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라는 이름의 경계 밖에서: 김은숙과 『더 글로리』를 다시 보다”
3학년 1학기, 복수전공으로 듣는 영상문학론 수업에서 우리는 한국 드라마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김은숙에 대해 배웠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동안 김은숙의 작품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비현실적인 로맨스, 신데렐라 서사를 반복하는 듯한 이야기 구조, 말장난처럼 느껴지는 대사들. 그런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수업을 듣는 동안 나의 ‘취향’이라는 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때로 우매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김은숙이라는 작가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단지 감각적으로 싫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나의 자세가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나는 김은숙의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마침 그녀의 가장 최근작이자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에서 화제가 되었던 『더 글로리』를 보게 되었다.
1. 줄거리 개요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인 문동은이 수년간에 걸쳐 가해자들에게 철저히 복수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고등학생 시절, 문동은은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반복적이고 극단적인 폭력을 당하고, 학교와 사회는 이를 묵인하거나 외면한다. 견딜 수 없는 고통 끝에 자퇴한 문동은은 이후 전혀 다른 삶을 설계한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철저한 계획 아래 가해자들의 삶을 하나씩 무너뜨리기 위한 복수를 준비한다.
성인이 된 문동은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가해자 박연진의 딸이 다니는 학교에 교사로 들어간다. 이로써 그녀는 가해자의 일상에 침투하고, 연진과 그녀의 주변 인물들의 약점을 하나씩 파악한다. 그러면서 동은은 또 다른 고통의 당사자들과 느슨한 연대의 끈을 맺고, 복수의 여정은 단순한 사적 응징을 넘어, 윤리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문동은의 복수는 그녀 자신을 치유하고, 타인의 고통에도 응답하며, 정의와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2. 주요 인물 분석
1) 문동은
문동은은 『더 글로리』의 중심인물이자, 이야기 전체의 동력을 이끄는 인물이다. 학창 시절 끔찍한 폭력을 당한 피해자로서 등장하지만, 그 고통을 단순히 감내하거나 잊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철저히 기억하고, 이를 복수의 동력으로 삼는다. 이는 단순한 사적 응징을 넘어, 존재론적 질문, “고통을 겪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문동은은 니체가 말한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의 전형적 실천자이자, 라캉식 언어의 주체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말로 표현하고 기록하며, 기억의 반복을 ‘증상’이 아니라 ‘서사’로 바꾼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은 그에게 고통의 재연이 아니라 자기 동일성의 회복이자 저항의 의식이다. 한편 그는 가해자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적 사고를 탁월하게 구사하며, 복수와 동시에 자기 구원을 기획한다. 이는 윤리적 복수, 존재론적 복수의 성격을 띤다.
문동은은 또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사랑, 연민, 죄책감, 불신이 교차하며 그는 점점 더 인간적인 인물로 변모해간다. 이는 ‘피해자의 영웅화’가 아닌, 고통을 견디며 윤리적으로 자기 자신을 구성해 가는 과정 그 자체다.
2) 박연진
박연진은 『더 글로리』에서 가장 잔혹하고 지능적인 가해자로 그려진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동은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괴롭히며 극악한 폭력을 주도하고, 성적 수치심을 가미한 고통까지 가한다. 특히 동은의 몸에 화상을 입히며 조롱하는 장면은 인간성을 상실한 가해자의 전형으로 각인된다.
그녀는 기상 캐스터이자 인플루언서로 사회적 성공을 구가하지만, 그 모든 것은 폭력을 은폐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외피일 뿐이다. 죄책감이나 반성 없이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부모의 위선적 보호와 피상적 모성애 속에서 자라온 연진은 감정의 진정성 없이 권력을 휘두른다. 에바 일루즈가 말한 '감정의 자본화'의 전형으로, 그는 감정을 연기하고 타인을 조작하는 데 익숙하다.
박연진의 붕괴는 단지 악의 처벌이 아니라, 체제의 위선과 감정의 허위가 붕괴되는 상징적 순간이다. 생방송 중 무너지는 모습은 공적 가면이 벗겨지는 전환점이자, 그녀가 구축한 감정 정치학의 파산을 드러낸다. 이로써 박연진은 단순한 악역이 아닌, 한국 사회 구조 속에서 성장한 권력형 폭력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3) 강현남
강현남은 문동은의 조력자로 등장하며, 가정폭력 피해자이다.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동은과 협력하는 그는 처음에는 계약 관계로 시작하지만,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깊은 연대와 신뢰를 쌓아간다. 강현남은 드라마에서 ‘상처 입은 타자’와의 윤리적 연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의 존재는 문동은의 복수가 개인적 복수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 연대의 감정으로 확장됨을 보여준다. 그는 고통 속에서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그 감정을 통해 움직인다. 이런 점에서 그는 ‘감정의 윤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실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4) 전재준
전재준은 연진의 패거리이자 또 다른 가해자로, 집안의 재력을 믿고 제멋대로 살아간다. 색약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복수의 핵심 열쇠로 작용한다. 그는 끝까지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으며, 무자비함과 탐욕을 상징한다. 동시에 그는 ‘비열함의 내면화’가 어떻게 사람을 도덕적으로 무감각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5) 이사라
이사라는 목사의 딸로, 연진 패거리의 일원이자 마약중독자이다. 타락한 종교의 모순을 체현하며, 스스로의 죄의식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폭력에 가담한다. 그녀는 ‘위선’과 ‘면죄’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이며, 도덕적 해이와 자아 분열의 사례로 읽을 수 있다.
