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단편 소설 「목 놓아 우네」를 읽고
<감정의 경계에서, 말 없는 연결을 상상하며>
단편 소설 「목 놓아 우네」는 소설가 정미경의 유고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2018, 창비)에 수록된 단편소설로, 정미경 특유의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현대인의 인간관계와 상실, 회복의 과정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소설은 눈에 띄지 않는 감정의 움직임을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희미한 불빛으로 더듬듯 따라가는 이야기다. 작가는 특유의 절제된 문장과 감정의 결을 따라, 현대 사회 속에서 점점 더 관계에 서툴러지고 고립되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특히 ‘심’이라는 동일한 성을 가진 남녀 인물이 잘못 전송된 문자 하나로 얽히는 설정은 낯설지만 기이하게 정직한 감정 교류의 가능성과 그 불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남자 심은 존재를 드러내는 것 자체에 불편함을 느낀다. 변기 뚜껑에 등을 기대며 “누군가 단란한 손으로 받쳐주는 듯한 느낌”을 좋아하고, 옷을 살 때도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매장에서 첫 번째 옷을 고르듯, 관계에서도 최소한의 노출만을 감내한다. 프레젠테이션처럼 익숙한 역할 속에서는 능숙하지만, ‘문’이라는 동료와 백화점에서 경험한 사적인 만남은 그에게 있어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복의 사건이었다. 문이 떠난 이후 그는 다시 깊고 컴컴한 우물 속으로 되돌아가고, 그 우물은 어쩌면 원래부터 그의 내면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 심 역시 6살에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 속에서 자라났고, 10년 넘은 트럭을 운전하며 살아간다. 트럭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직업적 배경이 아니라, ‘지상에서 일 미터쯤 떠 있는’ 은신처이며, 떠도는 삶의 은유다. 그녀는 “도로에 차가 너무 없어도 심야 운전은 힘들다. 저만치 앞에서 유도하듯 달리는 차, 멀찌감치 따라오는 불빛이 보여야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한다. 그 불빛은 인간관계의 은유로,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이상적인 거리에서만 간신히 유지되는 유대의 상징처럼 읽힌다.
이러한 인물들이 문자라는 비물질적 매개를 통해 서로의 내면 깊은 곳에 닿는 서사는, 현대 사회의 비물리적 관계 맺기 방식을 성찰하게 만든다. 여자 심은 간호사가 아님에도 간호사라고 소개하고, 남자 심은 그런 그녀에게 상상의 풍경을 투사하며, “그녀와 함께라면 아침 풍경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상상 속에서 명상의 상태처럼 온몸을 이완시킨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상상계에만 존재하는 잠정적 따뜻함이다. 현실은 그들을 끝내 스팸함 속으로 밀어넣는다.
남자 심은 여자 심의 문자 “길 위에 떠도는 동안만은 내가 사는 방식이 이상하다는 걸 잊게 돼요”를 받은 순간, 그녀가 간호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과 함께 그녀를 스팸 처리한다. 이는 소통의 파열이자 관계의 종말처럼 보이지만, 소설은 이 지점을 통해 오히려 감정의 잔향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여자 심은 며칠째 연락 없는 남자 심을 기다리며, “길어지는 침묵이 짐작보다 훨씬 아프다”고 느낀다. 말하지 못한 것들, 말해버릴 수 없었던 것들 사이에서 그녀는 깨닫는다. “진짜 자신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바로 그 순간,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남자 심의 상상이 떠오른다. 그는 고양이를 상자에 넣고, 그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채 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 은유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 즉 확정되는 순간 깨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맞닿아 있다. 살아 있음과 죽음 사이, 희망과 절망 사이, 그 모호한 상태에서조차 가능성을 놓고 싶지 않은 인간의 마음. “상자 속에 고양이와 독약을 넣어두되, 언제까지나 상자를 열어보지 않는 것”은 곧 감정의 중단이 아닌 유예이며, 결정 대신 머무름을 택하는 심리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작품이 함축하는 감정과 관계의 역학을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 먼저, 남자 심과 여자 심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윤리적 진동을 발생시킨다. 이는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얼굴이 요구하는 말 이전의 책임”과도 닮아 있다. 실제로 존재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향한 책임감, 관심, 두려움을 동시에 경험한다. 이처럼 정미경의 인물들은 현실적으로 단절되어 있으면서도, 말 이전의 감응 안에서 타자와의 윤리적 접촉을 이루어내고 있는 셈이다.
또한, 여자 심이 ‘트럭’을 자신의 삶의 공간으로 선택한 이유는 단지 직업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몸의 감각을 통해 외부 세계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의 말처럼, 감정은 말보다 먼저, 몸을 통해 세계와 관계 맺는다. 그녀가 말한 “앞에서 달리는 차, 뒤따라오는 불빛”은 바로 그 거리감 속에서 간신히 유지되는 관계의 비유이며, 그 거리 속에서만 감정은 안전하게 흐를 수 있다.
정미경의 인물들은 바슐라르가 말한 은신처로서의 방을 각각의 방식으로 품고 있다. 여자 심의 트럭, 남자 심의 화장실, 두 사람 사이의 문자라는 비물질적 공간 모두가 “자신을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필요한 내면의 방”이다. 그러나 그 방을 나서는 순간, 현실은 언제나 그들의 감정을 상자 밖으로 밀어낸다.
작가는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태어나는 소통의 욕망과 동시에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의 취약성을 절묘하게 병치시킨다. 그 취약성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할 감정의 조건으로 제시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차라리 위로보다 더 정직한 방식으로 독자를 마주한다. “그들은 그렇게 목 놓아 울고도, 다음날이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살아갈 것이다”라는 냉정한 예측조차도, 그 자체로 어떤 슬픈 자비처럼 느껴진다.
결국 이 작품은 관계의 실패를 말하면서도, 그 관계 안에서 일어난 진심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제로 만나지 않았지만, 문자 너머에서 서로를 깊이 꿰뚫었고, 감정은 이미지로 소비되지 않고 진동했다. 여자는 트럭이라는 고립된 세계 안에서 남자를 상상하고, 그는 그녀를 상자 속 고양이처럼 떠올린다. 이들은 서로의 진실에 다다르려 했으나, 끝내는 닫힌 문 밖에서 머무는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그 손길은, 목 놓아 우는 울음보다 더 길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그 여운은, 침묵과 거리, 오해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 단편을 다 읽고 나서,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도 닿지 못한 말, 보내지 못한 문자 하나를 내 안에 오래도록 붙들고 있었던 기억, 그 기억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음 때문에, 목 놓아 울 수 없기에 더 길게 남는 울음처럼, 이 이야기의 침묵과 멈춤은 내 안의 오래된 외로움과 아주 조용히 마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닿을 수 없기에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기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고통을 안은 채 살아가야 하는 나의 운명에 대해, 나는 잠시 생각을 멈춘 채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마치 상자 속에 담긴 가능성과 고요를 안고 살아가는 또 하나의 고양이처럼, 말해지지 않은 마음 하나를 오늘도 조용히 껴안으며.(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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