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내 미래의 서점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2. 6.

 

 

 

 

 

『40%』

도시에는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골목이 있었다.

그 골목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찾으려는 사람 앞에서는 방향을 바꾸곤 했다.

사람들은 대개 길을 잃었을 때, 혹은 무엇을 찾고 싶지 않을 때 그곳에 도착했다.

골목 끝에는 헌책방 하나가 있었다.

간판에는 단 하나의 숫자만 적혀 있었다.

40%

글씨는 오래되어 있었지만 바래지 않았다.

누군가는 할인율이라 생각했고, 누군가는 주소의 일부라고 여겼다.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열려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문은 늘 기다리는 상태였다.

안으로 들어서면 공기는 종이와 시간의 냄새를 동시에 품고 있었다.

책장은 분류되어 있지 않았다.

역사책 옆에 시집이 있었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이 세계의 종말을 다룬 논문을 가리고 있었다.

어떤 책도 가격표를 달고 있지 않았다.

가게 한가운데에는 긴 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오래된 주전자, 손때 묻은 핸드 그라인더, 검게 그을린 모카포트,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반짝이는 에스프레소 머신 하나가 놓여 있었다.

원두 옆에는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연필로 적힌 문장이었다.

커피는 원하는 만큼.

누가 썼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도 지우지 않았다. 커피에도 가격은 없었고, 손님은 원하는 만큼만 내고 마셨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 그냥 쉬어가도 괜찮았다.

다만 이곳에서는 큰소리로 말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주인은 언제나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지만, 표정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육중한 체격은 오래된 가죽 소파와 어울려 하나의 그림자처럼 보였고, 느릿한 걸음은 마치 재즈의 낮은 박자와 맞물려 있었다.

그의 옷차림은 단순했다.

낡은 중절모와 헐렁한 셔츠, 그리고 닳아 빠진 구두. 화려함은 없었지만, 그 무심한 차림새가 오히려 이 공간의 규칙을 설명하는 듯했다.

손님들이 커피를 내리거나 책을 펼칠 때, 그는 굳이 개입하지 않았다.

다만 원두가 흩어지거나 책값을 묻는 순간, 잠시 고개를 들어 선글라스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그 시선은 대답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밤이 깊어 술잔이 오가는 시간,

그는 유일하게 두 잔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첫 잔은 손님들과 같은 규칙을 따랐고, 두 번째 잔은 이 가게를 지탱하는 고독을 위해 남겨져 있었다.

낮에는 침묵과 고독이 지켜져야 했고, 밤 9시 이후에만 사교적 모임이 허용되었다.

주인은 그곳에 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곳에 머물렀다.

그는 창가 근처의 책상에서 누군가에게는 읽히지 않을 글을 쓰거나, 아무 이유 없이 책의 위치를 바꾸곤 했다.

그 행동은 정리라기보다 기억을 바로잡는 일처럼 보였다.

가격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2000년도 이후에 나온 책은 원래 가격의 40%입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반드시 이렇게 물었다.

“그 이전의 책은요?”

그는 잠시 멈췄다. 망설임이 아니라, 정확함을 위한 침묵이었다.

“그 이전의 책은 내가 기억하는 가격의 40%입니다.”

그 말에는 설명도, 변명도 없었다.

이해한 사람은 남았고,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 채 떠났다.

오후가 되면, 도시의 시간이 느슨해질 즈음 주인은 낮은 찬장을 열었다.

그 안에는 위스키, 코냑, 와인만 있었다.

맥주도, 칵테일도 없었다.

이곳의 술은 도망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빠르게 마시지 않았다.

빠르게 마신 사람들은 대개 어떤 대가를 치렀다.

그리고 이곳에는 또 하나의 규칙이 있었다.

주인장을 제외한 누구도 술을 한 잔 이상 마실 수 없었다.

한 잔은 충분했고, 그 이상은 허락되지 않았다.

가격 또한 정해져 있지 않았다.

손님은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만큼만 내고 잔을 받아 들었다.

그 금액은 돈이라기보다,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기억의 무게에 가까웠다.

잔을 들고 오래 머무는 사람도 있었고, 한 모금만으로도 떠나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았다.

이곳의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기 위한 통행료라는 것을.

책에는 가격이 없었지만, 대신 흔적이 남았다.

손님은 책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을 책 여백이나 뒷장에 적어둘 수 있었다.

훼손은 금지되었고, 오직 ‘덧붙임’만 허용되었다.

다음 독자는 그 메모를 발견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어 적었다.

그렇게 책은 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대화가 담긴 작은 아카이브가 되었다.

새 책보다 중고서점의 책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런 흔적들에 있었다.

밑줄, 메모, 작은 낙서가 책을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살아 있는 기억의 매개체로 만들어주었다.

책을 읽고 생각을 남기는 행위는 커피와 재즈, 위스키와 함께 어우러져 고독 속의 대화가 되었다.

누군가의 문장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마치 낯선 손님과의 조용한 만남처럼 느껴졌다.

책은 찢어지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목소리를 품어 ‘40%’의 서점이 도시의 집단적 고독을 기록하는 성소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 가게가 무언가를 가져간다고 수군댔다.

무엇인지는 아무도 정확히 말하지 못했다.

돈은 거의 오가지 않았다.

대신 결심이 오갔다.

그리고 가게 가장 안쪽에는 언제나 닫힌 문 하나가 있었다.

그 문 너머에는 사라진 40%가 모인 방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라는 말도 있었다.

주인은 그 문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이 가게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