6) 최혜정
최혜정은 연진 패거리 내에서 낮은 계급에 속한 인물로, ‘가해자 내부의 계급 질서’를 드러내는 캐릭터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고, 때때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의 존재는 권력 관계 속에서 도구화되는 개인의 불안정한 위치를 상징한다.
7) 손명오
손명오는 전재준의 부하이자, 또 다른 형태의 ‘가해자이자 약자’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내면화된 서열 구조에 순응하며 살아왔고, 그 구조 안에서 자신도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되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그의 최후는 연민과 혐오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8) 하도영
하도영은 가해자 박연진의 남편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상류층 인물이다. 그는 초반에는 문동은의 복수극에 휘말리는 듯하지만, 점차 자신의 도덕성과 감정 사이의 균열을 인식하게 된다. 그는 기존 질서의 수호자처럼 보이지만, 문동은을 통해 내면의 공허함과 윤리적 동요를 체험한다.
하도영은 근대적 남성 주체의 균열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전통적 가족 질서와 사회적 체면 사이에서 흔들리며, 궁극적으로는 진실을 마주하고 변화를 선택하는 인물이다. 이는 김은숙 드라마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남성 인물의 성장 서사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9) 주여정
주여정은 문동은의 연인이자 조력자로 등장하며, 겉보기에는 따뜻하고 유연한 인물이지만 내면에는 깊은 상처와 복수심을 간직한 복합적인 인물이다. 그는 유명한 병원의 성형외과 의사로서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를 살해당한 충격적인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그 트라우마는 단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윤리적 판단과 관계 맺기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철학적으로 주여정은 복수와 치유라는 이중의 감정 안에서 윤리적 주체로 성장해 가는 인물이다. 그는 문동은과의 관계를 통해 단순히 그녀를 돕는 ‘구원자’ 역할을 넘어서, 자신도 치유받고 윤리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겪는다. 주여정은 ‘복수의 동맹’이자, ‘상처 입은 타자와의 연대’를 실천하는 인물이며, 문동은과의 관계 속에서 감정의 정직함, 연대의 필요성, 그리고 고통의 공유를 배우게 된다.
심리적으로는, 주여정의 복수는 문동은의 복수와는 또 다른 층위를 가진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내면화하면서도, 폭력에 맞서는 방식은 비폭력적이고 치유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드라마 말미에서 암시되듯, 그는 문동은을 위해 또 하나의 복수를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인물로서, ‘사적 응징’의 윤리적 경계선 위에 놓인다. 이 모호한 경계는 『더 글로리』가 던지는 윤리적 질문을 더욱 깊게 만든다. 주여정은 단지 사랑의 인물이 아니라, 윤리의 교차로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다시 쓰는 서사의 주체로 기능한다.
10) 에덴빌라 할머니
에덴빌라의 건물주이자 복덕방 주인으로 등장하는 할머니(배우 손숙 분)는 문동은과 조용하지만 깊은 연을 맺는 인물이다. 단순한 임대인이 아니라, 과거의 고통을 공유하며 문동은에게 따뜻한 신뢰를 제공하는 '숨은 조력자'로 기능한다. 과거, 어린 동은이 강물에 빠져 자살을 시도하던 할머니를 구해준 사건은 두 사람의 인연의 시작점이자 서사의 정서적 뿌리가 된다.
할머니는 복수라는 서사에 직접 개입하지 않지만, 문동은에게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조건으로 방을 내주며 복수의 본거지를 마련해 준다. 그녀는 복수의 도구를 제공하지 않지만, 그 과정 전체를 말없이 응시하며 윤리의 바깥이 아닌 안쪽에서 문동은을 지지하는 어른으로 존재한다. 이는 드라마 전체에서 보기 드문, 조용한 윤리적 보호막이자 삶의 온기를 유지시켜주는 인물상이다.
