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고 살펴본 인물들(스포일러 있음)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느낀 것은 빵충이라는 기묘한 생물보다 그 빵충을 둘러싸고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이끄는 김정한이라는 인물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트럼펫을 불던 사람이 음악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농사를 짓고, 농사마저 잘되지 않자 다시 빵충을 기른다. 하나가 잘되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옮겨가는 모습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그런 모습이 젊은 사람의 좌절과 자기연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김정한이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이 소설의 중요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음악을 버리고 농사를 선택하고, 다시 농사를 버리고 빵충을 선택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신이 버렸던 트럼펫을 다시 들어야 한다. 빵충들이 반복되는 소리에는 익숙해지지만 계속 변화하는 소리에는 반응한다는 설정 때문에 김정한의 트럼펫 연주, 특히 재즈의 변주가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나는 이 부분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김정한은 지금까지 계속 다른 것을 찾아 떠났지만, 마지막에는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대신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을 다시 사용한다. 그것도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면서 사용한다. 어쩌면 변화란 자신을 버리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새롭게 변주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작가가 이런 생각을 빵충과 재즈를 연결해서 이야기로 만들어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문장 가운데에는 다소 거칠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 책의 진짜 힘은 문장을 아름답게 다듬는 데 있다기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그리고 그것을 빵충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연결해 사건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다고 느꼈다.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소설이 단순히 김정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오경혜의 이야기는 한 사람이 과거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할 때, 그 과거가 어떤 모습으로 다시 따라오는지를 보여준다. 오경혜는 교사였지만 유부남과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교직을 그만두게 되고, 이후 귀농을 선택해 태봉으로 들어온다. 아마 그녀에게 태봉은 과거의 시선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볼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오경혜는 안영돈을 만난다.
안영돈과의 관계가 시작되면서 오경혜의 삶은 다시 복잡해진다. 그녀는 안영돈을 이용하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가 흘러가고, 안영돈에게 모욕을 당한다. 한때 자신의 삶을 무너뜨렸던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곳에서 다시 살아보려 했지만, 그곳에서도 인간관계와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모욕은 오경혜에게 단순한 감정적 상처가 아니라, 한때 잃었던 자리를 다시 잃는 듯한 굴욕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다시 세우려 했던 것이 또 한 번 다른 사람의 손에 무너지는 순간, 그녀 안에서 참아왔던 감정은 결국 안영돈을 죽이려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넘어간다.
오경혜를 보면서 나는 사람이 새로운 환경으로 옮겨간다고 해서 과거의 자신까지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겪는 문제는 단순히 남녀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자신이 우위에 서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생기는 분노와 수치심이 한꺼번에 얽혀 있다.
안영돈은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움직인다. 그는 자이언트 빵충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다. 자신이 가진 지식과 기술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우월감도 드러낸다. 처음에는 새로운 기술과 사업을 만들어낸 사람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지식이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이용하는 수단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안영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사육'이라는 제목의 의미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빵충을 사육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역시 자신의 욕망을 키우고 다른 사람의 욕망을 이용하면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돈을, 누군가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누군가는 우위에 서고 싶은 마음을 키운다. 그리고 그 욕망이 너무 커지면 사람 자신이 그 욕망에 끌려가는 상황까지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강주원과 정소율의 관계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이고, 정소율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강주원은 어떻게든 구급차를 불러 그녀를 살리려 한다. 사람을 이용하거나 소유하려는 관계가 아니라, 상대방의 생명을 위해 움직이는 관계다. 극한의 상황에서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기억에 남았다.
신정수와 신언주, 그리고 양민주를 둘러싼 관계도 상당히 독특했다. 신정수와 신언주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이다. 양민주가 태봉에 와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정착하려 할 때, 신정수의 삼촌은 양민주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녀의 정착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그 과정에서 양민주는 태봉 중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게 되고, 신언주는 양민주에게 피아노를 배우면서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신정수 역시 삼촌 때문에 양민주에게 피아노를 배우지만 곧 그만둔다.
여기서 피아노라는 것이 묘하게 느껴졌다. 양민주와 신언주의 관계를 시작하게 한 것이 피아노였고, 신정수 역시 같은 이유로 양민주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남은 관계는 달랐다. 같은 사람과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고 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똑같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후 양민주는 자신을 찾아오는 동네 남자들을 피해 개집에서 개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사람들의 욕망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사람의 공간에서 벗어나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신정수의 삼촌은 아마도 그 개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양민주를 도와주었던 사람이 결국 양민주를 둘러싼 상황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고, 인간의 욕망과 동물성이 뒤섞이는 기묘한 장면으로 남았다.
이렇게 인물들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니, 이 소설에서는 사건이 먼저 있고 사람들이 거기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누구에게 욕망을 품고,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다음 사건을 만들어낸다. 김정한의 실패와 선택이 빵충이라는 사건을 만들고, 오경혜와 안영돈의 욕망과 관계가 또 다른 사건을 만들고, 양민주를 둘러싼 사람들의 욕망 역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사건을 끌고 간다. 인물은 사건에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저마다의 욕망으로 다음 사건을 만들어내는 존재였다.
그리고 이 구조를 발견하고 나서, 나는 이 소설을 작가가 아니라 독자의 자리에서만 읽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인물의 마음이나 관계, 분위기를 오래 따라가는 방식으로 책을 써왔다. 그래서 내가 쓴 책들은 대체로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런데 이 소설은 초반의 느린 흐름과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인물들의 선택이 서로 부딪치며 다음 사건을 만들어내는 그 구조 자체가, 독자를 다음 페이지로 밀어붙이는 힘이었다.
그 힘을 확인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자괴감이 들었다. 스토리텔러로서 자격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느리게 읽히는 것과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없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 자체가 아니라, 인물의 선택이 다음 사건을 만들어내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느린 가운데에서도 그것을 해낼 수 있다면, 그건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변주의 문제일 것이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고 나는 그 사실을 새삼 배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작가로서 조금 부러웠고 조금 질투가 났다. 좋은 책을 읽고 나서 나도 이런 이야기를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책은 내게 꽤 오래 남는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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