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응시와 뜨거운 고백 사이: 박찬욱과 페드로 알모도바르>
내가 처음 페드로 알모도바르를 알게 된 것은 영화 『나쁜 교육(Bad Education, 2004)』이었다. 가장 먼저 마음을 끌었던 것은 고발적 성격을 띤 서사였다. 이 영화는 알모도바르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자전적이고 대담한 서사를 담고 있다. 영화는 영화감독 엔리케가 유년 시절 첫사랑이자 카톨릭 학교 시절 친구였던 이그나시오와 재회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로 곧 단순한 향수를 넘어서, 권력과 욕망, 기억과 허구가 얽힌 미궁 속으로 관객을 이끈다. 영화는 극 중 극, 그 속의 또 다른 이야기라는 복잡한 서사 구조로 짜여져 있으며, 억압된 진실과 상처가 창작이라는 형태로 복기된다.
『나쁜 교육』은 장르적으로 누아르, 멜로드라마, 심리극, 메타픽션이 교차하는 혼종적 구성을 지닌다. 트랜스젠더, 드랙퀸(일반적으로 남성이 과장된 여성성을 표현하기 위해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을 활용하여 공연하는 예술가), 여장 남성 인물들은 젠더의 경계를 전복하며 존재와 욕망의 균열을 드러낸다. 시각적으로는 강렬한 원색 대비가 심리적 불안을 표현하며, 1950~60년대 발라드와 클래식 곡은 멜랑콜리하고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영화는 단순한 사회 고발에 머물지 않고, 기억의 왜곡, 예술의 책임, 사랑의 파괴성에 대한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탐구로 이어진다.
그 후 알게 된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Todo sobre mi madre, 1999)』을 통해 나는 알모도바르에 대한 애정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그의 감정, 미학, 정체성, 윤리 인식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난 영화로 평가받는다. 고전 영화 『이브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은 제목처럼, 이 작품은 연극과 삶, 현실과 허구, 여성성과 모성을 교차시킨다. 주인공 마누엘라는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과거와 마주하며, 다양한 여성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간다. 트랜스젠더, 수녀, 여배우 등 다양한 여성들은 모성의 확장된 정의를 통해 연대하며, 고정된 역할이 아닌 선택과 감정으로서의 모성을 보여준다.
『그녀에게(Hable con ella, 2002)』는 알모도바르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철학적이며 윤리적인 사유가 깊이 있는 작품이다. 말이 닿지 않는 상태에서의 소통, 타인에 대한 돌봄과 침해의 경계, 침묵과 고백의 미학을 탐구한다. 특히 음악과 무용, 무성영화 같은 예술적 요소들이 침묵 속에서 감정을 증폭시키며 관객을 감정의 공모자로 만든다.
『귀향(Volver, 2006)』은 알모도바르가 구축한 여성 공동체의 감정 구조를 가장 따뜻하고 서정적으로 그린 영화다. 죽음과 상실, 모성의 귀환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플라멩코 음악과 고향의 일상적 풍경, 색채의 질감 등을 통해 정서적 풍요로움을 완성시킨다.
이처럼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감정과 욕망, 여성성과 젠더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뜨거운 색채와 밀착된 시선으로 서사를 이끌어간다. 나는 그를 통해 감정이 어떻게 미장센이 되고, 욕망이 어떻게 윤리로 변환되는지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학기 영상 문학 수업 중 박찬욱 감독에 대한 작가론을 접하면서, 나의 애정하는 감독 알모도바르가 문득 스쳐갔다. 박찬욱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폭력과 복수, 죄의식과 금기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그의 영화는 감정의 절제와 윤리적 긴장, 구조적 억압을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스타일의 정교함과 철학적 깊이를 동시에 갖춘 감독임을 수업에서 배웠다.
영화 속 박찬욱의 인물들은 선악의 경계에서 방황하며, 레비나스적 타자성의 윤리를 떠올리게 한다. 시간과 기억의 구조는 플롯을 비틀고, 젠더와 욕망, 종교적 상징까지 서사 속에 밀도 있게 녹아든다. 『스토커』, 『헤어질 결심』, 『아가씨』 등은 감정과 미학, 윤리의 삼각지대에서 끊임없이 긴장을 조성한다. 그의 미장센은 차가운 아름다움과 시선의 거리감 속에서 인간의 고통을 재현한다며, 한국의 대표적인 감독인 봉준호가 사회구조를 탐구하는 측면에서 자신의 예술성을 드러낸다면, 박찬욱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에 두고, 인간 존재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응시하며 자신만의 미학을 구축하며, 폭력과 복수, 죄의식과 금기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는 고수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소름이 확 돋았다. 어쩌면 내가 알던 박찬욱 영화에 대한 관점을 이렇게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박찬욱 연구의 대가 교수님을 다시 한 번 우러르게 되었으며, 수업을 들으며 문득, 나의 욕망은 무지에서 비롯된 용기와 호기심이라는 외피를 입고, 쓸모없어 보이지만 어쩌면 누군가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도 모를 다음 문장들을 결국 써내려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다. 복수 3부작인 『복수는 나의 것』도 아직이고, 그의 대표작으로 자주 거론되는 『아가씨』나 『박쥐』 같은 영화도 아직 보지 못했다. 특히 『복수는 나의 것』을 관람하고자 하는 욕망은 분명히 있으나, 감히 들여다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아직 그 영화가 직면시키는 감정의 깊이, 인간의 잔혹성과 고통의 세계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박찬욱의 영화는 단순한 스릴이나 자극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응시하게 만든다. 그 어둠을 응시하는 일이 때로는 너무 진실해서, 혹은 너무 가까워서, 마음의 안전지대를 위협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서 나는 그의 영화를 아직은 서가에 꽂아둔 채, 언젠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감히 알모도바르와 박찬욱을 비교해 보게 되었다. 먼저 색채의 사용에서 박찬욱은 억제된 정념과 구조적 억압을 시각화하는 반면, 알모도바르는 색 자체를 욕망과 감정의 폭발로 활용한다. 박찬욱의 공간은 감금, 통제, 억압의 장이지만, 알모도바르의 공간은 감정과 해방의 장소로 기능한다. 박찬욱의 카메라는 거리두기를 통해 인물을 분석하지만, 알모도바르는 감정에 밀착된 시선으로 관객을 공모자로 만든다. 육체성에 있어서도 박찬욱은 육체를 윤리적 질문의 장으로 삼는 반면, 알모도바르는 육체를 해방과 치유의 공간으로 재현한다.
