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카페를 유영하다 이런 시를 만났습니다.
사람의 등이 절벽일 때가 있다.
그 절벽 앞에 절망하여 면벽하고 있을 때가 있다.
아주 오래토록 절벽 앞에 면벽하고 있어 본 사람은 안다.
그 절벽이 얼마나 눈부신 슬픔의 폭포수로 쏟아지는
짐승의 등인가를...... 그리고 마침내는 왜?
그 막막한 절벽을 사랑할 수밖에는 없는 가를......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이의 등 뒤에 앉아
오래토록 말이 없이 면벽해 본 사람은 안다
난 늘 그렇게 절벽 앞에서 묵언정진 해왔다
내게 등 돌린 사람만을 그렇게 사랑하곤 했다
난 내게 등 돌린 이의 등만을 사랑한 등신이었다
사랑에 있어서 난 신神의 경지에 오른 등신이었다.
김세형의 등신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를 읽고난 후 어느 등신같은 사랑을 한다는 여자의 일기장을 훔쳐 봤습니다.
꽃샘추위인가. 아직 겨울이란 놈이 가기 싫다고 밍기적 거리는 폼이 귀엽기도 하고, 매섭기도 하고... 나는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쓰고 있다.
등을 보이는 절벽 앞에 면벽하고 있는 내게 " 울지 말아라, 애야, 그냥 인연이 아닐뿐이고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그렇게 위로를 준다.
그래도 눈물이 난다. 울고 싶지는 않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그냥 울자. 누군가는 말했다지.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부富"라고. 어쩜 내가 흘린 눈물로 나는 아픔을 치유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픔이 더 이상 아픔이 아니기를...
Tis better to have loved and lost
Than never to have loved at all.
한 번도 사랑해본 적 없는 것보다
사랑해보고 잃는 것이 차라리 나으리. - Alfred Lord Tennyson
오늘은 톨스토이의 '세가지 질문'이라는 글을 읽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있다.
"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善을 행하는 일이다."
나에게 이 세 가지 질문을 묻는 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널 사랑하는 때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너이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너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는 세상은 이전과 다르고,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들이 이렇게 키가 작았나. 여름날 밤하늘에 이토록 별이 많았었나. 어쩌면 사랑은 잃었던 시력을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도 누군가와 함께 축복처럼 내리는 새벽이슬의 냄세를 맡고 싶고 석양무렵 경건한 노을과 함께 스러지는 마지막 태양의 끝을 보고 싶고 밤하늘 별을 세며 은하수가 어디 있는지 바로 이 자리 여기에 있는지...확인하고 싶다.
그녀의 일기장을 훔쳐보며 얼마 전에 읽은 고 장영희 교수님의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 언급된 ‘슬픈 카페의 노래’라는 소설속의 사랑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우선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자라온 사랑을 일깨운다.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다. 증조할아버지가 되어서도 20년 전 어느 날 오후, 거리에서 문득 스쳤던 한 낯선 소녀를 가슴에 간직한 채 여전히 그녀만을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랑받는 사람은 배신자일 수도 있고 머리에 기름이 잔뜩 끼거나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을 주는 사람도 분명히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은 그의 사랑이 점점 커져가는 데에 추호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디로 보나 보잘것없는 사람도 늪지에 핀 독백합처럼 격렬하고 무모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도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이 바로 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아무리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라도 누군가는 그의 그녀의 사랑의 대상이 된다는 현실이 참으로 위안이 되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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