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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에피쿠로스, 쾌락주의에 대한 오해와 진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4. 6. 28.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초짜 철학도의 분투기

 

 

 

 

 

마침 에피쿠로스 쾌락주의에 대한 것들을 정리해보는 중

어제 챗gpt 수업 중

감마를 이용한 무료 PPT 만들기에 푹 빠졌다.

 

작년 겨울

PPT 만들기를 배우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막강했는데

이토록 쉽게 만들 수 있다니,

혀를 끌끌 찼다.

 

물론 무료 버전이기에

8장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활용해

더 멋진 PPT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걸어본다.

 

배움엔 끝이 없는 듯!

 

 

 

 

 

 

 

 

 

 

 

 

 

 

 

 

 

 

 

 

 

 

 

 

 

 

 

에피쿠로스 학파, 우리가 흔히 쾌락주의자들이라고 부르는 학파에 대한 오해와 진실

 

 

헬레니즘 시기(기원전 323년 - 기원전 31년)는 흔히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부터 로마 제국의 등장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시기는 철학과 과학이 급격히 발전한 시기로, 다양한 철학 사조들이 등장하여 고대 그리스 철학을 발전시켰으며 동시에 그리스 문화가 세계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이 헬레니즘 문화의 주요 특징은 다양성과 융합성으로 다양한 문화 요소가 혼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예술,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했다.

 

특히 헬레니즘 철학은 기존의 자연철학에서 인간의 행복과 윤리적 삶, 자연과 우주의 본질 등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학파가 형성되었는데 크게 Zeno of Citium에 의한 스토아학파(Stoicism)와 흔히 쾌락주의자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에피쿠로스학파(Epicureanism), 진리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모든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이러한 태도를 통해 마음의 평온(ataraxia)을 얻으려고 했던 회의주의(Skepticism),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중심으로 다양한 철학적 문제들을 플라톤의 사상으로 해결하려고 플라톤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철학자들이 활동한 플라톤 아카데미 (Middle Platonism)학파, 플라톤의 철학을 신비주의적이고 종교적으로 재해석하며 일자(The One)를 궁극적 실재로 보고, 정신과 영혼이 일자로부터 흘러나왔다고 보았던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등의 학파들이 주목받았는데 이러한 헬레니즘 시기의 철학 사조들은 현재까지도 철학과 종교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여전히 중요한 철학적 유산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얼마전 스토아 학파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쾌락주의자라 일컬어지는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해 살펴보겠다.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에 고대 그리스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났으며, 기원전 271년에 아테네에서 사망했는데 에피쿠로스 학파를 창시한 철학자이다. 그는 아테네에 정원을 딸린 집을 마련하여 제자들을 모아 가르쳤고, 이 정원은 학파의 근거지가 되었다.

 

그의 사상은 평정(ataraxia), 평화, 공포로부터의 자유, 무통(aponia)을 통해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었다. 또한 쾌락과 고통은 무엇이 좋고 나쁜지 판단하는 척도가 되며, 신은 인간을 벌주거나 보상하지 않고, 우주는 무한하고 영원하며, 세상의 모든 현상들은 궁극적으로는 빈 공간을 움직이는 원자들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온다고 가르쳤다.

 

그의 쾌락주의는 쾌락을 인생의 목적과 최고의 선으로 여겼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하고 순간적인 쾌락의 추구에 있지 않고 장기적인 안정과 평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쾌락을 중시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은 육체적 쾌락보다는 정신적 쾌락을, 이성과 덕에 기반한 쾌락을 진정한 쾌락이라 여겼다. 많은 사람들이 쾌락주의를 말 그대로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데, 진정한 쾌락을 위해 이성과 덕에 의해 자신을 절제할 줄 아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행복이란 즐거움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인데 고통이 없다는 것은 즐거움이 없다는 것이 아니며, 고통의 부재를 쾌락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였다. 자연스러운 욕구를 만족시키면 고통과 고난으로부터 해방되고 즐거운 상태로 이어진다는 것으로 확장할 수 있겠다.

 

또한 그는 고통을 초래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정신적인 탐구와 현실적인 관점을 통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행복을 방해하는 네 가지 요인과 이를 극복하는 구체적인 방법인 사분법을 제시한다.

 

즉 신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고통에 대한 두려움 등을 극복해야 하며 과도한 욕망은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에, 욕망을 조절해야 하고 무지는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야기하기 때문에, 과학과 철학을 통해 지식을 쌓아야 하고, 미신과 허황된 믿음은 불안과 두려움을 야기하기 때문에 이러한 불합리적인 믿음을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에피쿠로스 학파는 우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한 우정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서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관계라고 생각했으며 자연을 우주의 근본 원리로 생각해 신의 개입 없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세상이 운영되며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이하게도 에피쿠로스 학파의 자연주적 철학과 윤리적 가치를 강조하는 그의 학파는 여성을 정식으로 받아들인 최초의 학파 중 하나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금욕적인 쾌락을 강조하며 이성(로고스)에 따른 삶을 살아가며 부동심(아파테이아)를 추구했던 스토아학파, 감각적, 순간적 쾌락을 부정하고 지속적이고 정신적인 쾌락을 중시한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비해

 

순간적 쾌락을 선(善)으로 여겼으며, 가능한 한 많은 쾌락을 취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겼던 키레네학파,

 

에우클레이데스(Euclid), 스틸론(Stilpon), 디오도로스 크로노스(Diodorus Cronus) 등을 중심으로 하는 메가라 철학자들이 있는데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메가라의 에우클레이데스(Euclid of Megara)가 기원전 4세기에 설립한 그리스 철학 학파인데 이 학파는 논리학과 변증법에 대한 연구와 또한 긍정적 존재에 대한 주장으로도 유명했다.

