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문장은 당신들의 온기로 지어졌다
요즘 나는 오래전 멈춰 두었던 소설의 초고들을 다시 꺼내어 고쳐 쓰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경이롭고도 고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내가 통과해온 시간과 겪어낸 일들이 어김없이 작품의 문장들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내 상황에 깃들었던 감정과 배경음악, 스치듯 본 그림, 그리고 삶이 흘러온 궤적까지도 하나의 장면 속에 겹겹이 포개져 있었다. 마치 소설이 나보다 먼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듯이.
얼마 전 한 원고를 다듬다 유난히 삶이 버거웠던 시절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체납된 자동차세 때문에 시청 직원이 번호판을 떼어가던 날의 무력함, 번듯한 방 한 칸 없어 가게 옆 벽면의 좁은 골방에서 몸을 웅크린 채 보냈던 밤들. 그 한 뼘 공간이 당시 내 세계의 전부였다.
서른다섯 해를 알고 지낸 지인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나는 무력했다. 만 원짜리 차비조차 내어 쓰기 버거워 병문안 한번 제대로 가지 못했다. 그렇게 3년 만에 나를 찾아온 그녀는 내가 잠들던 그 비좁은 가게 뒤편 방에서 하룻밤을 함께 묵었다. “언니가 보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며칠 뒤 보내준 가습기 하나. 나는 그 가습기를 앞에 두고 오래도록 울었다.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지독한 가난 때문에 그녀의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골방은 훗날 소설 속 한 장면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다. 당시엔 몰랐으나, 삶은 그렇게 조용히 글이 되고 있었다.
기억의 타래를 하나 더 풀어보자면, 그 무렵 고장 난 노트북 때문에 며칠을 앓았던 일이 떠오른다. 당시 독서 모임 친구들에게 중고 노트북을 알아봐달라고 가볍게 던진 말이었는데, 그중 한 사람인 현재 인플루언서 ‘dancing_dayeun’으로 활동하는 분이 새 노트북을 선물로 건네주었다. 값비싼 기계보다 그 마음이 더 묵직하게 다가와 나는 또 울고 말았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니 내 삶은 결코 혼자 버텨낸 시간이 아니었다. 굽이마다 나를 붙들어준 타인의 손길이 있었기에 나는 비로소 여기까지 흘러올 수 있었다. 나의 문장들은 결국 그들이 나누어준 온기로 지어진 것이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주변 사람들이 나누어주는 온기에 기대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문득 고맙고, 또 고맙다는 마음을 세상 모든 다정한 손길에게 보내고 싶은 날이다.
“누군가의 온기가 문장이 되는 순간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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