두 감독의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박찬욱의 음악은 종종 정적이고 통제된 분위기 속에서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며, 서사의 전환점에서 감정을 날카롭게 분출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조영욱 음악감독과의 협업은 그의 영화에 독특한 음향의 리듬을 부여하며, 특히 『올드보이』의 비올라 선율, 『헤어질 결심』의 클래시컬한 감성은 긴장과 멜랑콜리를 동시에 자아낸다. 음악은 종종 서사의 외피를 벗기고, 인물의 내면에 잠식된 죄의식과 고통을 부각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반면 알모도바르의 음악은 훨씬 감각적이고 정서적이다. 그는 스페인의 전통 음악에서 플라멩코, 탱고, 라틴 발라드까지 다양한 장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감정의 진폭을 음악 자체로 구성해낸다. 특히 『그녀에게』의 카에타노 벨로소의 라이브 공연 장면이나, 『귀향』의 플라멩코 노래는 음악이 단지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정서적 중심축임을 보여준다. 알모도바르의 음악은 인물들의 고백, 사랑, 상실, 연민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서사보다 먼저 감정의 결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그의 영화를 애정하지 않을 수 없는 강한 측면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웃는다.
이처럼 박찬욱의 음악이 구조와 긴장의 한 축을 맡아 냉정한 미학을 완성한다면, 알모도바르의 음악은 감정과 기억, 정체성을 엮는 뜨거운 선율로 영화 전체를 감싸 안는다. 음악 역시 두 감독의 미학처럼, 거리두기와 밀착이라는 대조적 전략 안에서 각자의 영화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감정과 존재를 해방하는 뜨거운 서정가로 나뉜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철학 속에서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 인간을 해부하고, 응시하며, 구원하려 한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나 같은 무지한 관객조차도, 그들의 시선과 색채, 침묵과 고백을 통해 인간이라는 미스터리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이러한 음악적 차이는 결국 두 감독의 전체적인 미장센 전략과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박찬욱의 미장센은 차갑고 정교하며 구조화된 아름다움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대칭 구도, 제한된 공간, 절제된 색채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압축하고, 감정의 균열을 시각적으로 포착한다. 그의 카메라는 시선을 통제하고 거리감을 조율하며, 관객에게 윤리적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폭력이나 고통조차도 미적으로 재현되며, 그 안에 담긴 철학적 함의는 더욱 날카롭게 각인된다.
반면 알모도바르의 미장센은 풍부한 감정과 색채, 인물의 정서적 경험에 밀착된 구성을 보여준다. 그는 공간을 감정의 연장선으로, 색채를 욕망의 언어로 사용하며, 카메라 역시 인물의 호흡과 감정에 맞춰 움직인다. 화려한 패턴, 생활감 넘치는 배경, 붉은색을 중심으로 한 원색의 조화는 그의 영화가 언제나 삶과 감정, 고백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방식임을 드러낸다.
박찬욱이 정적인 구조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해부하는 냉철한 외과의라면, 알모도바르는 감정의 홍수 속에서 고통마저도 아름답게 끌어안는 서정적 화가에 가깝다. 이처럼 두 감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미장센을 통해 인간을 말하고, 그 말들이 화면을 넘어 관객의 심장에 닿도록 만든다.
알모도바르의 음악은 감정과 기억, 정체성을 엮는 뜨거운 선율로 영화 전체를 감싸 안는다. 음악 역시 두 감독의 미학처럼, 거리두기와 밀착이라는 대조적 전략 안에서 각자의 영화를 이끌고 있는 셈이다. 감정과 존재를 해방하는 뜨거운 서정가로 나뉜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철학 속에서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 인간을 해부하고, 응시하며, 구원하려 한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나 같은 무지한 관객조차도, 그들의 시선과 색채, 침묵과 고백을 통해 인간이라는 미스터리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이 글을 마치며 나는 그동안 박찬욱의 몇몇 영화들을 감히 들여다보지 못한 나의 비겁함에 낮이 뜨거워졌고, 내 안 깊숙이 숨어 있던 약함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쩌면 인간성에 대한 환상을 붙잡고서야 이 험한 세상을 견딜 수 있었기에, 나는 인간성의 잔혹한 진실을 외면하며 살아온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회피하지 않으려 한다. 이번 중간고사가 끝나면, 그의 세계를 깊이 있게 마주할 준비를 차근히 해보겠다. 두려움 너머, 인간의 심연을 응시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랬을 때야말로, 비로소 내 안에서도 삶의 균형을 조율할 수 있는 힘이 조금씩 생겨나리라는 희미한 기대를 품으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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