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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2 - 둥근새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3. 11.

 

둥근새(The Round Bird) 라는 동화 입니다.(장영희 교수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인용)

 

 

 

 

작고 둥근 새가 있었습니다. 그 새는 몸이 동그랗고 날개가 작아서 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둥근 새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날고 싶었습니다. 이런 저런 시도를 다 해보았지만 날 수가 없었습니다. 둥근 새는 나무를 이용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힘겹게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안간힘을 다해 날개를 퍼덕여 날아보았습니다. 하지만 둥근 새는 그냥 떨어져버렸습니다. 마침 나무 밑에 나뭇잎이 수북이 쌓여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이제 둥근 새는 자신이 아주 많이 원하고 노력을 해도 할 수 없는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둥근 새는 나는 것을 포기하고 둥근 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골똘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몇 줄인 둥근 새의 이야기를 읽으니 참 가지가지 생각이 겹쳐집니다.

 

 

보내지 말아야 할 편지를 날마다 쓰는 내 심정, 또 수신도 하기 전에 소각될 편지들의 대상인 당사자의 입장, 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만 난 또 내가 살기 위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아마 이 편지 또한 읽혀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그것이 이놈의 운명이라면 또 이놈은 이놈의 운명 데로 살아야겠지요. 나도 둥근 새처럼 그렇게 허구한 날 나무에서 떨어집니다. 다행인 것은 내 마음에 완충지대가 있어 떨어져 다치더라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그런 힘이 있나 봅니다. 그걸 믿고 아마 또 그렇게 나무 위에서 무턱대고 떨어질 수 있나 봅니다. 마치 시지포스의 신화처럼...

 

 

나도 동근 새처럼 내가 할 수 없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지혜를 가졌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시지포스의 운명이 더 애틋하며 내 삶의 색깔도 어쩜 시지포스의 운명을 닮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아침은 아침 드라마가 끝나지 마자 출근하였습니다. 원협에서 장을 보고 딸기 한 박스를 사며 아주 맛있게 보이는 다른 딸기박스에 마음이 갔습니다.

 

 

"저것 한 박스 사서 택배로 보낼까?"

 

또 그렇게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내가 참 속이 없다 피식 웃었습니다. 돌아와 밥이 없는 아침 밥, 쌈 야채와 베이컨을 구워 먹었습니다. 오늘도 나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고 또 아무 탈 없이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런 일상도 감사합니다.

 

내 마음에 지다 펴다 하는 꽃이 있어 그래도 사는 게 위안이 됩니다.

 

 

감사짱 입니당. 오늘도 편안하게 지내옵소서.

 

 

 

 

 

 

 

 

 

 

 

 

 

알베르 카뮈의 「시지포스의 신화」

시지포스는 다시 떨어질 바위를 정상까지 밀어 올리는 일을 반복한다. 이는 현실적으로는 의미가 없고 무가치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 개인이 사회속에서 숙명적으로 짊어져야 할 「운명」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극적인 운명은 모순된 인간의 조건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인간의 욕망은 근본적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약간의 충족함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만족보다도 권태로 이어지기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은 부조리라는 일상을 형성한다. 이제 인간이 일상의 틀에서 비극적 운명, 즉 부조리를 자각할 때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느냐가 문제가 된다. 시지포스는 굴러 떨어지는 돌을 보며 자신의 행동이 무용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다시 돌을 밀어 올리는 그의 모습은 현실에 대한 체념이 아닌, 적극적 대응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현실에의 「저항」이며, 자살처럼 인간의 한계를 수용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끊임없이 대립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이러한 「의식의 깨어있음」은 모든 의미 없는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인간적 사유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부조리의 극복 가능성을 넘어서서 삶의 현장에서 부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대결하는 것. 여기서 존재의 의미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존재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곧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굴러 떨어질 돌을 성실히 밀어 올리는 행복한 시지포스. 이는 부조리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실존적 존재로 거듭나야 하는 현대인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깨어있는 의식, 현실에 대한 적극적 대응은 인간성 회복을 희구하는 카뮈의 휴머니즘을 실현하는 것이다. (윤민, 명덕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