드라마의 마지막, 옥상에 피어난 하얀 꽃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그녀는 문동은의 부재를 마주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남긴 ‘삶의 방식’을 되새긴다. 그 꽃은 단지 식물이 아니라, 상처받은 자들이 서로를 살피며 만들어낸 연대의 상징이며, 문동은이 떠난 후에도 그 서사가 지속되고 있다는 조용한 증명이다.
11) 강영천
강영천은 주여정의 아버지를 살해한 인물이자, 그 이전에도 두 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전력이 있는 연쇄살인범이다. 그는 단순한 ‘악의 평범성’(한나 아렌트)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악의 근원적이고 병리적인 형태를 구현하는 존재다. 아무 이유 없이 타인을 고통스럽게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인간성 자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드라마는 이 인물을 통해 “악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드러낸다.
철학적으로 강영천은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윤리를 완전히 배반하는 인물이다. 그는 타자의 고통에 어떤 응답도 하지 않으며, 인간 간의 관계성, 책임, 응시의 윤리를 완전히 제거한 상태에서 작동하는 비윤리적 주체다. 칸트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도덕률을 내면화하지 못한 존재일 뿐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 판단을 철저히 외면하는 ‘무규범성’의 상징이다.
심리적으로 강영천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보인다. 감정적 무감각, 반복적인 잔혹행위, 죄의식의 결여는 그를 단순한 나쁜 사람을 넘어서 ‘공감의 부재’ 자체로 설정된 서사적 타자로 만든다. 그의 존재는 주여정에게 단순한 복수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두운 지점과 직면하게 만드는 윤리적 거울로 작용한다.
드라마 후반부, 문동은은 주여정에게 “망나니가 되어주겠다”며 강영천을 향한 복수의 실현을 돕는다. 이 장면은 단순한 사적 응징이 아니라, '정의란 무엇인가', '응징이 구원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떤 윤리를 감당해야 하는가'를 묻는 도덕적 시험의 장면으로 작동한다. 문동은은 복수의 도구가 아니라, 주여정이 감정과 윤리의 균열을 통과하도록 돕는 연대의 파트너로 기능한다. 강영천은 그 질문 앞에서 시청자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이자, 『더 글로리』의 윤리적 심연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13) 문동은의 엄마
문동은의 엄마는 『더 글로리』에서 가장 충격적이고도 복잡한 형태의 ‘가해적 모성’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녀는 자식을 보호하고 지지해야 할 어머니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의 욕망과 생존을 위해 딸을 방기하고 배신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동은이 학폭 피해를 입고 절박한 상태에 빠졌을 때조차, 그것을 이용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자녀의 고통을 외면한다.
이 인물은 사회적 통념 속 ‘어머니’라는 상징에 균열을 내며, 모성이 언제든지 자기 중심적 이해관계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보호자가 아닌 또 하나의 가해자이며, 드라마는 이를 통해 “가족 내부의 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정면으로 제시한다. 철학적으로 그녀는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윤리에서 완전히 탈락된 인물이다.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기는커녕, 타인을 수단화하고 소외시키는 존재로 기능하며, 이는 모성과 여성성의 탈신화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김은숙의 서사 전략과 맞닿아 있다.
문동은의 엄마는 드라마 내내 ‘무책임한 부모’의 극단을 보여주며, 피해자조차 가족에게 기대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상징화한다. 그녀의 존재는 단지 동은의 상처를 더하는 장치가 아니라, 피해자의 복수조차 정당화해주는 정서적 배경이 된다.
3. 주요 장면 분석
1) 문동은의 일기장 장면
매일 반복되는 일기쓰기와 학습의 루틴은 단순한 생존이 아닌 자기 동일성의 회복 과정이다. 라캉적 관점에서 볼 때, 문동은은 자신의 고통을 언어화하며 ‘상징계’ 안에서 자아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자크 라캉은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주체가 완전한 자율적 의식에서가 아니라 언어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는 뜻이다. 문동은이 자신의 고통을 끊임없이 언어로 반복하고 구성하는 행위는, 그 트라우마를 무의미한 고통이 아닌 '말해진 것', 즉 구조화된 상징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이다. 매일의 일기쓰기는 그녀가 파편난 자기의식 속에서 주체로 서기 위한 상징적 투쟁이며, 이 반복은 고통을 견디는 기계적 의식이 아니라, 고통을 의미화하는 실존적 시도라 할 수 있다.
