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바람이 불었다. 은파호수공원에 만개한 벚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졌고, 꽃마중을 나온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모처럼의 봄나들이였을 텐데, 바람은 사정없이 불었고, 꽃은 그렇게 망설임도 없이 흩어졌다. 우산을 쓰고 떨어지는 벚꽃잎 아래를 혼자 걸었다. 떨어진 여린 꽃잎들을 밟으려니 자꾸 머뭇거려졌다. 미안하다, 마음으로 말하며 벚꽃 가지를 한참이나 올려다 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만남은, 만나자마자 이별을 준비하는구나. 어떤 애틋함이랄까.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에서, 벚꽃보다 바닥에 먼저 떨어진 꽃잎들에 눈이 갔다. 누군가 밟고 간 자국 위에도, 고요하게 겹겹이 깔린 꽃잎들. 바람이 이렇게 부니, 떨어진 꽃잎들은 곧 어딘가로 쓸려 사라지겠지. 비바람이 얄궂기도 하고, 봄이란 계절도 이렇게 예쁘게 피워놓은 꽃들을 또 가장 예쁜 모습일 때 사정없이 데려가는구나. 마치 내 사랑이 막 피어나고 있었을 때, 가버린 연인같이.
그래서였을까. 바람은 꽃잎보다 먼저 내 마음을 쓸고 지나갔고, 그 기억의 회로는 바람 부는 봄이면 어김없이 다시 열리는 것 같았다. 지난 봄에도, 현재의 봄에도, 아마도 미래의 어느 봄까지.
돌아오는 길, 옷깃 안으로 스며든 차가운 바람과 꽃향기가 코 끝에 스쳤다. 이건 봄인가, 혹은 겨울이 남긴 마지막 잔상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이 순간 내가 이걸 기억하고 있다는 거니까. 꽃은 졌고, 사람들은 떠났고, 바람은 아직 남아 있었다.
어쩌면 봄이라는 계절은, 다 지나간 자리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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