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3일간의 황홀...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9. 13.

 

 

지난주 목요일 오후, 잠시 달콤한 오수에 빠져 있는데 덜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야속한 여사님이 계셨다. 이 시간에 왠 손님인가 했더니 접시에 시루떡 한 덩이와 1,000원짜리 로또 한 장이 얹혀져 있는데... 길 건너 대로변에 로또방이 새로 생겼다고 인사차 들른 것이란다.

 

 

와, 로또, 몇 년 만에 보는 로또 한 장으로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것도 공짜 로또로...

 

 

로또에 당첨된다면...

 

 

나는 이것을 반으로 나누어야 하나? 그냥 내가 산 걸로 해야 할까 걱정부터 앞선다. 자기 집에서 나눠준 로또라서 틀림없이 나누자고 할텐데... 나누기 싫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그래 로또에 당첨 확인되는 월요일 돈을 몽땅 찾아야 한다. 근데 어디서 찾는 담? 몽땅 내 통장으로 옮겨놔야 할까? 그런 다음 그 날 하루는 내 부채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거라...

 

 

그리고 다음 날 얼마간의 현금과 현금카드를 가지고 튀는 거라. 서울로... 우선 홍제동 힐튼호텔 레지던스에서 일 주일 쯤 휴가를 갖고... 그럼 가게는 어떻하지? “잠시 여행중”이라고 써 붙여야 하지 않을까?

 

 

로또에 당첨되면 수없이 전화가 걸려 온다는데... 우선 전화는 잠시 정지 시켜야겠지. 글구 새 전화번호는 식구들 친구들에게만 공개 하고... 그렇게 일주일쯤 서울에서 문화의 향기, 사치의 향기를 실컷 맛본 다음, 노트북 하나와 DSRL디카와 책 몇권을 챙겨 푸켓으로 튀어보자.

 

 

잡지책으로만 보던 그 무슨 호텔에서 력셔리 여장을 풀고 우선 실컷 질리도록 조카의 재롱을 함께하는 수영을 하고. 그리고 선선한 시간엔 라운딩을... 나머지는 맛사지샵에서 몸을 풀고 ... 그렇게 보름쯤 누려볼 수 있겠지... 엄마도 부를까? 엄마에게는 무엇을 해줘야 되나? 5천쯤 통장에 넣어줄까? 아니지 동생들에게 뺏기니 그것도 안되고... 그냥 엄마는 지금처럼 사시게 하고 대신에 좀 더 깨끗하고 큰 집을 하나 지어 주는 거야. 30평쯤 되는...

 

 

그다음 동생들은? 그래 막내에겐 1억쯤 떼어 줄 수 있겠지... 대신 종신보험을 드는 거야. 나 늙었을 때 외롭지 않게 자주자주 찾아오라고... 그리고 여동생에겐, 그년은 말야, 잘 사니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사고뭉치 큰 동생엔 집을 하나 사주고 싶은데... 동생이름으로 하면 아마 또 사고 칠 것 뻔하고... 그냥 내 이름으로 사서 살라고 하면 안될까?

 

 

그 다음 친구들은? 푸하핫!!!

 

 

그쯤에서 생각을 전환한다. 그렇게 한 달 쯤 내 팽겨진 시간을 정리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거라.

 

 

우선 가게는 “이전 개업”이라고 써 붙이고 은파호수 주변에 땅을 먼저 구해봐야지..아니 이것은 서울로 가기 전에 먼저 부동산에 부탁을 해 놓아야겠지... 2층 집을 지을 땅을... 아래층엔 커피숍겹 레스토랑을 이층엔 딸랑 방 하나만을 지닌 25평쯤 되는 공간으로... 모든 짐은 방 한곳으로 몰고 나머진 원룸처럼 쓰는 거야...천창이 있는 다락방엔 침실을 배치하고...밤에는 비오고 눈오는 풍경을 보고... 별들이 총총...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초승달을 보면 그리움에 눈물 짖고 보름달을 보면 계수나무와 토끼를 찾아보고... 사방은 모두 유리문으로 달꺼야. 전자동으로 조작되는 커튼을 설치하고 눈 뜨자 마자 ‘마리오 란자’를 틀고 창문을 걷는 거지...그럼 은파호수의 물안개가 몽땅 내 것이 될 수 있겠지...ㅎㅎㅎ

 

 

바리스타를 하나 채용해야겠지. 커피 향내를 항상 맡을 수 있고 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그런 공간. 가끔씩은 내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지인들... 비오는 날, 또 가끔은 사이폰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고객들이 있었으면... 글구 뒤처리를 할 수 있는 아줌마를 한 분 고용해야겠다. 월급을 많이 주고 모든 살림을 맡아 줄 수 있는... 나는 요리만 하는 거다. 그것도 예약 손님에 한해서만... 주말엔 음식예약은 받지 않고 뒤뜰에 모셔둔 캠핑카를 타고 나는 거지... 강가 호젓한 곳, 혹은 바닷가에 자리를 틀고 책도 읽고 글 수다도 피우고... 가끔씩은 친구들과 함께, 또 가끔씩은 애인과 함께라면 더 좋겠지...

 

와, 내 삶이 이럴 수 있다면,..

 

 

참 마지막으로 멋진 복수 하나쯤 해야겠지... 그래 그 놈, 내 마음을 가져간 그놈에게 근사한 차 한 대쯤 사주는 복수로 결말을 지어야겠당.

 

이 멋진 황홀감에 취해 있으니  희죽희죽 웃음이 삐져나오고  그 많은 공돈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불우이웃돕기에 선뜻 나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생기고...

 

아, 이렇게 나는 살고 싶은 거구나. 이렇게 속되고 사치스럽고 세상 것들에 취해...나는 이 정도의 사람이구나, 황홀했던 내 3일이 가난한 내 마음을 읽는 3일이 되고 말았네...ㅋㅋㅋ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0) 2012.09.19
우연이 빚은 예술  (0) 2012.09.18
낯선 방문자  (0) 2012.09.12
2012년 9월 9일 일요일 흐린 날  (0) 2012.09.09
해망동 가는길, 오는길...  (0) 2012.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