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기하게도
날씨가 내 마음을 알아챈 것인지
혹은 내가 날씨의 모양새를 미리 감지한 것인지,
그제 저녁부터 내동 비바람이 치는 통에
어제는 몹시 힘이 들었습니다.
"지 오늘 몹시 힘들구먼요."
구구절절 내 심경을 하소연하는 메세지를 보냈더니
"저런...
비오니 날 궂이를 했구만...
어서 드가서 와인 한 잔 마시고 푹 자요."
따뜻한 위로를 핑계삼아
저녁 8시도 안돼서 가게를 파하고
곧장 돌아와 잠을 청했습니다.
하필 내 마음에 찬바람이 불 때
어찌 세상도 같이 찬바람이 불까
찔끔거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잠 삼매경에 빠져들었는데
이렇게 새벽을 깨어있는 노인네가 되어
고스란히 채 고개를 넘어가지 못한 씽씽 바람이
온통 지랄을 떠는 모양새를 만나게 됩니다.
왜 하필
이 깨어 있는 시각에 문득,
가끔씩 마음이 한적할 때 빙 돌아가는 내 출근길,
고갯마루에 浩也靑靑(獨대신에 클호) 서있는
메타스퀘어 몇그루가 생각 날까요?
이 바람에 몹시 흔들리겄다.
아직 채 가을색도 모시지 못한 것 같았는데
이 씽씽 바람에 얼마나 흔들리며 부대낄까 생각하니
자신에 대한 연민이 그 메타스퀘어 몇 그루에
고스란히 전이 된 것 같은
동병상련의 아픔이 느껴 진다고나 할까?
내일 아침 출근 길엔
꼭 내 너희들을 만나 안부를 물어야 쓰겄다.
아니 밤새 안녕한지 내 두눈으로 확인혀야 쓰겄구만...
그렇게 마음이 쓰이는 나는 뭥미?
그런 쓰달데 없는 생각을 하는 새벽에
이런 한 줄의 글을 만나는 군요.
"약한 것들은 서로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안다."
(김연수 산문집 지지 않는 다는 말 p42)
어렸을 적 부터 유난히 눈물이 많았고 겁도 많고 거기에 고집불통,
왜케 나만 외로운겨라는 의문을 가지고
늘 부데껴 온 나에 대한 변명을 드디어 찾았습니다.
"그려, 이게 바로 그놈의 핏줄 때문인겨,
다, 엄마 때문이랑께."
흑흑
그렇습니다.
언젠가 석양이 유난히 붉어
내리는 땅거미가 짙게 깔리던 날
엄마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지금도 저 석양과 노을을 보면 가슴이 싸하다.
대 여섯살,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 끌려가던 엄마(엄마의 엄마)가 생각 나서...
그때 나는 열린 봉창문 사이로
자꾸 끌려가면서 뒤돌아 보는 엄마를 부르며 얼마나 울었었는지...
그때의 노을이 오늘만치로 붉었지...
아직도 그때 생각이 나면..."
하고 눈물을 글썽였던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나의 여리고 쉽게 상처받곤 하던 내 영혼에 대한 변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사위가 못마땅했던 엄마의 외할머니는
딸을 둘이나 낳고 살고 있는 딸래미의 모양새에 불만을 품고
만경땅 넓은 들녁을 가진 홀아비에게 딸을 다시 시집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 뒤 남겨진 홀아비와 그 두 딸의 지난했던 삶의 여정은 아마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결국 내 외할아버지, 엄마의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에
알코올 중독과 오랜동안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고
나는 그런 외할아버지가 엄마 대신 품에 안고 키웠단 스토리...
한창 심리학책에 몰두하다가 내 여린 영혼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을 때 흘렸던 눈물들은
아마도 지금의 건강한 나를 있게한 치료제였던 것 같습니다.
병의 원인을 아는 것으로 부터 그 치유는 시작되었고
그 시작과 더불어 치유의 완성이 이루어지더군요.
가끔씩은 내가 좀더 나 자신을 일찍 알았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지금이어서 다행이다 이런 마음이 더 큰 것이 사실입니다.
살아온 세월의 연륜 속에서 뭔가 깨닫는 것은
훨 빠른 수용의 길로 진입하며
수용으로 끝나지 않고
새롭고 놀라운 것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제 아침 울며 불며 내 하소연을 들어주던 그녀가
나에게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넌 그 나이에 아직도 순수해,..
맑게 깔깔 거리는 네 모습,
이렇게 하염없이 질질 짜는 네 모습을 보면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내 영혼 밑바닦에서 솟아나오는 통제할 수 없는 네 감정이 고스란히 보여.
난 그게 넘 부럽다."
ㅋㅋ, 자뻑하는 느낌이 아니 드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심리학책 속에서 오랫동안 은둔하며
자신의 치유를 위해 몇 십년을 불철주야 웅크리고 있는 그녀에게서 들은 이 말에
난 또 질질짜던 울음을 멈추고
"그려. 가시내. 너라도 나를 올곶게 봐 주다니...
내 생이 쓸쓸치만은 않타, 야" 하고 너스레를 떱니다.
참 놀랍게도 깨어있는 이 새벽,
나의 김연수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p42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
한때는 쉽게 상처받는 내 마음이
건강치 못한 병인 줄 알았었는데 이런 반전이 있다니...ㅋㅋㅋ
그렇습니다.
고통과 기쁨에 민감하며 흔들 릴 때 충분히 흔들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런 자연이 바로 내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오늘 새벽 이 세찬 바람에 흔들릴 메타스퀘어 몇 그루를 떠 올리며
그들의 처지를 마음에 두는 것은
곧 그들이 나를 닮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린 어쩜 우리들 모다 그렇게 고상떨며 안 그런 척 하지만
얼마간은 몹시도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뿐이겠습니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고통이자 환희 이기도 합니다.
고통을 인지하기 두려워 상처를 유예하며
야금야금 내 자신을 갉아먹었던 시간에 대한 인식은
이렇듯 내가 자연의 일부이며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수용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요?
"약한 것들은 서로의 처지를 너무도 잘 알므로
나는 한 눈에 그 넘에게 필이 꽂혀
그 넘 속에서 나를 보았구나."
어제 내 눈물에 대한 내 나름의 연고를 바르고 있습니다.
이 몹시도 바람부는 새벽에...
내일 아침은 그 고갯마루에 걸려 있는
메타스퀘어 몇 그루를 꼭 확인해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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