말하기의 총량을 채우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나는 많은 것들을 토해내고 있구나 하는 그런 생각,
언젠가 어느 넘에게
(잠깐, 넘이란 단어 참 좋아하지요. 놈이란 단어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넘의 것일지도 모르는 뉘앙스가 담겨져 있고 영원히 넘(남)일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도 있겠고...미운 놈, 이쁜놈의 사랑스런 표현일 수도 있겠고...)
70여통의 내 숨말하기 편지를 쓴 적도 있었고
또 접수되지 않은 70여통의 숨말하기 편지들이 내 우체통에 고스란히 남아있기도 하고
앞으로도 내 생존을 위해
그에게 쓰여질 숨말하기 편지들이 끝없이 대기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와의 소통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내 생존을 위한 피눈물임을 지금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아마 나는 지금 이렇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
이런 가슴 뛰는 가을을 만끽하고 있을까
내 인생에 대한 신념들이 제 색깔을 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말입니다.
김연수는 덧붙입니다.
"숨말하기는 혼잣말하기보다 훨씬 더 외롭다."
ㅋㅋ 그이는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어찌그리 총명하신가요?
나의 숨말하기 행위는 하여 넘 외로웠기도 했지만
그나마 그렇게라도 말 할 수 있어서
내가 내 가을을 만끽하며
미래의 내 인생의 그림들을 그리게 만들고 있다니...
넘 신기하기조차 합니다.
아마 내가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마다 적어 내려갔던 몇 권의 일기장도
내 숨말하기 행위에 해당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 까지 이르게 됩니다...
아마 내가 지금 내 블로그에 카페에 쓰는 모든 글들 또한
내 숨말하기 행위의 일종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됩니다.
다행인 것은
그 중 몇몇은 내 숨말하기행위에 귀를 기울여주는 이들이 있어
내 숨말하기는 더이상 숨말하기에 그치지 않고
소통의 단계로 까지의 진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비록 누군가에게 보내는 끊임없는 내 숨말하기의 일부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
스스로 사장되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말입니다.
ㅋㅋㅋ
가끔씩 이런 희망을 품어보기도 합니다.
내 심연에서 출발해 상대의 심연을 향해 달리는 숨말하기는
단지 시간의 문제 일 뿐이지
결국 통하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즉 말하고 듣는 행위에 의한 관계의 구축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번 더 말하고 한 번 더 듣을 수 있다면...
그저 말할 수만 있다면,
귀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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