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40] <자본의 무덤을 파는 신자유주의: 맑스가 본 오늘의 세계>
[원 문장] 『처음 읽는 독일 현대 철학』 중 노동의 존재론과 칼 맑스의 혁명 사상, 조정환 씀
“1847년 엥겔스와 함께 조직의 강령인 《공산주의당선언》을 작성하여 1848년 혁명에 참여할 수 있는 조직적 준비와 지적 준비를 모두 갖췄습니다.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 문헌에서 맑스는 ‘모든 사람은 형제다’라는 ‘의인동맹’의 보편적이고 종교적인 성격의 구호를 ‘전 세계 노동자들은 단결하라!’라는 계급적이고 주체적인 성격의 구호로 전환시킵니다.”
나의 문장)
1847년은 맑스가 그의 정치적·이론적 입지를 본격적으로 확립하던 시기이며,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작성하여 혁명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한 해이다. 이 시기의 맑스를 이해하려면 1840년대 중반부터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43년 맑스는 독일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망명하면서 청년 헤겔주의와 결별하고 점차 역사유물론적 입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1844년 파리에서 엥겔스를 만나면서 그의 사상은 더욱 구체화되었으며, 『경제학 철학 초고』(1844)와 『독일 이데올로기』(1845)를 통해 노동과 생산 관계가 인간 존재와 사회의 근본 구조를 형성한다는 입장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의 탄압으로 1845년 브뤼셀로 이주한 맑스는 보다 조직적인 정치 활동을 전개하며, 혁명적 실천과 이론의 결합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의인동맹’(League of the Just)이라는 노동자 조직과 접촉하게 되었는데, 이 단체는 원래 기독교적 이상주의와 박애주의적 성격을 가진 단체로, ‘모든 사람은 형제다’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맑스와 엥겔스는 이 조직을 계급투쟁의 원칙을 기반으로 한 ‘공산주의자동맹’(Communist League)으로 개편하며, 계급적이고 실천적인 혁명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과정에서 ‘모든 사람은 형제다’라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구호를 폐기하고, 보다 계급적이며 실천적인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를 내세우게 되었다.
1847년 6월과 11월, 런던에서 열린 공산주의자동맹 대회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당의 강령을 작성할 것을 요청받았고, 그 결과 1848년 2월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었다. 이 선언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구조를 분석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맑스주의의 기초적인 문헌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듬해인 1848년, 프랑스에서 2월 혁명이 발발하며 유럽 전역으로 혁명의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맑스는 이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쾰른으로 돌아가 『신라인신문』을 발간하며 혁명 운동을 주도했지만, 1849년 혁명이 실패하면서 다시 망명길에 올라 영국 런던에 정착하게 되었다.
1847년은 맑스가 본격적으로 정치 조직을 개편하고 혁명 이론을 정리하며 실천적 활동에 나서는 전환점이 된 해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공산당 선언』은 단순한 선언문이 아니라, 맑스주의가 이론에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 것이다.
1847년을 전후한 시기의 맑스의 사상은 단순한 이론적 정식화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실천적 투쟁과 결합된 혁명적 사고를 담고 있다. 이 시기의 그의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노동, 계급, 자본주의, 혁명의 문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유산을 남겼다.
첫째, 계급투쟁의 필연성과 역사 발전의 논리를 확립했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선언하면서, 사회 변혁의 동력이 철학적 사유나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생산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계급 간의 대립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개념은 이후 역사적 유물론과 정치적 경제학 분석의 토대가 되었으며, 현대에도 사회적 불평등과 구조적 모순을 분석하는 중요한 틀이 되고 있다.
둘째, 노동의 존재론적 의미를 부각시켰다. 맑스는 인간이 단순한 사유적 존재가 아니라, 노동을 통해 자기 존재를 형성하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존재임을 강조했다. 이는 경제적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사회적 실천을 이해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시각을 제공했다. 오늘날에도 노동과 기술 변화, 자동화와 실업의 문제,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맑스의 사상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셋째,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분석하고 비판했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모순 때문에 위기를 불러일으키며, 생산력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불평등과 착취가 심화된다고 보았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주기적인 경제 위기, 금융 자본의 팽창, 노동 착취의 문제 등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유의 틀을 제공한다. 맑스가 예측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지만 동시에 심각한 위기와 모순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맑스의 경제학적 분석은 여전히 유효한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넷째, 혁명의 필연성과 주체의 형성을 강조했다. 맑스는 혁명이 단순한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스스로를 역사적 주체로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도래한다고 보았다. 이 점에서 그의 사상은 단순한 계급 분석을 넘어, 억압받는 자들이 어떻게 주체로 형성되며,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19세기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20세기 이후 반식민주의 투쟁, 민권운동, 여성해방운동 등 다양한 해방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윗 글을 정리하며, 나는 만일 현재까지 맑스가 살아있다면, 현재의 신자유주의 물결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궁금해, 나의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도시의 골목. 오래된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흔들린다. 바닥에 흩어진 신문지들이 바람에 날린다. 나는 골목 끝에 서 있는 한 사내를 본다. 검은 외투를 걸친 그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다. 연기가 피어오른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간다.)
나: 당신이… 칼 맑스인가?
