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마음 때문에 힘든 P에게
어제 ‘마음이 여려 사는 게 힘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을 썼는데 새벽 내내 잠을 설쳤다. 너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이 내 정신을 시끄럽게 했지. 이런 날 넌 또 오지랖이 넓다고 찡그리는 척 하면서도 충분히 내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지난 수 년 간의 우리의 인연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같이 웃고 울고 싸우고 토라지며 지냈던 일들이 어쩜 이렇게 새록새록 제 빛깔들의 옷을 입고 나들이를 나오는 지... 혼자서 뒤척이며 어떤 놈들에겐 욕을 해대기도 하고 어떤 놈들에게 달래기도 하고 쫒아내기도 하고 또 어떤 놈들은 영원히 그렇게 우리들 안에 머물기를 바라며 너와 나의 인연을 지속시켜주길 부탁해 보기조차 하였단다.
어느 날 너는 말했지.
“언니, 난 사람들을 참 좋아해, 사람들하고 농담하는 것도 좋아하지, 그런데 있지. 극히 사소한 일가지고도 난 왜 상처를 받을까? 며칠 전 누가 그러데. ‘술도 마시지 않고 술 마시는 사람 빤히 쳐다보며 평가하고 있는 인간들 넘 싫어.’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있었던 사람은 나 뿐 이었는데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어. 평소에 그 사람이 나에게 유감이 많아서 이기 때문이라고 사소하게 넘어 가고 싶었는데 언니, 그 순간 물 컵의 물을 확 그녀에게 날려 버렸지. 그리고 그냥 그 자릴 나왔어. 그때 나 참 우울 한 일이 있었거든. 그날 어쩔 수 없는 술자리여서 불가피하게 참석했지만 내가 술을 한잔이라도 마신다면 나를 책임질 수 없을 것 같더라. 나도 참기 힘든 유혹이었는데 그녀가 그런 말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어떻겠어? 나 미친년 되었지. 그녀에게 사과했어. 그녀는 그러데. ‘그냥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 것뿐인데 과잉반응을 보인 네가 정신병자 같아 보였다고... 언니, 나 이런 말 듣고 살아야 돼? ”
난 그때 너에게 맞장구를 쳤지. “나라도 그랬을 거야.” 하지만 말야. 감히 물 컵의 물을 던질 만큼 그렇게 용기는 없을 것 같더라. 그렇게 예민하게 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았지.
그래 매사에 너는 그래. 너의 상처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어쩔 땐 그런 네가 얄밉기도 해. 특히 나한테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지랄 떨고 있는 너를 볼 때마다 오만 정 다 떨어질 것 같은데 우린 어떻게 그 많은 세월을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었을까 가끔씩 피식피식 웃음이 나와. 인연인가 보지.
어느 날 시드니에 있는 나에게 편지를 쓴 내용을 기억해 봤어. 나도 그때 무척 외로웠던 시절 이었으므로 가끔씩 네가 보내 주는 편지는 내 생활에 달콤한 화이트 초코렛 이었지. 입안에서 살살 녹는 그래서 정신까지도 달콤하게 만드는.
“언니, 나는 일 열심히 하고, 잘 놀고 그러기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 하고 똑같이 살아가기 위해 그런 척 안 그런 척 척척척 하면서 잘도 살고 있지. 근데 요즈음 사는 게 점점 지쳐가. 내 자신을 지키기위해 마음의 벽을 쌓는데 내 진이 빠지는 듯 그런 느낌이야. 무엇으로부터 내 자신을 지킨다는 것인지 나도 혼란스러워. 그냥 사람들의 무신경,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 그거 알아. 목소리에 칼이 들어가 있는 사람들 있지. 그런 목소리를 들을라치면 미칠 것 같아. 나하고 직접 관련이 없는 사항인데도 견디기 힘들어. 그때 한번 말 한 적 있잖아. 같은 과 언니 목소리가 좀 무섭다고... 내가 너무 예민한 거 맞지. 특별한 사건도 없고 이례적인 정신적 외상도 없는 내가 그냥 남들처럼 똑 같이 직장에서 일하고, 놀고 할 뿐인데 사는 것이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지 모르겠어.”
그래, 그때 너는 소위 말하는 과민증을 앓고 있었던 것 같았어. 너는 끊임없이 네 감성에 무언가를 없애기도 하고 더해 주기도 하며, 금지하기도 하고 허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제약의 도구를 사용하기도 하고 네 감성에 불빛을 찾기도 했지. 그러면서 너는 네 감성에서 삶과의 타협을 시도 하고 있었지 않았니. 하루하루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겪는 지나치게 소란스러운 자극적 환경, 동료와의 끊임없는 경쟁적 환경, 어쩔 수 없이 함께 몰려다니며 즐거워하는 척 해야만 하는 소외되지 않고 살 수 있는 상황들을 넌 괴로워했던 것 같아. 솔직히 말해. 넌 너무 민감해. 그런데 너 그거 알까? 그런 네 민감함 속에 나는 종종 네 자존의 보석을 발견했다는 것을...
넌 그랬어. 어릴 때부터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세계를 갖고 있었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혼자서 조용히 있는 시간을 더 좋아했지. 그렇게 함으로써 넌 너 자신의 세계로 향하는 길을 만들고 있었어. 난 그런 네 모습을 보면서 그래, 그렇게 자라만 다오. 넌 아마 네 내면의 삶에 충실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곤 했었지.