2) 예솔을 바라보는 동은의 시선
동은이 예솔을 보며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은 복수의 감정과 모성적 연민이 충돌하는 순간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극적 정화(카타르시스)'의 한 장면처럼, 관객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복수의 정당함을 믿으면서도, 예솔이라는 무고한 존재 앞에서 동은은 스스로의 감정을 절제하거나 재해석하려 한다. 이는 단순히 모성의 감정이 아니라, '타자의 무고함' 앞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다시 성찰하게 되는 철학적 윤리의 순간이다. 레비나스가 말한 바, '타자는 나의 자아를 넘어서는 윤리적 요청'이라는 명제처럼, 이 장면은 동은이 자신에게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따뜻한 감정과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계기이며, 복수가 파괴로만 끝나지 않고 관계와 책임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 박연진의 뉴스 생방송
연진이 생방송 중 무너지는 장면은 그녀의 위선이 무너지는 상징적 순간이다. 이는 감정의 정치학이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세워졌는지를 보여주며, 가해자의 사회적 가면이 벗겨지는 전환점이 된다. 더욱 상징적인 것은, 이후 감옥 수감실에서 연진이 과거 자신이 진행했던 뉴스 생방송을 같은 방의 수감자들 앞에서 마치 방송을 진행하듯 재현하며 흐느끼는 장면이다. 이는 그녀가 사회적으로 구축해 온 가면적 자아에 대한 강박적 집착이자, 붕괴된 자아를 지탱하려는 무의식적 시연이다. 감정이 소비되고 통제되던 과거를 반복하며 연진은 현실의 불가역성과 직면하게 되고, 그 과잉된 반복은 허망한 자기 확인의 의례가 된다.
심리적으로 이 장면은 일종의 '자기 대상 상실'에 해당하며,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나르시시즘 붕괴의 한 형태다. 연진은 자신이 구축한 사회적 자아, 즉 감정과 언어로 치장된 캐릭터가 붕괴했을 때 실존적 공허와 직면하게 된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현존재의 불안'과도 맞닿아 있다. 위선의 구조물이 사라졌을 때 인간은 비로소 존재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며, 연진은 그 무게 앞에서 자신이 만든 허상의 비참함과 공허함에 직면한다. 이로써 『더 글로리』는 가해자의 몰락을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윤리적 자기응시와 붕괴의 철학으로 확장시킨다.
4) 강현남의 장면
가정폭력 피해자로서의 삶을 용기 내어 발화하는 이 장면은 단지 동은의 조력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고통을 서사화하는 존재로 재정립되는 계기다. 그는 더 이상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윤리적 주체로 거듭난다. 더욱이 이 장면의 감동은, 강현남이 한때 남편을 간접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과 맞물릴 때 더욱 깊어진다. 그는 단순한 정의의 집행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손으로 타인을 제거해야만 했던 고통스러운 윤리적 선택 앞에 서 있던 인물이며, 생존을 위한 극한의 결정 이후에도 타자와의 연대를 망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도덕적 성장을 보여준다.
나는 강현남의 과거를 단지 법적 책임의 프레임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녀는 고통의 구조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고, 이후 그 선택의 무게를 감당하며 자기 고통을 타인의 고통과 연결지어 말할 줄 아는 존재로 거듭났다고 생각한다. 『더 글로리』는 이 장면을 통해 복수의 서사 안에서도 인간이 윤리적 갈등과 책임, 연대의 가능성 안에서 다시 주체로 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강현남의 발화는 단지 고발이 아니라, 상처 입은 존재가 다시 삶을 선택하는 선언이
5) 이사라와 최혜정: 목소리를 지우는 폭력의 상징성
이사라가 최혜정의 목을 볼펜으로 찌르는 장면은 단순한 폭력적 충돌이 아니라, 『더 글로리』 전체 서사의 상징적 정점 중 하나이다. 최혜정은 드라마 내내 말(言)과 이미지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온 인물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권력의 상징이자 자기 방어의 도구였고, 그녀가 속한 계급 내에서 생존을 위한 무기였다. 이사라는 그런 혜정의 목을 찌름으로써, 말할 수 있는 자격, 곧 ‘권력’을 상징하는 목소리를 물리적으로 박탈한다. 이는 말 그대로 '목소리를 지우는' 행위로서, 권력의 도구를 무력화시키는 상징적 제스처이다.
이 장면은 '말할 수 있는 자'와 '침묵당한 자' 사이의 위계를 붕괴시키는 행위이자, 이사라 내부의 위선과 자기기만, 종교적 억압의 응축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이사라는 목사의 딸이라는 사회적 정체성과 마약에 중독된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그 도덕적 붕괴는 볼펜이라는 일상의 사물이 살상 도구가 되는 극단적 폭력으로 전환된다. 이는 『더 글로리』의 주요 상징인 '일상의 가장자리에서 자라난 폭력'을 다시 한 번 드러내며, 고데기와 함께 억압된 자가 가해자의 언어와 도구를 되돌려주는 폭력의 역전된 정치학을 구현한다.
