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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현대 한국문학의 흐름: ‘침묵, 윤리, 타자, 감정의 층위’김멜라의 『이응 이응』, 조경란의 『그들』, 조해진의 『빛과 멜로디』, 백온유의 『반의반의 반』을 통해 살펴본 감정의 윤리성과 문학의 새로운 미학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4. 17.

 

 

 

이번 학기, 현대소설강독 수업에서 유보선 교수님과 함께 김멜라의 이응 이응, 조경란의 그들, 조해진의 빛과 멜로디, 그리고 백온유의 반의반의 반을 읽었다. 나는 각 작품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천천히 침잠했고, 읽고 난 후엔 그 감정과 사유의 흔적을 따라 한 편씩 독후감을 써 내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님은 마치 무심한 듯, 그러나 오래 여운이 남는 말처럼, 이 네 편의 작품을 통해 오늘의 한국문학이 어떤 흐름 위에 놓여 있는지를 스스로 짚어보라는 제안을 건네셨다. 나는 그 말을 하나의 문학적 호출처럼 받아들였고, 그에 응답하기 위해 내 안에 흩어져 있던 감정의 파편과 미천한 사유의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이 글은 단순한 수업 과제를 넘어선 어떤 내밀한 탐색의 기록이다. 책장을 덮은 이후에도 마음 어딘가에 오래도록 머물렀던 문장들, 설명되지 않았으나 분명히 느껴졌던 인물들의 떨림, 말해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크게 울렸던 감정의 진동그 모든 것들은 내게 질문을 던졌고, 동시에 나 자신을 비추는 조용한 거울이 되었다. 나는 문장을 하나하나 감아 올리며, 이 네 작품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건네고 있는 윤리와 침묵, 타자성과 감정의 층위를 더듬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었다. 이 글은 단순한 독후감이나 문학적 분석이 아니라, 나라는 독자가 어떻게 이 시대의 문학과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어떤 내면의 진동에 귀 기울이고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아주 개인적이고 조용한 고백이라는 사실을.

 

현대 한국문학의 흐름: ‘침묵, 윤리, 타자, 감정의 층위

김멜라의 이응 이응, 조경란의 그들, 조해진의 빛과 멜로디, 백온유의 반의반의 반을 통해 살펴본 감정의 윤리성과 문학의 새로운 미학

 

오늘날 한국문학은 더 이상 극적 사건이나 선명한 갈등 구조, 또는 명확한 감정의 진술을 중심으로 서사를 짜지 않는다. 대신, 말해지지 않는 감정들, 명명되지 않은 관계, 침묵 속에서 스쳐가는 응시와 여백이 중요한 미학적 전략이자 윤리적 구조로 등장한다. 나는 최근 네 편의 작품, 김멜라의 이응 이응, 조경란의 그들, 조해진의 빛과 멜로디, 백온유의 반의반의 반을 통해 이 흐름을 선명하게 감각했다. 이 작품들 안에서 감정은 단지 심리적 반응이 아니라, 타자와 세계를 구성하는 윤리적 층위로 작동하고 있었다. 감정은 말해지지 않아도 존재하고, 관계는 실패하거나 유예된 채로도 함께 있음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나는 이 흐름을 네 가지 축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침묵, 윤리, 타자, 감정의 층위.

 

1. 관계의 불가능성과 침묵의 윤리

이응 이응 은 기술 시대에서도 감정이 단순한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감정은 표정과 어휘가 아니라, 비물리적 거리 속에서 발생하며, 기계로는 도달할 수 없는 층위에 존재한다. 주인공이 끝내 이응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장면은, 침묵 속에서 관계의 가능성을 다시 묻는 장면이다.

그들에서 침묵은 관계의 중심에 있다. 종소는 카페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낸다. 영주는 그를 바라보지만 말을 걸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이들이 서로를 감지하고, 말해지지 않는 고백을 스쳐 지나간다. 이 관계는 이해로 연결되지 않고, 말 없는 공존으로 구성된다. 최 교수와 영주의 부부 관계, 상현의 침묵과 낯섦 속에 깃든 감정의 단절은, 낸시가 말한 '공동존재' , 말없이 곁에 존재하는 윤리적 구조와 정확히 겹친다.

빛과 멜로디는 전쟁과 분쟁의 현장에서도 말 없이 서로를 지탱하는 존재들의 이야기다. 권은은 상처 입은 자로서, 다른 이들을 말없이 응시하고, 손을 뻗는다. 살마와 나스차, 승준과의 관계는 언어가 아니라 머무름응시로 이어진다. 침묵은 이 소설의 감정적 리듬이자 윤리의 구성 방식이다.

반의반의 반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가족이라는 제도적 관계가 더 이상 돌봄을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에 주목했다. 모성은 더 이상 사랑과 헌신의 표상이 아니라, 거리두기와 생존의 조건 속에서 재구성된다. 특히 윤미가 어머니에게 모성이란 게 있었을까라고 중얼대는 장면에서, 나는 모성의 표상과 실재 사이의 균열을 절실하게 느꼈다. 영실은 가족 안에서조차 끝내 외로움을 지우지 못하고, 낯선 타자인 요양보호사 수경에게 마음을 건넨다. 말이 아니라 시선과 옷차림, 행동으로 감정이 교환되는 이 작품은 침묵이야말로 감정의 가장 농밀한 형태임을 보여준다.

