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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 국내가요 등

망각(Oblivion) — 기억의 다른 이름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3. 31.

내가 사랑하는 음악 소개^^

망각(Oblivion) — 기억의 다른 이름

봄빛이 짙어가는 아침, 하늘은 잔뜩 잿빛을 머금고 있다. 어제에 이어 나는 오늘도 피아졸라와 함께 하루를 연다.

피아졸라의 「Oblivion」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과 감정을 깨우는 경험이며, 삶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영혼의 몸부림이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의 희열, 하루 종일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감성은 선율이 지닌 처연함과 맞닿아 있었다. 그때 내 삶은 균형을 잃고 있었고, 이 곡은 영혼을 붙잡아 주는 필살기처럼 작용했다.



피아졸라가 이 곡을 작곡한 것은 1982년, 미국에 체류하던 시기였다. 그는 탱고를 단순한 춤곡에서 벗어나 예술적 장르로 끌어올리려는 혁신을 이어가고 있었고, 「Oblivion」은 그 노력의 결정체 중 하나였다. 1984년 이탈리아 영화 엔리코 4세의 OST로 세상에 나왔지만, 영화 자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https://youtu.be/VfHsgNSp68A?list=RDVfHsgNSp68A




오히려 같은 해 이탈리아 가수 밀바(Maria Ilva Biolcati)가 프랑스어 가사를 붙여 파리 무대에서 공연하면서, 이 곡은 유럽 청중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https://youtu.be/0Ml8j6x_hpU?list=RD0Ml8j6x_hpU


반도네온의 음색과 느린 밀롱가 리듬 위에 펼쳐지는 서정적인 선율은, 제목 그대로 ‘망각’을 의미하면서도 단순한 잊음이 아니라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영혼을 은유했다.


https://youtu.be/Z0DQxI3KM7o?list=RDZ0DQxI3KM7o



나는 이 곡을 반도네온보다 첼로로 먼저 사랑하게 된 사람이다. 반도네온의 망각은 너무 처연하다.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아르헨티나의 비탄, 어두운 항구 도시의 냄새 같은 것이 배어 있어서, 듣다 보면 감정이 무너지기 직전의 벼랑 끝에 서는 느낌이다. 그러나 크로아티아 첼리스트 스테판 하우저(Stjepan Hauser)가 연주한 첼로 버전은 같은 슬픔을 조금 더 부드럽게 안아 올린다. 비탄이 아니라 애도에 가까운 울림. 현이 울리는 방식이 마치 누군가 곁에서 조용히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아서, 같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위로를 건네받는 기분이었다. 그것이 아름다움의 차이인지, 아니면 단순히 내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필요한 온도가 달랐던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오늘 다시 이 곡을 들으며, 나는 또 한 번 감동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내 삶에 찾아와 머물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선물처럼 느껴진다. 반도네온으로 듣든 첼로로 듣든, 「Oblivion」은 과거의 추억을 불러내면서도 현재의 순간을 새롭게 빛나게 한다. 개인의 기억과 역사적 배경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 곡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삶의 서사와 맞닿는다.

곡 「Oblivion」은 나에게 망각이 아니라 기억의 다른 이름이다.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것들, 그 속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영혼의 몸부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음악의 힘. 오늘도 흐린 아침 하늘 아래서, 나는 그 선율 속에서 다시금 삶의 균형을 느낀다. 반도네온의 처연함이 필요한 날이 있고, 첼로의 따스함이 필요한 날이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어쩌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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