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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고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9. 20.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고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어떤 모임에서 선정된 책이라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제목이었다. 『빵충 사육 준수 사항』. 무슨 이야기인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제목이었고, 처음부터 흥미가 생겼던 것은 아니었다.

 

초반에는 오히려 조금 지루했다. 주인공 김정한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를 해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다시 다른 것을 선택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트럼펫을 연주하던 정한은 음악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려워지자 농사를 선택하고, 그것도 실패하자 새로운 기회로 '빵충'을 만난다. 처음에는 새로운 돌파구처럼 보였던 이 사업은 곧 통제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들어낸다. 생산이 늘어나고 상황이 꼬이면서 빵충은 단순한 사육 대상을 넘어 사람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이상했다. 처음에는 조금 지루했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부터 점점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내가 예상했던 방향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기 때문이다. '대체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읽다 보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과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사건을 가져가는 힘이 부러웠다.

 

여기서부터 나는 이 소설을 한 사람의 실패담으로 읽지 않았다. '빵충'이라는 기묘한 소재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인가를 발견하면 사람들이 몰려들고, 성공하면 더 큰 성공을 원하다가, 어느 순간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오히려 인간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사람이 빵충을 사육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누가 누구를 사육하고 있는지 그 경계가 흐려진다.

 

정한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는 실패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선택한다. 음악이 어려워지면 농사를, 농사가 어려워지면 빵충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선택은 매번 새로운 삶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실패한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이전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에 가까웠다.

 

빵충 사육이 완전히 통제 불능 상태가 되고 사람들의 생명까지 위험해지자,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진 정한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시 꺼낸다. 트럼펫이다.

 

이 결말에서 흥미로운 것은 정한이 단순히 트럼펫을 잘 불어서 위기를 해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빵충 성충들은 같은 소리에는 익숙해지지만 변화하는 소리에는 계속 반응한다. 이들을 한곳으로 유인하려면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소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역할을 한 것이 정한의 트럼펫, 정확히는 재즈의 변주와 즉흥연주였다.

이 설정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재즈의 연주가 같은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선율과 화성 위에서 연주자는 순간순간 새로운 음을 만들어낸다. 정한이 빵충을 유인하기 위해 해야 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의 소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

여기서 정한의 삶과 재즈의 변주가 겹쳐 보였다.

정한은 지금까지 계속 변해왔다. 하지만 그 변화는 자신이 가진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변화가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이전의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삶으로 옮겨가는 변화였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대신,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시 꺼내야 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대신 계속해서 다른 소리를 만들어내야 했다.

 

우리는 흔히 삶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일을 버리고, 지금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변화는 반드시 자신을 버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것을 버리는 대신, 그것을 계속 변주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것. 재즈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한이 마지막에 부는 트럼펫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한때 버렸던 과거이면서, 동시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자신의 능력이었다. 처음에는 실패한 트럼펫 연주자로 보였던 인물이, 마지막에는 바로 그 트럼펫 덕분에 살아남을 가능성을 얻는다. 처음에 버려진 것처럼 보였던 것이 마지막에는 가장 필요한 것이 된다.

 

그리고 하나의 장면이 더 이어진다. 신언주가 정한을 구하러 나타나지만 손이 닿지 않자, 자신이 가진 총을 내밀고 정한은 그것을 붙잡는다. 정한은 지금까지 혼자서 자신의 삶을 해결하려 했다. 일이 잘되지 않으면 다른 길을 찾았고, 실패하면 다시 새로운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혼자 해결할 수 없었다. 누군가 내민 손을 잡아야 했다.

 

나는 트럼펫을 다시 든 것과 누군가의 손을 잡은 것이 정한에게는 하나의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는 자신이 버렸던 자신을 다시 받아들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던 삶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정확한 의미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렇게 읽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매력을 느낀 것은 문장 자체의 아름다움은 아니었다. 간혹 어떤 문장들은 조금 거칠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적어도 나에게 이 책의 진가는 문장을 다듬는 데 있지 않았다.

 

내가 정말 놀랐던 것은 작가의 철학적 혜안과 현시대에 대한 통찰,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힘이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실패담처럼 보였던 이야기가 '빵충'이라는 기묘한 소재를 통해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들고, 마지막에는 재즈의 변주와 트럼펫을 통해 한 사람의 삶까지 다시 바라보게 한다. 문장이 아주 매끄럽지 않아도 이야기가 사람을 끌고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한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생각이 독특한 이야기 속에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 제목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에서 정말 사육되고 있는 것은 빵충뿐일까. 나는 삶이 막혔을 때마다 내가 가진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만 찾아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새로운 삶이란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변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내게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나는 무엇을 사육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에 의해 사육되고 있는가.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쉽게 답하지 못했다. 돌아보면 나 역시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왔다. 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들, 이뤄야 한다고 여겼던 기준들, 그것들을 사육이라 부른 적은 없었지만 나는 어쩌면 그런 것들에 의해 길들여져 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내 안의 불안을, 조급함을, 혹은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을 사육하며 살아왔다. 다만 이 책을 덮으며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나를 오래 사육해온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름 붙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한 번쯤 마주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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