심리적으로 이 장면은 억압된 죄책감과 자기 혐오가 타자에게 투사된 비극적 표출이며, 철학적으로는 타자성의 파괴가 아니라, 자신 내부 윤리의 무능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비윤리의 절정으로 읽힌다. 결국 이 장면은 『더 글로리』가 제시하는 윤리적 연대의 파국, 그리고 인간성의 붕괴와 그로부터 도출되는 질문을 가장 직접적으로 던지는 장면 중 하나로 기능한다.
6) 전재준의 최후
그가 시력을 잃고 고립되는 마지막 장면은 '보는 자'에서 '보이지 않는 자'로 전환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권력의 해체이자, 시각 중심 사회에서 배제된 자의 새로운 위치를 상징한다.
철학적으로 전재준은 시선을 독점하며 타인을 통제하던 '응시하는 주체'의 위치에서, 진실을 마주할 수 없는 '배제된 객체'로 전락한다. 그는 세상의 색을 보지 못하는 색약자였지만, 사회적 권력을 통해 진실을 외면하고자 했고, 결국 그 시선은 자기기만의 기제로 전락한다.
심리적으로는, 전재준의 색약과 시력 상실은 자기 동일성의 해체와 관련된다. 그는 외면적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재벌 2세였지만, 내면에서는 진정한 자기 이해 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몰락은 자기 확장의 실패이자,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의 부재가 낳은 결과다. 전재준은 끊임없이 자신을 타자 위에 세우려 했고, 그 위계적 구조가 무너졌을 때 그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조차 찾지 못한다. 그의 고립은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자기감각을 잃어버린 자의 철저한 실존적 추락을 상징한다.
7) 손명오의 몰락과 최후의 윤리
손명오는 『더 글로리』에서 가장 복합적인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어릴 적부터 권력에 복속된 채 살아왔고, 전재준의 하수인으로 기능하며 가해자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무시당하고 착취당하는 약자이기도 하다. 그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넘나드는 존재다.
철학적으로 손명오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구현하는 인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주어진 권력 구조 내에서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며 살아간다. 그의 행위는 사악함보다는 무반성적인 동조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더 위험한 폭력을 내포한다. 그러나 그가 극 마지막에 보이는 불안과 혼란, 그리고 위협 앞에서 무너지며 흔들리는 모습은, 그조차도 구조 안에서 길들여진 하나의 인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심리적으로는, 손명오의 최후는 억압된 공포와 열등감이 외부에 투사되다가 결국 자기파괴로 귀결되는, 일종의 방어기제 붕괴의 순간이다. 그는 끝까지 타인의 시선과 관계 속에서만 자신을 규정하려 했고, 그 결과 스스로의 고통도 타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밖에 대응하지 못한다. 그의 몰락은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타자화된 삶의 비극을 응시하게 하는 윤리적 사건으로 작용한다.
8) 하도영의 결말
결말부에서 하도영은 딸 예솔과 함께 아일랜드로 떠난다. 이는 단순한 가족 해체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그는 박연진과의 결혼생활에서 벗어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윤리적 위치를 스스로 정립한다. 하도영은 오랜 시간 침묵 속에서 중립적 위치에 서 있었지만, 동은과 예솔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윤리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철학적으로 하도영의 선택은 ‘도망’이 아니라 ‘이탈’이며, 이는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로운 선택’에 가깝다. 그는 기존의 질서와 체면, 위선적 명분에 기반한 삶에서 벗어나 도덕적 책임을 지는 새로운 주체로 거듭난다. 사회적 위계 안에서 타자의 고통에 침묵하는 대신, 연진의 진실을 마주하고 예솔의 미래를 선택함으로써 윤리적 행위자가 된다.
심리적으로는, 하도영이 예솔의 생부가 전재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솔을 지키기로 결심하는 선택이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는 ‘혈연 중심주의’에 대한 탈구조적 저항이며, 그가 어떤 형태로든 윤리적 부성(父性)을 선택한 순간이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전재준이 죽은 채 발견되고, 넥타이 하나만이 단서로 등장한 점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은 하도영이 전재준을 살해했을 가능성을 유추한다. 이 장면은 모호성과 상징으로 남겨지지만, 만약 그가 죽음에 개입했다면 그것은 사적 복수가 아닌 정의의 균형, 즉 윤리적 응보의 형태로 읽힐 수 있다. 이처럼 하도영은 위선의 사회에서 ‘정의롭게 떠나는 자’로서, 감정의 정치와 도덕의 윤리를 동시에 체현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4. 상징 분석
1) 바둑: 『더 글로리』에서 바둑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의 메타포이자 철학적 구조로 기능한다. 바둑은 돌 하나하나가 국면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미세한 수 싸움이 승패를 결정짓는다. 이는 곧 문동은의 복수 방식과 유사하다. 그녀는 감정의 즉각적인 분출이 아닌, 모든 돌의 위치를 정교하게 계산하며 복수를 설계한다. 이처럼 바둑은 전략적 사고, 인내, 균형이라는 윤리적 미덕을 상징한다.
