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김은숙 작가론: 로맨스로부터 복수극까지, 오락성과 윤리성 사이에서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5. 28.

 

 
 
 
김은숙 작가론: 로맨스로부터 복수극까지, 오락성과 윤리성 사이에서
 
(아랫글은 영상문학론 수업 자료를 정리한 것임)
 
3학년 1학기, 복수전공으로 듣는 영상문학론 수업에서 우리는 한국 드라마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김은숙에 대해 배웠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동안 김은숙의 작품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비현실적인 로맨스, 신데렐라 서사를 반복하는 듯한 이야기 구조, 말장난처럼 느껴지는 대사들. 그런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수업을 듣는 동안 나의 ‘취향’이라는 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때로 우매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김은숙이라는 작가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단지 감각적으로 싫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나의 자세가 부끄러워졌다. 특히 이번 주에 작가의 <더 글로리>를 보고 너무 깜놀해서 내 무지함이 부끄러웠다. 이 새벽의 썰은 그에 대한 반성문이다.
 
김은숙은 2000년대 초반 <파리의 연인>(2004)을 시작으로 <프라하의 연인>, <시크릿 가든>(2010), <상속자들>(2013)까지 수많은 히트작을 집필하며 ‘로맨스의 여왕’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녀의 진짜 힘은 단순한 로맨스에 머무르지 않고, 장르적 실험과 사회적 질문으로 확장해나가는 데 있었다. 초기작에서는 재벌과 평범한 여성의 로맨스, 계급차를 넘는 사랑이 중심이 되었고, 이는 때로 ‘신데렐라 콤플렉스’로 비판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도 여성 인물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욕망을 발화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주체로 등장했다. 에바 일루즈가 말한 “감정의 종합판”이라는 말처럼, 김은숙의 로맨스는 대중의 감정을 예리하게 끌어올리는 능력을 지녔다.
 
그녀의 드라마는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것이었다. 위트 있는 대사, 상황적 유머, 빠른 서사 전개는 시청자의 감정을 능수능란하게 조율했고, 이국적 배경과 감정 과잉의 장치는 콘텐츠를 '글로벌'하게 소비하도록 유도했다. 대중은 그녀의 서사 안에서 웃고, 설레고, 울며 위로받았고, 그렇게 김은숙은 오락성이라는 장르를 정교하게 만들어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김은숙 역시 머물지 않았다. <태양의 후예>, <미스터 션샤인> 같은 작품을 통해 그녀는 보다 복합적인 세계를 열어 보였다. 이제는 단지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 민족, 정의, 인간다움 같은 질문들이 서사의 중심에 자리했다. 여성 인물은 더는 구원받는 존재가 아니라, 직접 싸우고 선택하며 이끌어가는 인물로 변모했다. 그 변화는 <더 글로리>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더 글로리>는 단지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를 다룬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 입은 한 인간이 자기 존엄을 되찾기 위해 세계와 다시 맞서는 윤리적 서사이다. 김은숙은 “사과를 받아내야 비로소 원점”이라는 말을 통해, 이 이야기가 ‘되찾기 위한 싸움’임을 명확히 했다. 문동은은 과거의 여성 주인공들과 달리, 사랑에 의해 변화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자기 기억과 고통을 스스로 다루며, 자기 언어로 복수를 설계하고, 무엇보다 자기 서사를 완성해가는 주체이다.
 

 
이 글은, 그 세계를 너무 늦게 발견한 나의 사적 반성문이자, 이제라도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은 한 관객의 고백이다. 새벽이 깊다. 다시 <더 글로리>의 첫 장면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도 내 작은 서사의 원점을 묻기 시작한다. 이제는 김은숙이라는 작가에게 마음의 창을 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도 놀랍다. 그동안 내가 외면했던 그녀의 작품들이 이제는 나의 글쓰기에 깊은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또한 생긴다. 특히 더 글로리 속에서 펼쳐진 복수의 서사, 인간 존엄에 대한 집요한 사유, 그리고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목소리들은 앞으로 내가 써야 할 이야기들에 중요한 참고점이 되어줄 것 같다.
 
이제는 김은숙이라는 작가에게 마음의 창을 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도 놀랍다. 그동안 내가 외면했던 그녀의 작품들이
나의 글쓰기에 참고점을 줄 거라는,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를 보며 나는 입체적인 인간 군상들의 치밀한 묘사에도 감탄했고, 매회마다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플롯 구성과 감정의 리듬, 그리고 상처 입은 자들의 침묵과 연대가 만들어내는 울림에 깊이 매료되었다. 김은숙은 단순히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가 아니라,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사회의 윤리를 파고드는 정교한 사상가이자 서사 설계자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모든 감응과 인식의 전환은 교수님의 섬세하고 깊은 수업 덕분이다. 강의 시간마다 느꼈던 그 단정하고 잔잔한 울림, 무엇보다도 한 편의 작품을 꽃잎 들추듯 조심스레 열어 보이시던 교수님의 태도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는 종종, 요즈음 교정에 만개한 데이지꽃이 가만히 흔들릴 때마다, 그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모습에서 교수님이 떠오르곤 한다.
 
그 꽃은 눈에 띄게 화려하지도, 강하게 주장하지도 않지만,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바람을 받아내고, 빛을 품는다. 교수님의 가르침도 그러했다. 그 고요한 힘 덕분에 나는 내 안의 편견을 돌아보고, 한 편의 드라마를 다시 읽고, 내 글쓰기의 방향마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반성문은, 그래서 단순한 감상문이 아니라, 어떤 ‘깨달음’의 기록이다. 그 깨달음의 길 위에서, 나는 조용히, 진심으로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끝)
 
 
#김은숙작가론 #더글로리 #문동은 #드라마비평 #복수서사 #여성서사 #윤리적드라마 #로맨스의해체 #영상문학론 #감정의정치학 #대중문화비평 #작가론 #서사분석 #드라마와윤리 #드라마를읽는법 #여름의데이지 #감사의글 #글쓰기반성문 #사유의기록 #교수님감사드립니다 #국립군산대학교 #군산대국문과 #군산대 철학과 #lettersfromatrave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