맑스: (담배 연기를 뿜으며) 그럼 누굴 기대한 건가? 금융자본가들이 운영하는 월스트리트의 CEO라도 기다렸나?
나: (한숨을 쉬며) 아니, 다만… 2025년까지 살아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지.
맑스: 흠. (비웃으며) 네가 착각한 거지. 자본이 무덤을 파고 있는 시대라면, 내 목소리도 어딘가에서 들릴 수밖에 없어. 말해 봐. 날 불러낸 이유가 뭐지?
나: 신자유주의. 지금 이 세계는 당신이 보던 19세기의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강고한 구조를 가졌어. 자본은 금융 시스템과 결탁했고, 국가는 시장의 시녀가 되었고, 사람들은 소비에 중독됐어. 당신이라면 이 현실을 어떻게 볼 것 같아?
맑스: (쓴웃음을 지으며) 예상했던 바다. 자본주의는 언젠가 자기 파멸에 이르게 된다고 했잖나. 신자유주의란 결국 자본이 자신의 무덤을 더 깊이 파는 행위에 불과해. 경쟁을 절대화하고, 모든 인간 관계를 돈으로 환원하는 이 체제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지.
나: 하지만 붕괴하지 않았어. 오히려 더 강해졌고, 노동은 해체되었으며, 저항은 희미해졌어.
맑스: 노동이 해체됐다고? 아니, 착취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야. 자본은 언제나 노동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어. 다만 공장 안의 노동자가 아니라, 플랫폼 속의 노동자로 변했을 뿐이지. 배달원, 콜센터 직원, 프리랜서, 인플루언서…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노동하고 있지만, 결국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는 존재야. 네가 보기에 신자유주의가 마치 무적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이 시스템 속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증거야.
나: 하지만 저항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사람들은 체념했고, 불평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맑스: (천천히 담배를 비벼 끄며) 그건 네가 아직 역사의 흐름을 좁게 보고 있기 때문이야. 변혁은 갑작스레 오는 것이 아니야. 계급의식이 사라진 게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쌓이고 있을 뿐이지.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어. 경제적 불평등, 자동화로 인한 노동의 위기, 부채로 유지되는 금융 경제, 환경 파괴… 이 모든 것이 언젠가 폭발할 거야. 그때, 사람들은 다시 묻겠지.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나: 결국 혁명이 온다고 믿는 건가?
맑스: 혁명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야. 조건이 성숙하면 올 수밖에 없는 것이지. 다만,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지금의 우리가 단정할 수 없는 거야. 네가 나를 소환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답해 봐. 네가 바라는 것은 뭔가?
(나는 한동안 말없이 골목 끝을 바라본다. 저 멀리 거대한 광고판이 보인다. ‘당신의 꿈을 이루세요!’, ‘투자하면 자유가 옵니다!’ 같은 문구가 빛난다. 하지만 그 아래, 거리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는 노숙자들이 웅크려 있다. 나는 맑스를 다시 바라본다.)
나: 난… 이 세계를 이해하고 싶었어.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을 것 같아.
맑스: (미소를 지으며) 좋아. 그럼, 우리 어디부터 시작해 볼까?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불빛이 흔들리는 도시의 골목에서, 한 시대의 유령과 함께.)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인다. 네온사인이 뿜어내는 인공적인 색채가 공기 중에 섞인다.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낡은 전단지를 흩날린다. 나는 맑스의 마지막 말을 곱씹는다. "우리 어디부터 시작해 볼까?" 그의 목소리는 낮지만 확고했다. 그리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쩌면 나는 이미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세상은 거대한 속도로 움직이고, 모두가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간다. 사람들은 혁명을 믿지 않는다.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기보다, 주어진 삶에 적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긴다. 누구도 변화를 위해 거리에 나서지 않는다. 그들은 피곤하고, 빚에 시달리고, 자기 앞가림하기도 벅차다. 신자유주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이 체제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라. 불평할 시간에 스펙을 쌓고, 돈을 모아라. 개인의 성공이 너를 구원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믿는다. 다른 길은 없다고.
하지만 정말 다른 길이 없을까? 정말로 이 세계는, 지금 이대로 굳어져 버린 것일까?
나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보이는 광고판을 본다. "행복을 쇼핑하세요!", "지금 투자하면 부자가 됩니다!" 같은 문구가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그 아래, 가로등 불빛에 어렴풋이 비친 사람들. 노숙자, 배달 노동자, 야근을 마치고 지친 걸음으로 돌아가는 직장인. 나는 그들을 본다. 그리고 묻는다. "이 세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맑스가 살아 있다면, 그는 이 장면을 보고 뭐라고 말할까? "봐라. 계급이 사라졌다고 했던 이들에게, 이것이 그들의 대답이다. 노동과 착취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는 아마 그렇게 말하겠지. 그리고 나는 알게 된다. 자본은 단순한 경제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삶의 방식, 사고방식, 욕망을 지배하는 체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의심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혁명이란 것이 가능하긴 한가? 사람들은 과연, 이 세계를 바꾸겠다고 나설까? 나는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만,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단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세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맑스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마치 내가 해야 할 대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우리 어디부터 시작해 볼까?"
그의 질문이 다시 울린다. 나는 입술을 깨문다. 어쩌면, 정말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 시간인지도 모른다. (끝)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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