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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32 - 부끄러운 고백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4. 11.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생각해보니 내 오십 평생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었나 봅니다. 본능적으로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 비해 난 어쩐지 덜 떨어진 팔푼이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답니다. 나에게도 본능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인연이 있었을 텐데, 왜 나는 그런 인연을 만나지 못했을까,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것일까 한때는 그런 푸념도 해봤죠.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보며 정말 내가 사랑하지 못할 무슨 이유가 필경 있을 것이란 막연한 불안 심리 혹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이런 저런 책들을 많이 읽어봤죠. 하도 많이 읽어서 이젠 뒤죽박죽 이것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저것 때문 인 것 같기도 하고 도무지 꽉 손에 잡히지 않는답니다.

 

 

결국 사랑이란 것은 나와 타자와의 관계의 출발인데 아마도 나는 이 ‘관계’라는 것에 한없이 미숙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흔히들 사랑이란 각자의 길을 걷던 두 사람이 만나 두 육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처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죠. 이 ‘하나’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원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하나 되는 과정에 있는 듯합니다. 바로 사랑의 출발점이 어쨌든 감정적 끌림에서 시작되어 이성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은데 바로 이성적 노력의 과정을 소홀히 하는 데에 그 틀어짐이 있지 않을 까 생각해봅니다. 즉 사랑은 타인을 위한 자기 희생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책임, 자기의 내면을 성숙시키려는 결과물이라고도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언제나 이게 사랑일까 생각되는 지점에서 난 무엇인가 넘지 못할 경계선상에 있었던 내 자신을 발견합니다. 내가 꿈꾸는 하나 되는 과정에서 나는 내 안으로 상대를 흡수해버리고자 하는 욕망에 끌려들어가 버리고 말았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죠. 내 자신의 결여를 보충하려는 혹은 내 자신의 충만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려는 자기도취적인 탐식자로서의, 독선적인 사랑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을까 되집어 봅니다.

 

 

이런 사랑은 상승과 완성의 사랑이 아니라 상대를 흡수해서 내 안에 가두는 사랑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즉 우리가 ‘불완전한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사랑’에 도달하고도 완전한 행복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반쪽의 몸을 찾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하죠.

 

 

본래 나의 것이었던 나머지 조각을 찾아 채우는 식의 사랑, 결국 타자를 내 안으로 흡수해서 무화無化 시켜버리는 과정을 나는 그동안 수없이 반복하지 않았을까? 인격을 가졌던 유일한 존재였던 상대를 내 몸의 일부, 내 감정의 일부로 만들어 그 자체로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나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어떤 덩어리에 불과하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한때 나는 몹시 본능적으로의 끌림을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놀랐고 황홀했으며 내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왜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할까? 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을까? 라는 나의 요구가 시작되는 것을 깨달았죠. 상대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상대가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지에 대한 헤아림은 도무지 안중에 없었답니다.

 

어느 날 내가 상대로부터 관심 받지 못하고 외면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의 고통이란...

 

 

 

“사랑이 그대에게 말하거든 그를 믿으십시오.

비록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의 꿈을

모조리 깨뜨려놓을지라도.

사랑은 그대의 성숙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대를 아프게 하기 위해서도 존재합니다.” (칼릴 지브란)

 

 

 

이처럼 아프게도 하고 성숙시키기도 하는 사랑을 위해 나는 무엇인가를 준비해야하는가? 묻곤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세상엔 완벽한 준비란 없는 듯합니다. 다만 내가  좀 더 성숙해서 내 안에 온 우주를 담을 수 있는 그런 그릇이 되기 위해 사랑의 목소리에 언제나 내 영혼이 열려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늘 하루 종일 공휴일의 적막감, 한가함을 누리면서 가지가지 내 안의 것들을 점검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