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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40 - 나무의 겨울 나기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6. 3.

김용규님의 '숲에서 온 편지'라는 책을 읽고 또 읽습니다. 사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땐 설렁설렁, 심심풀이 땅콩 먹듯 그렇게 주어 담았거든요. 그런데 한 줄 한 줄 읽어가면서 점점 빠져드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내 마음의 흐름을 따라 때 맞춰 찾아온 나의 귀한 인연인 듯 하여 한 줄 한 줄 읽어 가는 내내, 잔잔한 기쁨, 깨달음 내지는 설레임마저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 시키고 있습니다.

 

"자기다운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을 산다는 것일까요?" 묻습니다. 그리고 또 대답합니다.

 

"최근에는 자신이 원하고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그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것이 자기다운 삶이라는 논의가 활발했고, 또한 그렇게 수렴하는 듯합니다. 숲의 언어로 표현하면 그것은 마치 나무나 풀이 자기만의 하늘을 여는 것, 그리고 저다운 때에 맞추어 저다운 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큰 키의 풀들에게 휩싸인 감나무들은 그늘에 가려진 묵은 가지를 살리려 애쓰는 노력보다 하늘을 놓치지 않을 새로운 가지를 뽑아내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너른 잎을 내고 광합성의 근거지를 확보하려 기를 쓰지요. 칡덩쿨에 휩싸인 은행나무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가지건 햇빛을 놓치지만 않는 다면 지면에 가까운 풀보다 지면으로부터 먼 나무에게 유리한 햇볕이 내리쬐는 내년 봄이 돌아올 것이라는 점을 본능처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은 자신의 어려운 처지가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믿고 자기 하늘을 열기위해 어려운 시간에 무기를 개발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연에는 겨울이라는 시간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여서 우리 삶에도 종종 겨울이라는 시간이 찾아 들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겨울이 찾아온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겨울을 맞았는데도 자신의 삶에 꽃이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고통이 있습니다. 겨울을 맞아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고, 겨울이 온 것을 알지 못한 채 지나온 봄날처럼 여전히 꽃피기를 바라는 데 우리의 불행이 있습니다. 나무를 보세요. 겨울이 오기 전에 나무들은 가장 붉거나 노랗거나 저다운 빛으로 잎을 물들입니다. 우리는그것을 단풍이라 부르고 그 가없는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실은 단풍은 나무들이 자신의 욕망을 거두어들이는 모습입니다. 이제 곧 성장을 멈춰야 하는 시간을 맞으려는 의식이 나무들의 단풍인 것입니다. 그들은 마침내 봄날부터 피웠던 모든 잎을 버려 겨울을 맞이합니다. 나무들은 나목이 되어 자신을 지켜냅니다. 겨울엔 오로지 자신을 버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죠. 더이상 소비도 생산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목은 무언가를 생산하려는 시도를 멈춥니다. 당연히 소비도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하고요. 간결해지는 것이고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어쩌면 다만 버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에는 그렇게 버티는 것만이 가장 큰 희망이고 수행인 시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니 잠시 장석주님의 '겨울 나무'라는 싯구가 생각납니다.

 

 

잠시 들렀다 가는 길입니다.

외롭고 지친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는

빈 벌판

빨리 지는 겨울 저녁 해거름

속에

말없이 서 있는

흠 없는 혼

하나

 

 

당분간  폐업합니다. 이 들끓는 영혼을.

잎사귀를 떼어버릴 때

마음도 떼어 버리고

문페도 내렸습니다.

 

 

그림자

하나 길게 끄을고

깡마른 체구로 서 있습니다.

 

 

 

나무는  이렇듯  잎사귀도 떼어버리고 마음도 떼어버리고 문패도 내리고 깡바른 체구로 버티는 것으로 가장 큰 희망이고 수행인 시기, 겨울을 견딥니다.  다음에 찾아올 봄날을 위한 꿈과 희망을 안은채 겸허하게 겨울을 인정하고  견디는 것입니다라는 절절한 말씀들이 오늘 나를 위로합니다.

 

 

내 인생에도 몇번의 겨울이 찾아왔었고 또 용케 혹은 운이 좋게도 무사히 매서운 추위를 견뎌 다시 매번 꽃피는 봄날을 맞아오곤 했습니다. 아마도  나 자신도 자연의 일부였던 고로 본능속에서 겨울을 느끼고 또 견디며 자연스럽게 봄을 맞이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 나는 또 한번의 혹독한 겨울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내 자신이 선택한 삶의 양식이 또 한번의 겨울을 나에게 허락한 듯 매우 춥고 시리기만 합니다. 그리고 이 시린 겨울을 어떻게 견뎌야할까 몸부림을 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의 자아 연민때문에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 간결해지고 가벼워지는 나목의 자세가 무엇이며 그런 나목의 자세가 되고자 수없이 자신을 채근합니다.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잎을 떨구고 자신의 욕망을 거둬들이며 침묵속에서 묵묵히 인내하는 자연의 자세가 곧 나의 자세임을 또 한번 확인하는 귀한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용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