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세대가 아닌 나보다 더 젊은 세대들의 생각과 그 생각으로부터 탄생한 작품들에 대한 순전한 호기심으로 김영하의 장편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호기심, 재미, 충격 그리고 쓰린 현실에 대한 인식, 그리고 급기야는 아린 고통, 그리고 내지루한 삶에 대한 넋두리, 다만 바늘 끝으로 살살 자신의 삶에 대한 어줍잖은 자해를 감행하며 지내는 내 삶의 태도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의 소설 속의 주인공 제이는 목이 쉰 기독교 광신도와 푼돈에 몸을 파는 남창, 두 다리를 잃고 찬송가를 부르는 걸인과 어수룩한 상경객을 노리는 사기꾼, 구역없는 창녀들과 가출한 십대들, 외계인의 도래를 믿는 신흥종교 교주와 호객꾼들, 소매치기들이 서로를 증오하며 살아가는 곳, 목탁을 치며 구걸을 하는 가짜 중 뒤에서 콩팥을 거래하는 남자들이 만나는 곳, 마치 거대한 세상의 부조리의 축소판인 고속 터미널 한 구석에서 십대의 소녀에 의해 낳아져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손에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한 제이를 터미널 상가에서 장사하는 돼지엄마가 키우게 된다.
이 소설은 이러한 제이와 한 집에서 사는 엄마와 삼촌의 관계를 목격하고 함구증을 앓는 동규, 그리고 혼자 남게 된 제이가 길 위에서 만나는 불운한 그래서 외롭고 거친 십대들과의 만남과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길과 길이 만나는 데서 태어났대. 앞으로도 계속 길에서 살게 될 것 같다는, 그런 예감이 있어.”
제이는 스스로를 이렇게 요약한다.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야생의 길에서 생존해야 하는 제이는 자신과 같이 세상으로부터 발길질당한 고아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었어. 성난 개떼처럼 으르렁거리기는 했지만 막상 내가 다가가면 꼬리를 내리고 받아줄 것 같았어. ”
“난 요즘 자주 아파. 심장을 걸레처럼 누가 쥐어짜는 것 같아.” 심장을 움켜쥐며 고통을 호소하던 제이.
“기쁨도 느끼지. 그들이 행복해한다면. 그런데 기쁨의 순간은 흔치 않아. 대부분은 고통이야.”
오로지 고통만을 느끼느냐는 동규의 물음에 너무도 희미하게 기쁨의 흔적을 말하던 제이.
부모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많은 아이들의 우두머리가 된 제이는 고아 떼를 이끌고 광복절 대폭주를 감행한다.
“그럼 우리가 느끼는 건 뭐야? 분노야. 씨발, 존나 꼭지가 돈다는 거야. 그래, 우리는 열 받아서 폭주를 하는 거야. 뭐에 대해서? 이 좆같은 세상 전체에 대해서. 폭주의 폭 자가 뭐야? 폭력의 폭 자야. 얌전하면 폭주가 아니라는 거지.”
종묘에서 테헤란로로 이어지는 고아들의 존재 증명! 고아 떼는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방식으로 도심 한복판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슬픔 그 자체라 슬픔을 모른다. 그리하여 다만 이렇게 분노의 폭주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겨우 바로 코 앞, 내 자신의 삶만을 바라다보고 하루하루의 고단한 일상과 넘어야 할 언덕을 위해 가뿐 숨을 내뿜는 나에게 우리라는 거대한 생활 속에 저리도 아린, 고통스런, 어쩜 그 고통을 고통으로 느낄 수 없는 무감각 속에 버려지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어두운 덩어리의 일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소설을 통해 과연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 소설을 통해 마침내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손이 닿는 곳마다 아픈 까닭은 바로 자신이 아프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햇빛을 가리고 빗속으로 걸어 들어 간 작가가 우리에게 속삭인다. 우리 존재가 바로 고아와 같다고.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은 결국 그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렇게 작가는 제이와 동규, 그리고 길위의 버려 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펼쳐 보여 주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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