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무한한 상상력을 가졌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마지막 시도로,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누가 아는가, 그러면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 지!“
이것은 고 장왕록 교수가 쪽지에 적어 놓으셨다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어느 성공회 주교의 묘비문 이란다.
변화라!!!
가끔씩 나는 내 자신이 변화하기를 바란다.
좀 더 상냥하고, 다정하고, 나긋나긋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천성인지, 노력인지 유난히 상냥하고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사람들을 보면 괜한 열등감이 든다. 그 열등감이 꼬여서 때론 그들의 마음과 행동을 의심해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결론은 마음과 행동이 다를 지라도 내가 좀 더 상냥하고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사람으로 변화되길 갈망한다. 가끔씩 나도 상냥하고 다정할 때도 있다.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나를 좋아해주기를 바라는 사람 앞에서 애교를 보인다. 그런 내 모습이 인지되는 순간엔 그렇게 겸연쩍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의 숨어있는 상냥함이 나도 모르게 드러날 때 나는 내가 차가운 사람만은 아니라는 위안을 받는다. 아니 나는 내 내부의 따뜻함을 겉으로 드러내놓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어쩜 행여 내 따뜻함을 마주한 사람이 자신의 시선 때문에 나의 시선을 거부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는지도 모르겠다. 2012년의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내 내부의 따뜻함으로 다정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임을 즉 내 안의 변화를 이룬다는 것이 마치 급물살의 방향을 트는 일만큼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내 친구를 내 가족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부끄럽기도 하고 기가 죽기도 한다. 어쩌란 말인가?
내가 내 자신이 변화하기를 바라는 또 하나는 바로 오만과 편견이다.
오만과 편견이라 말을 하니 갑자기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이 생각난다. 작가가 젊었을 때 ‘첫인상’이라는 제목으로 습작한 것을 후에 개작하여 붙인 제목이 오만과 편견이라고 한다.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이웃에 이사 온 다아씨의 첫인상만을 보고 신분만 내세우는 오만한 남자라는 편견으로 반감을 갖지만 얽히고설킨 사건과 부딪히면서 다아씨의 너그러움과 사려 깊음을 깨닫고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한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즉 작가 오스틴은 한 사람의 편견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고, 그 편견이 사라질 때에야 진정한 인간관계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주제를 다룬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은파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 나는 부끄러운 고백을 하였다.
내 자신의 오만한 잣대로 상대를 다 안다고 규정하는 나의 태도를 바꾸고 싶다고... 한 사람을 90%정도 파악했다고 생각한 나의 오만함이 많이 부끄럽다고... 나이를 먹기는 먹은 것인지, 이젠 그 어느 것에 대한 확신도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는 모호함이 찾아온다고... 그리고 그런 불확실성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찾아 온다고... 나만 그런 것인지... 살아오면서 나의 오만과 편견의 잣대가 나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태도를 고수해온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럽다고...오늘도 나는 이런 내가 부끄럽다고 한탄만 하고 있다. 내 자신의 변화를 기대하면서도 어느 작은 것 하나에도 좀처럼 양보할 수 없는 내 성정이 얄밉기만 하다.
며칠 전에 단발머리였던 모습이 숏 커트로 바뀌었다. 기실 바꾸려는 생각이 없었는데 말하기 귀찮아 무턱대고 머리를 잘라 달라고 했더니 미용사가 그만 머리를 싹둑 자르고 말았다. 단골로 가는 미용실이라서 믿고 맡겼더니만... 은근히 부아가 나는데 어쩌겠는가? 돌아와 거울을 보니 내 우중충한 인상이 훨씬 밝아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상한 모습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만 하는 주방아줌마가 좀 더 젊어 보이면 좋지 않을까 애써 위안을 찾아본다. 내 겉모습은 이렇게 순식간에 변화가 찾아오는데 내 안 모습의 변화는 느리기만 하다. 그렇다. 왜 그렇게 만사를 깨닫고 변화를 하는 것이 유독 나만 느린 듯해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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