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81 - 길위의 생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9. 2.

 

지난 일주일간 태풍 볼라벤님과 덴빈님을 맞이하느라 내심 불안, 초조 그리고 지루한 기다림에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습니다. 자연의 모습을 따라 내 마음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한없이 나약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피곤함이라는 핑계는 게으름의 좋은 변명에 불과하건만...

 

그래도 이처럼 편안하고 한가한 주말, 오랜만에 단 번에 소세키의 ‘길위의 생’을 취해 보았습니다. 독서의 즐거움이란 단지 일상의 지루함을 잊게 하는 소일거리일망정 잠시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생을 엿볼 수 있는, 여행할 수 있는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소세키가 완성한 최후의 장편소설이며 그가 쓴 유일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합니다. 그의 생애 중 이 작품만큼 적나라하게 자신과 주위에 대해 그대로 쓴 작품도 드물다 합니다. 초기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도련님’ ‘풀베개’등에 소세키의 그림자는 나오지만 어느 쪽이든 작자의 공상에 의해 여려 형태로 변형되어 나왔었는데 ‘길위의 생’‘만큼 그의 유년기를 그대로 그린 작품은 없었다고 합니다.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축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일곱 살 때까지 주인공 겐조를 키워준 양부 시마다가 갑자기 나타나 14년 전 겐조가 쓴 증서를 증거로 복적에 따른 금품을 강요하는 사건, 다른 하나는 겐조의 일상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아내와의 갈등입니다. 여기에 출세한 겐조에게 걸핏하면 손을 내미는 형제, 몰락한 장인 그를 둘러싼 인간관계가 얽히고설킵니다. 그것들은 지식인으로서의 겐조의 자존심을 손상시키고 좁은 현실의 인간관계에 얽매어 몸부림치게 만듭니다. 소세키는 이 작품에서 어떤 기만적인 구제도 거부하고 인간의 비소함과 암흑을 철저하게 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희망도 구제도 없는 대신 절망도 없으며 얽히고설킨 복잡한 인간사가 작가의 따뜻한 눈으로 주시되고 있습니다. 결점투성이 겐조의 아내 오스미의 인간적인 면도 이런 눈으로 선명히 비춰지고 있답니다. 특히 소세키가 보여준 지식인 겐조의 공허한 이론을 생활인 오스미의 눈을 통해 폭로하고 있답니다. 그녀의 사실적인 생활의 모습을 보며 과도할 정도로 일상에 밀착해 있는 사건다운 사건이 하나도 없는 소설이지만 소세키의 근대화의 모순을 바라다보는 에고이즘와 불신으로 몸부림치는 고독한 인간군상을 철저히 파헤쳐 논, 그래서 읽는 내내 손을 뗄 수 없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 마지막에 주인공 겐조를 통해 소세키는 말합니다.

“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이란 하나도 없어. 일단 한 번 일어난 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그저 여려가지 형태로 모양만 바꾸는 거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

 

 

이 말은 ‘길 위의 생’의 사상을 관통하는 모티브인데, 여기에 소세키의 일생을 걸고 추구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집약되어있다고 합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계속 태어나고 늙고 죽어갑니다. 그 생의 과정에서 서로 얽히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미워하고 싸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해결도 없으며 더욱이 자기가 생각한 대로의 인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마다 미완의 삶을 짊어진 채 생의 한가운데를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그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중간 쯤 읽다가 대출일자가 되어서 잠시 보류중이고 ‘그 후’ 그리고 ‘길 위의 생’을 읽었습니다. 소세키에 대한 정보를 가지지 못하고 두서없이 그의 인생을 뛰어 넘고 있습니다. 잔잔하게 그려지는 일상과 그 일상속의 주인공 겐조가 겪는 심리적인 상처와 갈등을 자세히 그려 놓았습니다. 자칫 지루할 법도 한데 술술 책 페이지가 거침없이 넘어갑니다. 비록 20세기(1915년)에 쓰여 진 작품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진부한 일상과 하등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 말했다고 합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알려면 길위의 생을 읽어보십시오.”

 

소세키의 다음에 읽을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戀書시리즈 -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戀書 - 83 - 새의 선물  (0) 2012.09.19
戀書 - 82 - 학문의 즐거움  (0) 2012.09.07
戀書 - 80 - 그 후  (0) 2012.08.25
戀書 - 79 - the dip  (0) 2012.08.17
戀書 - 78 - 나는 왜 눈치를 보는가  (0) 2012.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