난 지금에서야 알겠어. 너 자신의 예민성, 여림에서 오는 행동들이 너에게 어떤 힘을 실어 주었는지. 넌 항상 너를 너무나 약한 존재로 의식해왔어. 모든 걸 하는 것을 두려워했지. 어리석은 짓을 덜 하며 살아오지 않았니. 나 보단 훨씬 말야. 그러면서 끊임없이 넌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살았지. 그것이 부모일수도 있겠고 선생님, 친구, 심지어 나까지도. 그렇게 하면서 넌 너의 의존성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역설적이게도 자유롭고 자주적인 형태로 살아오지 않았니. 든든한 너 만의 백 같은 것을 끊임없이 만들고 넌 그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살고 있는 네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확실히 넌 너의 예민함으로 인해 너의 생존을 확보키 위해 세상을 조심스럽게 감시하며 세상을 바라다보는 안목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고나 할까...
누군가 그런 말을 했던 걸 기억해.
“가시 없는 생선을 찾아보기 힘들 듯, 가시처럼 어딘가 고통스러운 부분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
너에게 맹인 사학자 자크 세믈랭이라는 사람의 일화를 하나 소개할게.
앞이 안 보인 다는 장애를 가진 그는 어느 해변에서 장애물이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아홉 살 된 딸과 즐겁게 뛰어 놀았데. 나이 어린 딸이 담장에 올라가 아버지가 자신을 받아 주리라 생각하고 아버지의 품 안으로 몸을 던졌을 때 그는 딸이 자신의 품으로 뛰어들 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데. 어린 딸은 그만 바닥에 떨어져 울고 말았지. 또한 그는 미국에서 사람들이 “무엇이 필요하신가요?”라고 물을 때에는 “어떻게 해 드려야 혼자 알아서 하실 수 있으신가요?”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해. 아울러 괜히 동정하지 않고 그가 혼자 알아서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필요한 구체적 도움을 주는 것에 위안을 받았다고 하더라. 남의 도움이 필요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는 그 같은 부분을 부정하기보다는 관계의 확대 속에 희석시키며 억지로 부탁을 많이 하되, 늘 같은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았데. 가령 지나가는 차를 히치하이킹 하는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아 부탁하는 것이지. 그렇게 해서 그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고 이 모든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장애에 따른 어려움이나 슬픔등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고 해. 언젠가 그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어느 걸인이 말을 던졌데. “힘들겠군, 그래.” “그렇게 힘든 건 아녜요. ” “내 말이 맞아. 힘들어, 힘든거야.” 그때 속으로 그는 결국 걸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데. 한 번은 딸아이가 “운 없게도 나는 앞이 안 보이는 아빠를 만났어.”라고 털어놓은 날도 있었는데 그는 이러한 현실과 그에 따른 고통을 부인하는 데에 힘을 쏟지 않고 이애 대한 암울한 반추사고를 거듭하며 침울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하더라.
또 한사람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 는 자신의 실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는 구나.
“이는 ‘전적으로 불행한 일’ 이 아니라, 묘하게도 운명 혹은 우연이 우리에게 나누어 준 모든 것 가운데 도구 하나가 더 있는 것이다.”
네 말처럼 너의 예민함, 여림, 과민함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할까에 대한 좋은 예라고 생각하는구나.
단지 너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기 보다는 너의 예민함, 여림, 과민함, 너의 약함과 무력함을 사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필요할 때 싸움을 하기 위한 힘을 비축해 둘 수는 없을까? 네가 정 힘이 들면 조용히 뒤로 물러나 명상에 잠기거나 이따금씩 세상과의 관계를 잠시 보류하고 너의 내면으로의 여행을 즐기며 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며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색깔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얻기를 바랄뿐이야.
너나 나나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 재능이 없으면서도 약간은 예민하고, 여리고, 무력한 사람들의 살길이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며 자신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한 분야에 대해 집중하면서 노력 개발하면 장인의 무리에 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네가 하는 일들은 전문적인 것 보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니. 네가 관심이 있어하는 원예, 꽃을 가꾸는 일이라도 지금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님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보는 거야. 물론 쉽지는 않지. 그동안 어쩜 너 자신을 방치한 세월도 있을 테니깐. 그런데 내가 해보니, 즉 내가 내 마음의 흐름을 따라서 가만히 내 자신을 흐르도록 그렇게 놓아두니 어느 새 나도 모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찾아지드라. 혹은 지금 이미 성인이 되어 때가 늦었다 싶은 마음이 들지라도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믿어보면 안될까? 남들과 함께 더 잘 지내고, 더 잘하고 가능 하다면 도움도 되기 위해, 또한 조용히 마음에 맞게 일하기 위해, 마음의 눈으로 잘 보는 법을 배우기 위해 스스로의 능력과 약점을 두루 이용하는 장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 보는 거야.
나는 네가 나에게 네 인생에 대해, 네 주위 사람들에 대해, 혹은 네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투덜거리고 있는 너를 보면서 마음에는 없지만 순간적인 동의를 하면서도 진심으로 이런 말들을 너에게 하고 싶었어. 어쩜 난 너보다 몇 년 더 산 것 밖에 없지만 내 시행착오들을 네가 겪지 않고 보다 현명하게 네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야. 그리고 이런 내 마음을 너는 충분히 받아 주리라고 기대해...
어제부터 오늘 이 시간 까지 나는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했지. 어쩜 넌 나보다 훨씬 지혜로우니 내가 한 모든 말들을 이미 알고 있을 지도 몰라, 그냥 가끔 나에게 하는 투정 그런 것 뿐 인데 내가 너에게 이런 편지를 쓰는 것인지 모르겠다. 암튼 너와 나의 인연 아마 우리가 서로 헤어질 때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ㅎㅎㅎ 아니 혼령의 세계에서도 계속 됐으면 하고 바라게 돼. 너에게서 내 모습을 나에게서 너의 모습을 그렇게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살아 온 우리들의 이때까지의 삶이 참 아름답지 않니, 충분히. 난 네가 곁에 있어서 참 좋아. 그래 우리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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