 

2. 감정의 다층성과 모순성에 대한 탐색

이응 이응 의 주인공은 차갑고 단절된 감정을 살아간다. 그녀는 오미자물이라는 닉네임으로 감정을 억제하고, 사회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쓴다. 그러나 '울고 있지만 두 뺨은 보송했다'는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정의 겹과 깊이를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 이는 곧 감정이 언어 이전의 구조이자 윤리적 감응의 방식임을 보여준다.

그들에서의 감정은 유예되고 억압된다. 영주는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고 살아왔으며, 종소는 말 없이 고통을 지켜본다. 이들의 감정은 감정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지 않지만, 독자의 감각 안에서 파동처럼 울린다.

빛과 멜로디는 감정을 눈물이나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살마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장면, 나스차를 사진에 담는 장면은 모두 말 없는 감정의 교류다. 메를로-퐁티가 말한 몸의 감각으로 서로를 감지하는방식이 여기에 있다. 감정은 감각 이전의 리듬으로, 존재의 층위로 드러난다.

반의반의 반에서 윤미의 감정은 원망과 책임, 사랑과 무력감이 동시에 얽혀 있다. “그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죄책감이 아니라, 감정의 복잡성과 타자성과 직면한 한 인간의 정직한 고백이다. 이처럼 감정은 말해지지 않음 속에서 더욱 진실하게 다가온다.

 

3. 타자성과 윤리의 재구성

이응 이응은 기계와의 관계를 통해 오히려 인간적인 결핍을 드러낸다. 주인공은 기계가 결코 타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감정이란 타자의 응시 속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층위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들에서 종소는 영주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존재 자체로 관계를 만들어낸다. 영주는 종소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게 되고, 그의 존재는 하나의 거울이자 침묵의 증언자로 기능한다.

빛과 멜로디의 권은은 살마와 나스차를 구조하거나 구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곁에 조용히 머물며,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는 관계를 만든다. 조해진의 문학은 완전한 이해대신 함께 있음의 가능성을 말한다.

반의반의 반에서 영실은 혈연이 아니라, 낯선 타자인 수경에게 정서적으로 연결된다. 이는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얼굴 앞에서의 윤리에 해당한다.

 

4. 기억, 파편, 서사의 윤리화

이응 이응에서 주인공의 감정은 잃어버린 화살처럼, 과거의 기억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작품은 감정의 회복을 과거의 같은 방향으로 다시 쏘는행위로 비유하며, 감정과 기억이 서사의 윤리적 방향을 결정함을 드러낸다.

그들에서 기억은 인물 간의 거리로 드러난다. 상현의 폭력은 과거의 기억과 단절된 현재의 산물이며, 최 교수는 말로서 기억을 관리하려 하지만, 진정한 감정적 책임은 유예된다. 기억은 관계를 윤리화하는 장치이자, 감정의 증거로 기능한다.

빛과 멜로디는 살아남은 자가 망자를 기억함으로써 세계를 재구성하는 서사다. 태엽이 멈추었을 때 세계가 정지한다면, 다시 태엽을 감는 행위는 곧 세계를 회복하려는 윤리적 행위다. 권은이 카메라를 통해 타인의 삶을 기록하는 장면은 바로 그 기억과 윤리의 접점이다.

반의반의 반의 영실은 인지 저하 속에서도 유년기의 감각과 손길을 기억의 파편으로 떠올린다. 기억은 선형적 회상이 아니라, 현재의 감각으로 재구성된 잔상이다. 이는 벤야민이 말한 기억의 파편성과 감각의 재조립이라는 개념과 맞닿는다.

 

5. 미학의 변화: 과잉보다 비워냄의 방식

이응 이응은 상징과 은유로 감정을 우회한다. 오미자물, 비옷, 속옷을 입는 사람들, 화살 등은 모두 감정의 상태를 드러내는 기호이며, 감정을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그 복잡성과 여운을 확장시킨다. 이처럼 감정의 서사는 점점 더 비워냄의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들은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관계의 긴장과 균열을 보여준다. 종소는 말이 없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그의 자리에 머무는 행위는 아감벤이 말한 작동 중지의 윤리와 겹쳐진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증언한다.

빛과 멜로디는 여백과 리듬의 문학이다.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의미가 파동처럼 전해지며, “삶이 바로 이곳에 있다는 말을 대신하며라는 표현은 말보다 깊은 위로로 다가온다.

반의반의 반은 감정을 직접 서술하지 않고, 짧은 대사와 묘사로 정서를 환기시킨다. “수경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야라는 영실의 말은, 수경에 대한 신뢰 이상으로, 가족과 단절된 외로움의 고백이다.

 

이와 같이 현대 한국문학은 감정을 단지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결을 더듬고 감내하는 방식으로 구성하며, 관계의 실패와 거리, 침묵과 응시 속에서도 타자와 함께 존재하는 윤리를 묻고 있다. 말하지 않음은 회피가 아니라 책임이고,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윤리적 감응이다. 이 네 작품이 보여주는 침묵, 윤리, 타자, 감정의 층위는 오늘날 한국문학이 새로운 문학적 감각과 철학적 깊이를 확장해 나가는 방향을 예고한다. 이 작품들을 읽고 나서, 나는 내 안의 태엽 하나가 다시 감기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그것은 글쓰기를 통해, 말하지 못한 감정을 감각하는 방식으로, 내가 아직도 관계를 꿈꾸고 있음을 조용히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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