철학적으로 바둑은 '삶의 기획'이자 ‘존재의 배열’에 가까운 메타포로 읽을 수 있다. 특히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개념과 연결해 본다면, 바둑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세계 안에서 자리를 만들어가는 존재의 방식이다. 문동은은 자신의 고통을 바둑판 위의 돌처럼 배열하고, 그 안에서 자기 동일성과 정의를 구성해 간다. 여기서 바둑은 ‘운명에 맞서는 설계의 철학’으로 작동하며, 그녀는 운명을 견디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 운명을 재구성하는 자로 거듭난다.
또한 바둑의 흑과 백은 단순한 선과 악의 이분법이 아닌, 상대적 가치와 긴장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더 글로리』가 단순한 권선징악의 틀에 갇히지 않고 복수와 윤리, 인간과 타자의 복합적 관계를 탐색하는 이유는, 바로 이 바둑적 사유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여정이 동은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장면은 사랑의 은유가 아니라, 감정의 질서를 세우는 ‘철학적 수업’으로 해석될 수 있다.
2) 흰색 교복: 동은이 입는 교복은 복수의 서사를 설계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이며, 동시에 상처받은 시절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존재의 증표다.
3) 눈: ‘응시’의 모티프는 전재준의 색약에서 극대화된다. 보지 못함과 보려 하지 않음은 죄책감의 부재와도 연결되며, 눈은 진실을 직면하느냐 회피하느냐의 윤리적 기준이 된다.
4) 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불꽃과 화상은 파괴이자 정화의 상징이다. 동은의 내면에서 불은 고통과 분노의 이미지인 동시에, 그녀가 치유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의례적 상징이다.
5) 고데기: 폭력의 도구이자, 이후 가해자를 위협하는 역전된 상징물로 등장한다. 이는 도구의 윤리적 반전, 즉 억압받던 주체가 도구를 통해 주도권을 되찾는 서사의 도약을 상징한다.
6) 지산 교도소에서 독후감 강사로 등장하는 문동은:
문동은이 마지막에 지산 교도소에서 독후감 강사로 등장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인 함의를 갖는다. 과거 자신의 고통을 글로 표현하고 기록하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회복해 온 문동은은, 이제 타인의 고통을 경청하고 언어화하도록 이끄는 입장으로 이동한다. 이는 ‘서사의 윤리’가 개인 복수를 넘어 사회적 연대로 확장되는 순간이며, 더 이상 복수의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공동체적 윤리를 실천하는 주체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장면의 더욱 의미심장한 점은, 지산 교도소가 바로 동은의 연인이자 조력자인 주여정의 아버지를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이 수감될 곳이라는 설정과 맞물릴 때 드러난다. 이는 동은의 ‘사적 복수’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님을 암시하면서도, 그녀가 복수의 폭력적 고리를 끊고 삶의 방향을 ‘치유’와 ‘의미’로 전환하고자 하는 결단의 표시로 읽힌다. 피해자의 자리를 넘어, 타인의 고통을 감싸 안는 말과 글의 공동체로 진입하는 동은의 모습은, 『더 글로리』가 말하는 진정한 구원의 상징이다.
7) 무당의 공간:
드라마 중반부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무당은 단순한 미신적 존재가 아니라, 권력자들의 ‘비제도적 은신처’이자 감정과 폭력, 위선을 공유하는 사적 네트워크의 상징이다. 특히 박연진의 어머니와 비리 형사가 이곳을 드나들며 여성들을 남성들에게 연결해주는 성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면은, 이 공간이 예언의 장소가 아닌 ‘성적 착취와 범죄 은폐의 아지트’로 기능함을 드러낸다. 이는 『더 글로리』가 말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부패와 감정의 위선이 어떻게 일상적인 공간 안에 은폐되어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더 나아가, 이 무당의 공간은 문동은에 의해 다시 활용된다. 동은은 이곳을 통해 박연진에게 소희 사건의 존재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장치로 전환시키고, 이 공간을 기존 권력자들의 위선의 무대로만 두지 않고, 역으로 진실을 암시하고 예고하는 복수의 장소로 재기획한다. 이처럼 무당은 단순한 주변 인물이 아니라, 이야기 속 감정적 윤리와 위선의 정치, 그리고 기억의 복원이 교차하는 핵심적 상징으로 기능한다.
