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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80 - 그 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8. 25.

일본 근대문학사를 대표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로 <산시로>, <문>과 더불어 삼부작을 이루는 작품이다. 삼각관계 소설의 원형을 이룬다고 볼 수 있는데, 한 여자를 둘러싸고 두 남자가 불신과 질투, 사회적.개인적 윤리의 갈피에서 고뇌를 거듭하는 것이 이야기의 큰 줄기. 작가는 사랑의 진행과정보다는 인물의 내적 갈등과 사고에 주목한다.

다이스케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하지 않고 집에서 경제적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는 '고등유민'. 그는 '빵과 관련된 경험'을 저열한 것으로 여기며 스스로를 '직업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고귀한 부류로 치부한다. 그의 퇴행적이고 자유분방한 삶의 양태와 탐미적인 미의식이 그려지는 소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들을 읽어보고자 그의 작품의 출발점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반쯤 읽다가 밀쳐 두었다. 성질 급한 내가 그의 문체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겠더라. 그러나 시간을 두고 나머지를 읽을 생각이다.  그의 연애소설 3부작이라는 '산시로' '그 후' '문' 그렇게 차례데로 읽었으면 좋으련만, 어쨌든 도서대출 편의상 '그 후'를 먼저 읽게 되었다. 일본 근대문학의 효시자, 혹은 20세기에 쓰여진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이라서 그런지 소세키는 정말 다정다감한 작가인 듯 하다.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고 구구절절 인물묘사며 배경묘사를 쓸 수 있었는지... 한편으로는 감탄을 하며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했는데 어느 덧 책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다이스케의 과거, 현재, 그리고 그 후의 모습이 궁금해서 였을까?

 

 

 다이스케의 아버지와 다이스케 본인의 생각

 

자신이 다이스케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했다는 단순한 사실이야말로 어떠한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일에 대해서도 부자간의 영원한 애정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아버지는 그러한 신념으로 밀고 나갔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에게 냉담한 아들로 만들었다. 아버지쪽에서는 다이스케를 자신의 태양계에 속하는 행성으로 여기고 있어서 자신은 어디까지나 다이스케의 궤도를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확신으로 밀어붙였다. 그래서 다이스케도 하는 수 없이 아버지라는 늙은 태양 주위를 예의 바르게 돌고 있는 체하느 것뿐이었다.

 

다이스케는 결코 빈둥거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은 직업에 의해 더렵혀지지 않은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귀한 부류의 인간이라고 갱각할 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실은 아버지가 가엾어졋다.,P41

 

다이스케의 친구 히라오카와의 토론을 들어보자.

 

'난 실패했지, 그러나 실패는 했을방정 아직 일하고 있어. 또한 앞으로도 일할 생각이지. 자네는 내가 실패한 것을 보고 비웃고 있어- 실제로 비웃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은 비웃은 셈이나 마찬가지지. 그러나 그러는 자네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닪은가? 자네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야. 달리 말하면 의지를 실현할 수 없는 사람이지. 의지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야. 왜냐하면 인간이나까. 그 증거로, 자네는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있음에 틀림없어. 나는 나 자신의 의지를 사회에 실현시키려고 하고, 내 의지로 인해서 사회가 조금이라도 내가 바라는 대로 되었다는 확증을 가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어. 바로 그런 점에 나라는 인간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자네는 단지 생각만 하고 있어. 생각만 하다 보니 관념 속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따로따로 분리시킨 채 살아가고 있는 거야. 이런 엄청난 부조화를 감내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겉으로 드러나지 안흔 크나큰 실패가 아닐까? 왜냐고? 내 경우 그런 부조화를 겉으로 드러내지만, 자네의 경우는 속에 감춰둔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으로, 사실 그 정도를 따지자면 겉으로 드러낸 만큼 내가 자네보다 덜 실패했댜고 할 수 있지. 그런데도 나는 자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있어. 그리고 나는 자네를 비웃을 수가 없어.  아니 비웃고는 싶지만 세상 사람들은 비웃어서는  안 된다고 하겠지."p100

 

"왜 일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그건 내 탓이 아니야, 말하자면 세상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p103

 

 

다이스케가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를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는 인간이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반대로 인간은 태어나서야 비로소 어떤 목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객관적으로 어떤 목적을 만들어서 그것을 인간에게 부여하는 것은 그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태어날 때 이미 빠앗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따라서 인간의 목적이란 태어난 본인 스스로가 만든 것이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라도 그것을 마음대로 만들 수는 없다. 자기의 존재 목적은 자기 존재의 과정을 통해 이미 천하에 발표한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에서 출발한 다이스케는 자기 본래의 활동을 자기 본래의 목적으로 삼고 있었다. 걷고 싶으니까 걷는다. 그러면 걷는 것이 목적이 된다. 생각하고 싶으니까 생각한다. 그러면 생각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 이외의 목적을 가지고 걷거나 생각하는 것은 보행과 사색의 타락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본래의 활동 이외에 어떤 목적을 세워서 활동하는 것은 활동의 타락이 되니. 따라서 자기의 모든 활동은 한낱 방편의 도구로 삼는 것은 스스로 자기 존재의 목적을 파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고등유민의 자세로서의 삶을 지양하는 그가 친구의 부인 미치요와의 부도덕한 미래를 결심한다.  즉 다이스케식의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고자 가족과 세상의 비난을 견디려 한다. 결국 다이스케는 도덕적 판단에 의거하여 미치요를 빼앗는 것을 정당화하며서도 스스로의 불륜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대해서는 '자연'의 논리로 피해 가려 한다, 그리고 그 후의 그의 삶을 독자의 상상에 맡기게 된다.

 

아마 소세키의 '그 후'는 다음 작품인 '문'에서 부정되고 있다고 한다. 빨리 '문'을 읽어보자 마음이 급해진다. 또다른 소세키의 작품들은 어떨지?

 

오늘은 독서모임  '공감'의 회원들과의 만남이 있는 시간이다. 2주만에 만나는 모임, 기다려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