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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33 - 나는 낙타일까, 사자일까, 어린아이일까?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4. 12.

 

가게에서 혼자서 일하다보면 온갖 잡스런 생각에 부딪히며 가끔씩 지독한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그 상태를 즐기기도 하지만 우울과 대면하는 시간이 너무 깊거나, 혹은 길거나 할 땐 내 스스로 그 경계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야만 한다. 그 방법으로써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책을 읽고 생각하고 그리고 수다를 피우는 방법이다. 가끔씩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주말로 미룬다.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 받는 위로에 대한 내 나름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도 일종의 중독임을 지적하는 심리학책을 접하고 정말 중독중의 하나임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 일상, 자칫 우울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일상을 견디는 나름 최선의 방법이니 어이 할꺼나!!! 다행스러운 것은 오랫동안 책과의 만남을 통해 뗄라야 뗄 수 없는 인연을 쌓아온 덕분에 지금은 책을 읽는 다는 것이 가장 큰 나의 놀이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내가 책을 대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것이다. 심각하거나 가벼운 책, 잘 읽혀지는 소설이나 시, 등 그때그때 구색을 맞춰 읽다보면 책을 읽는 놀이의 지루함을 건너 뛸 수도 있고 고난도의 이해를 요하는 책들은 쉬엄쉬엄 생각하며 읽을 수 있어서 나름 좋다.

 

 

서론이 이렇게 길다니... 한참 멋내기 위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고 다니며 읽기위한 시도를 몇 번이고 감행했건만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가끔씩 인터넷을 셔핑하면서 그 내용을 훝어 보기만 할뿐 내 일생에 과연 이 책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꼭 읽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셔핑한 내용들을 읽어보면 한 번 쯤 다시 도전해 보고 싶기도 한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읽고 있는 김선희님의 ‘철학이 나를 위로한다.’ 란 책속에 니체의 핵심사상을 또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을 보고 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즉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라는 초인을 내세워 노예적 도덕을 가진 나약한 인간이 어디로 어떻게 변화해 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데 작가는 이 대목을 결혼을 감당하는 정신의 단계로 재해석을 해 나간다.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의 정신이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단계로 발전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결혼과 가족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보폭으로 걸어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낙타는 짐을 지고 사막을 걸어야하는데 이 짐이란 주어진 전통과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에 대한 순종하는 태도로써의 무겁고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안정되고 편안한 길을 걸으며 변화와 생성을 스스로 포기한 삶의 태도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즉 가정 속에서 자녀나 남편에게 헌신하며 자기희생과 만족에 자긍심을 느끼면서 자신의 공허감을 채워나가는 수동적 삶의 자세를 지니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 비유한다.

 

 

이렇게 자신이 마모될 때까지 낙타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마모의 끝에서 불현듯 떨치고 일어서는 사람, 굴종적인 낙타의 단계를 스스로 부정하며 사자의 단계로 진입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즉 무조건적이고 의미 없는 노동과 배려, 맹목에 가까운 순종의 중독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사자의 단계에 해당한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함으로써 자기를 합리화하기보다 스스로 자신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사람들, 이들은 이제껏 포기했던 자기를 삶의 중심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골국을 끓여놓고 여행가는 중년 여성들의 예가 된다.

 

 

 

그러나 이렇듯 해방과 자유로 나아갔던 사자의 단계로 넘어간 사람들 중에서는 자기를 삶의 중심에 두기로 결심했지만 실제로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방향이 명확하지 않은 자유,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없는 자유는 결국 일시적인 자기만족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하여 니체는 이 사자의 다음 단계로 어린아이의 단계를 말한다. 니체에게 어린아이는 단순히 천진난만한 영혼이 아니라 삶에 대한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을 통해 매순간, 모든 변화를 긍정하는 유연하면서도 강한 정신의 소유자를 의미한다. 자기 삶의 자리, 일상의 노동을 버리지 않고도 자유로운 사람, 단지 비판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어린아이의 단계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렇듯 김선희님은 니체의 사상을 통해 우리가 결혼이나 가족 내에서의 노동과 책임을 하나의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나의 놀이로 바꾸며 살아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의 한 예로 존 레논의 오노 요코를 예시로 든다. 남편의 이름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고 각인시켜온 스스로 구르는 바퀴 같은 사람이라고 하며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도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누구의 동경도 혹은 연민도 필요 없는 단단하고 꿋꿋한 삶의 자세를 지녔다고 감탄한다.

 

 

 

이런 김선희님의 해석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은 나야 뭐 누굴 위해 희생하거나 짐을 나눠 질 그러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환경에 놓인 주변의 친구들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 되었다. 친구들 각자 낙타의 단계로, 사자의 단계로 어린아이의 단계로 살아가는 모습들을 대비해 봤다.

 

각자의 서로 다른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는 우리들 , 어느 단계의 어느 색깔의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하는 지는 각자의 몫이며 각자 나름의 태도로  사는 일에 최선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지금도  분투하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오늘은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