 

메가라 철학자들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논리학의 발전에 끼친 영향인데 그들은 삼단논법과 같은 새로운 논리적 형식을 개발했으며, 이는 이후 서양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또한, 변증법에 대한 연구에도 중요한 공헌을 했다. 변증법은 논쟁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방법론이며, 메가라 철학자들은 이를 사용하여 상대방의 주장을 논박하는 데 능숙했다. 메가라 철학자들의 또 다른 중요한 업적은 긍정적 존재에 대한 주장인데 그들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속성도 실재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당시의 다른 철학자들과는 매우 다른 입장이었으며 예를 들어, 메가라 철학자들은 "선"이나 "정의"와 같은 개념이 실재하고 '악’을 파생시키는 감각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오직 유일하게 존재하는 최고 진리로서의 '선’만이 있다고 주장하는 악과 선을 바라보는 관점의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메가라 학파도 또한 쾌락을 중요하게 여기며 '어지럽지 않은 상태’를 쾌락으로 보았느데 이를 추구하기 위해 고통을 제거하고 부재 상태를 추구했던 면에서는 어느 정도 에피쿠로스와 비슷한 입장이었지만 쾌락을 추구하다가 너무 많이 쾌락에 몰두하여 오히려 고통으로 돌아오는 현상인 ‘쾌락의 역설’로 에피쿠로스 학파를 비판한다.

 

더불어 우리는 레스보스 섬의 에레소스 출신으로 그곳의 아르키포스에게 배웠으며 이후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다가 아리스토텔레스 밑에서 활동했던 테오프라스토스(기원전 371년~기원전 287년)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데 테오프라스토스는 식물학의 아버지로도 불리며, 아리스토텔레스의 학풍을 충실히 지키고 그의 학문을 여러 곳에 퍼뜨리며 스승의 생물 연구를 식물 연구로 확대하여 분류법을 구사함으로써 식물학을 확립시킨 철학자로 또한 성격 분류를 진전시켜서 "성격론"을 저작하였으며, 이는 라 브뤼예르의 "성격론"에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는데 테오프라스토스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저술 활동을 했으며, 특히 자연사와 윤리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계승하면서도 일부 차별적인 점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는 입장을 취했으며그의 윤리학 체계는 다소 모호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대한 해설》(Commentary on Nicomachean Ethics)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지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체계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논리적 개념들을 도입했는데 특히, 그는 "모든 S는 P이다"라는 명제를 부정하는 "어떤 S도 P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처음으로 제시하며 논리학 발전에 중요한 기여로 평가받고 있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아타락시아(평온함)를 행복의 최고선으로 보았던 에피쿠로스에 대한 비판으로 아타락시아가 행복 자체가 아니라 무료와 권태로 이어져서 불행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행복을 위해서는 아타락시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아타락시아의 한계와 쾌락과 불행의 중립 상태를 양립시키려고 했던 에피쿠로스에 대해 테오프라스토스는 쾌락과 불행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며, 쾌락을 추구할 때 항상 불행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쾌락과 불행의 양립 불가능성을 제시하며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행복론을 비판한다.

 

이렇듯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를 비판하는 주요 관점을 요약하면

 

에피쿠로스는 쾌락과 고통의 관계를 모순 관계로 파악하여 고통 없음을 쾌락과 동일시 한다. 그러나 고통의 부재가 항상 쾌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평온함 속에서 불행하지 않음이 항상 행복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에피쿠로스가 이상적인 상태로 보는 아타락시아(평온함)는 행복과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타락시아는 행복을 위해 필요할 수 있지만, 그 자체로는 행복이 아니고 또한 고통 없는 상태의 평온함은 불행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더불어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단순한 육체적 쾌락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의 쾌락을 추구하는데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 쾌락이 동물의 쾌락과는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에피쿠로스 학파는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로마 시대의 시인 루크레티우스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사물의 본성』에 담았다. 또한 에피쿠로스 학파는 근대 초기의 철학자들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예를 들자면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를 그의 정치 철학에 반영했다.

나에게 에피쿠로스의 철학이 다가왔던 것은 아무래도 감각적 방종보다 절제, 자제력, 지적 쾌락의 중요성을 강조되는 일면이고 고통의 부재를 통해 영혼의 평온함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스토아 철학과의 유사점, 내가 내 자신을 지성과 덕으로 통제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해 일련의 나의 선택들이 내 삶을 더 나아가 공동체의 삶에 행복의 단초가 되기를 희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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