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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김경욱 『거미의 계략』을 읽고서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4. 14.

 

 

 

 

김경욱 거미의 계략

거미의 그물, 혹은 진실의 실체를 중심으로 한 문학·철학·영화적 사유

 

 

김경욱의 단편 소설 거미의 계략2003년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발표된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라는 단편집에 실린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로 시작된다.

형사는 그의 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 사내의 주검을 처음 마주했을 때, 이 죽음이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잉크가 마르기 직전의 원고지 몇 장, 그 곁에 흩어진 고지서와 절연된 전화기, 그리고 벽 한켠에 말라붙은 거미 한 마리. 그것들이 말 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김주은. 이름만 보면 여성일 것 같지만, 그는 남자였고, 소설가였다. 그는 문장으로 그물을 짜며 삶과 세계를 붙잡고자 했지만, 그 끝은 오히려 침묵과 고립이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인물들은 제각기 다른 진술을 남긴다. 오래전의 연인은 그가 상처를 너무 잘 믿었다고 말하고, 현재의 약혼자는 그가 조용히 무너져갔다고 한다. 친구는 그가 점점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이 모든 말들은 김주은이라는 사람의 실체를 밝히기보다, 오히려 진실을 흐리고 있다. 진실은 중심을 갖지 못한 채 말들의 그물에 걸려 미끄러진다.

이 서사는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과 시드니 루멧의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과도 깊이 공명한다. 라쇼몽에서 한 명의 무사가 죽은 사건을 세 명의 등장인물인 강도, 아내, 그리고 죽은 자의 영혼의 상반된 진술로 듣게 된다. 누구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서로 다른 욕망과 시선, 죄책감과 자기기만이 뒤엉켜 진실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구조는 자크 데리다가 말한 의미의 지연(différance)’ 개념과 겹쳐진다. 의미는 결코 하나로 고정되지 않으며, 각자의 욕망과 기억, 기만에 따라 흔들리고 멀어진다. 김경욱의 소설 역시 단일한 진실을 드러내지 않고, 말과 말 사이의 틈, 그 불확실한 흔들림 속에 독자를 세운다.

반면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판단과 해석, 믿음과 권력의 역학에 집중한다. 배심원들은 같은 증거를 보면서도 각자의 신념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리고, 한 사람의 의심은 그들 모두를 스스로의 편견과 마주하게 만든다. 푸코가 말했듯, 진실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 속에서 구성되는 담론이다. 거미의 계략에서 김주은의 죽음을 둘러싼 말들 또한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말하는 자의 위치와 권위에 따라 형성된 권력적 진실들이다.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대서사의 붕괴를 말한다. 더 이상 세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진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수많은 파편적인 이야기들이 서로 충돌하고 병치되는 세계가 펼쳐진다. 거미의 계략의 세계가 바로 그렇다. 중심은 사라지고, 말들은 흩어진다. 독자는 그 조각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거미의 계략은 단순히 진실을 묻는 소설이 아니다.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욕망 자체를 반추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진실이 사라진 자리를 우리는 말로 채우고, 기억으로 덮으며, 판단으로 봉인한다. 그러한 인간의 행위 자체가 거미의 그물처럼 집요하고 교묘하게 엮여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조용히 보여준다.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거미라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러나 소설은 거미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독자가 마주하는 것은 거미줄뿐이다. 김주은의 방 한켠, 벽에 말라붙어 있는 거미 한 마리.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그것은, 이제 중심 없는 그물의 잔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그 은유가 단순한 죽은 곤충의 이미지가 아니라, 이 소설 전체의 존재론과 윤리, 구조와 상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점차 알아차리게 되었다.

또한 나는 거미의 상징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미는 단지 한 가지 층위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이 작품에서 심리적, 사회적, 문학적 층위를 가로지르며 작동하는 입체적 은유다. 김주은은 원고지 위에, 삶과 언어 사이의 균열을 메우기 위해 문장을 짜내는 존재다. 마치 거미가 자신의 몸에서 실을 뽑아내어 세상을 구조화하듯이. 그는 창작을 통해 존재의 고립과 상처를 직면하지만, 그 작업은 결국 그를 더 깊은 고립으로 이끈다. 그의 글쓰기는 외부와 자신을 연결하는 통로가 아니라,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은신처였고, 결국 그물에 스스로를 감아버린 꼴이 되었다. 그는 쓰는 자였지만, 동시에 쓰인 자였고, 자신이 짠 그물의 먹잇감이 되었다. 김주은의 죽음을 둘러싼 인물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그를 해석한다. 말은 증언이자 해석이며, 각자의 시선에서 '진실'을 구성한다. 그러나 그 말들은 곧 서로 충돌하며, 누구의 해석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어떤 증언이 더 믿을 만한지를 가르는 권력의 장으로 전환된다. 형사는 이 파편화된 증언들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는 시체보다 시체를 둘러싼 말들을 마주하는 존재다. 말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거미줄처럼 그의 시선을 조율하고, 판단을 유도하고, 해석을 덮는다. 결국 이 모든 구조는 텍스트 자체의 구조와도 닮아 있다. 거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물만 남아 있다. 이야기는 있지만, 결말은 없다. 죽음은 있지만, 원인은 없다. 증언은 있지만, 진실은 없다. 중심이 사라진 채 남겨진 구조, 그것이야말로 김경욱이 설계한 이야기의 본질이다. 작가의 죽음은 하나의 텍스트를 남기고, 그 텍스트는 독자의 해석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그 해석은 진실에 도달하는 길이 아니라, 미끄러지고 겹쳐지고 흔들리는 의미의 길일 뿐이다.

이 모든 층위를 따라 거미라는 상징은 단순히 불길하거나 기이한 형상이 아니라, 읽기와 쓰기, 해석과 권력, 존재와 부재를 둘러싼 하나의 철학적 장치로 작동한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오히려 거미가 아니라, 그물에 걸린 존재는 독자라는 생각을 했다.

이것은 단지 해석의 방향에 대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말할 때, 이해한다고 할 때, 내가 누군가의 내면에 도달했다고 믿을 때, 그 모든 행위가 실은 그를 내 해석의 그물에 얽어매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불안에서 비롯된 말이다. 해석이 곧 권력이라는 사실. 그 권력 앞에서, 나는 흔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거미줄 위에 잠시 멈춰 선다. 나는 여전히 조심스레 묻고 있다. 누군가의 삶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그 순간, 나는 과연 진심으로 그의 내면에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로 그를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석이란 이름으로 누군가를 감싸는 그 행위가, 사실은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가리기 위한 그물이었음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때로는 내 판단이 너무 쉽게 말로 굳어졌고, 어떤 장면에서는 그 인물의 고통이 나의 해석 안에서 너무 빠르게 정리되어버렸다. 김주은이라는 인물을 말하고자 하는 욕망,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결국은 그를 내 언어의 세계 안에 가두려는 욕망. 나는 그 욕망을 알아차린 순간, 내가 해석자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쉽게 타인을 덮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마주했다.

그렇다고 나는 침묵 속으로만 물러설 수 없다. 나는 말하는 존재이며, 읽는 존재이며, 결국은 끊임없이 관계를 시도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흔들리는 그물 위에 멈춰 서되, 무언가를 바라보고, 들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이해가 아닌 이해하려는 태도, 해석이 아닌 응시의 지속. 그 긴장 속에서 문학은 존재한다. 말과 해석의 흔들림 속에서도, 나는 윤리를 놓지 않으려 한다. 그 윤리를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문학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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