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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우연이 빚은 예술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9. 18.

비트물이 든 오이피클을 썰며 어찌 그리 예쁜 색이 들었을까  감탄한다. 

우리가게의 밑반찬은 딱 두가지.

김치와 비트물로 색을 낸 양배추 피클...

 

몇 주 전에 진메 꽃순이가 전화를 했다.

"넘 바빠 한동안 밭엘 나가지 못했더니 오이란 놈들이 몽땅 늙어버렸네.

넌 혹시 쓸데가 있을 줄 몰라서..."

말끝을 흐린다.

"가시네, 뭘 망설여, 공짜는 언제나 감지 덕지지."

속으로만 황송해 하며 쓸 용도도 딱히 생각나지 않는데도 망설이는 그녀의 호의를  냉큼 낚아챈다.

한 다라이쯤이나 될까

사실 공짜라서 낼름 받았지만 고민이다.

뭘 해야하나...

이렇게 늙은 오이로 피클을 담을 수 있을까

에라, 모르겠다. 우선 썩을까봐  씻어 소금물에 퐁당 담갔다.

영, 안되겠으면 양념에 묻혀 밑반찬으로 쓰지 뭐...

어느 날 보니 양배추 피클을 다 퍼내고 남은 피클 국물을 버리려다

소금물에 절인 오이를 꺼내 옮겨 담았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작품이 탄생했다.

 

 

 

 

한날 한시 동시에 비트물에 담근 오이들이었건만

어떤 놈은 꽃분홍, 어떤 놈은 연분홍, 어떤 놈은 황분홍,ㅋㅋㅋ

한 배에서 나온 형제들이 제 각각인것처럼

이놈들도 제 고유의 성정데로 제 각각 똑 같은 비트물을 받아 들이는 모양새가 다르다.

 

 

 

그 색깔들을 감탄하느라 후딱 카메라를 챙겨 이렇케 저렇케 컷,컷,컷,을  눌렀더니

색의 예술이 창조 되었다.

뭐, 이런 횡재가...ㅋㅋㅋ

내 제멋데로  취향은  의도된 완벽한 작품성보다

우연에서 찾은 서투른 미완성의 여백에 마음을 뺏기곤 한다.

 

 

어디 예술에서 뿐이랴,

관계의 순수한 서툼, 아마츄어의 정열을 쏟는  용씀,  전문인의 미숙한 허당...

세상은 그렇게 꼭 잘난사람만이 아름다운 법은 아니니까...

 

 

혹시 내 서툰 용씀도 아름다울 수가 있단 말여 ^*^  ?

오메, 뭐 이런 황당한 자위!!!

우연히 만난 '색의 예술'을 만끽한 날 밤에

나는 또 나를  일케 위로하며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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