8) 주여정의 아버지
주여정의 아버지는 단지 피해자가 아닌, 『더 글로리』 내에서 '정의롭고 윤리적인 세계'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그는 의사로서 생명을 돌보는 위치에 있었으며, 극 중에서는 환자에게 선의를 베풀고 존엄을 지키려 했던 인물로 간략하게 제시된다. 그러나 바로 그가 무고하게 살해당함으로써, 드라마는 ‘선한 자가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세계’, 즉 윤리가 무력해진 현실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그의 죽음은 주여정에게 치유 불가능한 트라우마를 남기며, 동시에 복수와 윤리, 정의의 복원이라는 서사의 내적 동력을 제공한다. 이처럼 주여정의 아버지는 드라마 전체에서 ‘무너진 정의’의 상징이자, 그것을 복원하려는 모든 정서적 서사의 기점으로 기능한다.
철학적으로 주여정의 아버지는 레비나스적 타자 윤리의 구현자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는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며, 생명을 돌보는 일을 통해 ‘응시의 윤리’를 실천했던 인물로 상정된다. 그러나 그가 무참히 살해당함으로써, 『더 글로리』는 타자에 대한 책임과 응답의 윤리가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그의 죽음은 칸트가 말한 '목적의 인간'이 도구화되어 버리는 순간이며, 이는 인간 존엄성과 윤리적 존재 조건이 무참히 훼손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주여정의 고통은 단지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윤리의 붕괴를 목격했다는 실존적 충격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단지 사건이 아니라, 윤리의 침묵이 가져오는 사회적 병리의 상징이다.주여정의 아버지는 단지 피해자가 아닌, 『더 글로리』 내에서 '정의롭고 윤리적인 세계'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그는 의사로서 생명을 돌보는 위치에 있었으며, 극 중에서는 환자에게 선의를 베풀고 존엄을 지키려 했던 인물로 간략하게 제시된다. 그러나 바로 그가 무고하게 살해당함으로써, 드라마는 ‘선한 자가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세계’, 즉 윤리가 무력해진 현실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그의 죽음은 주여정에게 치유 불가능한 트라우마를 남기며, 동시에 복수와 윤리, 정의의 복원이라는 서사의 내적 동력을 제공한다. 이처럼 주여정의 아버지는 드라마 전체에서 ‘무너진 정의’의 상징이자, 그것을 복원하려는 모든 정서적 서사의 기점으로 기능한다.
5. 시청자 반응 분석
『더 글로리』는 방영 직후 한국은 물론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피해자의 복수라는 서사가 많은 이들의 감정을 자극하며 “사이다 드라마”로 통용되었지만, 동시에 단순한 쾌감 제공 이상의 의미를 읽으려는 시도도 많았다. 트라우마의 반복과 윤리적 질문을 중심에 둔 이 서사는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켰고, 각 인물의 입체적인 심리 묘사는 공감과 혐오를 동시에 자아냈다.
해외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문법', '디테일한 감정 연출', '인물 간 서사의 정교함'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으며, 단순한 장르물에서 벗어난 ‘감정의 서사적 해방’으로서 작품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는 김은숙 작가가 장르와 서사적 틀을 넘어서 시청자와의 감정적 소통을 새롭게 설계했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6. 김은숙의 전작과의 비교
김은숙은 오랫동안 ‘로맨스 장인’으로 불려왔다.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 등을 보아왔고 나에게 이 작품들이 그녀의 대표작이었기에 나는 작가에 대한 편견을 지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일반적인 작가에 대한 시선은 대중적 로맨스 서사의 전형을 구축하며, 특히 계급 차이, 운명적 만남, 신데렐라 서사를 주요 모티프로 삼으며 감정의 극대화와 오락성의 정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작가, 동시에 현실과 유리된 판타지로 비판받기도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 글로리』는 그런 전작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전환점이 되었음을 나는 실감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로맨스를 탈중심화하고, 복수와 윤리, 사회 구조에 대한 고찰을 중심에 둔 ‘윤리서사’에 가깝다. 김은숙 특유의 재치 있는 대사와 서사적 긴장은 유지되지만, 그것이 봉사하는 목적은 감정의 소비가 아니라 감정의 성찰이다.
전작의 여성 주인공들이 흔히 ‘사랑을 통해 변화하는 존재’였다면, 『더 글로리』의 문동은은 ‘고통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존재’다. 이는 단순히 서사의 전환을 넘어, 작가가 여성 인물의 주체성과 사회적 윤리에 대해 얼마나 깊게 고민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다.
7. 사회적 함의와 담론적 확장
『더 글로리』는 단지 성공적인 콘텐츠를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도덕적 무감각, 그리고 복수와 정의 사이의 균열에 대한 집단적 성찰을 유도한 작품이다. 학교폭력이라는 구체적 현실을 중심에 놓고, 그것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단지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을 넘은 ‘구조의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이 작품은 ‘피해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강박을 해체하고, 고통받은 자의 분노와 복수조차 윤리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든다는 점에서, 한국 드라마가 이제는 단순한 감정 소비를 넘어서 윤리적, 철학적 사유를 촉진하는 매체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더 글로리』는 김은숙이라는 작가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돌파하며 새로운 서사 지평을 열어가는 과정이자, 한국 사회가 감정의 소비를 넘어 윤리적 응시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콘텐츠로 평가받을 수 있다.
8. 맺음말: 진실로, 진실로 김은숙의 진가를 맛보다.
16부작이라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가장 주워 담고 싶은 서사는 “권선징악이 실현”되는 세상이었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권선징악이 실현되는 사회에 살고 싶다.”라는 말은 직접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시청자라면 누구나 마음 깊이 되뇌었을 법한 문장이다. 오히려 극 중 박연진이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라고 냉소적으로 말하며 이 바람을 조롱한다. 그러나 그 조롱이야말로 피해자와 우리 모두의 갈망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나는 솔직히 말해, 권선징악이 실현되는 세상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얼마나 허구일지라도, 그것을 향한 서사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특히 나는 문동은이 자신의 복수를 설계하면서도 끊임없이 겪는 윤리적 갈등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 작가의 역량에 감탄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강현남이 과연 문동은을 배반할 것인가에 대해 긴장하며 지켜보았고, 끝내 배반하지 않고 연대의 손을 놓지 않는 장면에서 진심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고통 속에서도 끝내 잃지 않는 인간다움, 상처받은 자들끼리 서로를 알아보고 연대하는 그 감정의 흐름 속에서 나는 깊고도 진한 감동을 느꼈다. 이 드라마는 단지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되새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김은숙 작가가 이토록 많은 인물들, 심지어는 이야기의 중심에서 한 발짝 물러난 주변 인물들에게까지도 고유한 상처와 욕망, 감정의 입체성을 부여하며 하나의 서사적 우주를 완성해 낸 데 대해 깊은 경외심을 느꼈다. 각각의 인물이 자신만의 고통과 윤리를 지닌 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 그 복잡한 인간 군상의 교차 속에서 진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야기를 구축한 그녀의 서사적 통찰과 구성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나는 이제 단순히 ‘드라마 작가’로서의 김은숙이 아니라, 인간과 윤리에 대한 깊은 감응을 창조적으로 그려낸 하나의 ‘윤리적 이야기꾼’으로서 그녀를 바라보게 되었다.
『더 글로리』를 보고 난 후, 나는 진심으로 김은숙이라는 작가의 진가를 비로소 철저히, 깊이 맛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단지 유명한 드라마 작가, 흥행의 보증수표로만 여겨졌던 그녀가, 이토록 섬세하고 집요하게 인간의 윤리, 고통, 복수, 그리고 연대에 대해 이야기할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김은숙이 감정이라는 복잡하고도 무거운 재료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오락의 층위에 녹여 철학적 성찰로 끌어올리는지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더 글로리』는 나에게 단지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취향의 경계 너머를 비추는 빛이었고, 내가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한 작가의 변화와 도약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나는 이제 감히 말할 수 있다. 나는 김은숙을 다시 보게 되었고, 또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그녀는 장르의 틀 안에서 감정의 해방을 시도하는 이야기꾼이며, 동시에 시대의 윤리를 직시하는 사유가다. 그 진실을, 나는 『더 글로리』를 통해 뼛속까지 실감했다.
그리고 그 진실은, 나의 글쓰기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글을 쓴다는 행위를 통해 누구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는가, 혹은 외면하고 있는가를 자문하게 되었다. 『더 글로리』 속 문동은처럼, 침묵당한 자들의 고통을 말로 옮기는 일, 기억되지 못한 아픔을 서사로 증명하는 일이야말로 내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단지 멋진 표현이나 세련된 문장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닿는 윤리적 책임을 담은 문장, 그것이 나의 글쓰기가 지향해야 할 지점임을 새삼 깨달았다. 글쓰기는 결국 나와 타자의 경계를 묻는 일이며, 그 경계에서 연대하고, 응시하고, 응답하는 일이라는 것을 『더 글로리』는 내게 다시 가르쳐주었다.
사실 수업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류의 드라마에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좋은 봄날, 『더 글로리』를 통해 뜨거운 감동과 진한 사유의 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기회를 마련해주신 교수님께, 그리고 이토록 정교하고도 윤리적인 서사를 창조해 준 김은숙 작가님께 마음 깊이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이 글은 그분들께 드리는 조용한 헌사이며, 나의 새로운 시선이 열리게 된 하나의 기록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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