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초짜 철학도의 분투기
이제 본격적으로 철학 공부를 시작해 2학년 1학기의 과정을 마쳤다. 기말시험을 끝내고 나니 결과에 상관없이 하늘을 날 것만 같다. 뭔가 내 인생의 어느 지점, 아무래도 ‘나의 무지’에 대해, 고치를 깨고 이제 바람과 햇살에 실려 꿀을 모으기 위해 날아야 하는 나비와 같은 심정이랄까? 물론 차후 반복될 수많은 고치 깨기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하지만, 여하튼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2달여의 여름 방학 동안이 설레기만 하다.
지난 1학년 때의 ‘너 자신의 영혼을 잘 돌보라’라는 소크라테스의 스완송은 나에게 많은 의문을 남겼지만 이번 학기 플라톤을 배우면서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가르침을 바탕으로, 영혼을 잘 돌보는 방법에 대해 다양한 저서에서 논의했는데 그 중점은 아무래도 주로 영혼의 순수성과 지혜의 추구에 두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영혼을 돌볼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음을 배웠다.
즉 플라톤은 이데아론에서 진정한 지식은 감각적인 경험을 넘어선 이데아(지성에 의해서 획득한 이상적인 형상)의 세계에 있다고 주장하며 『파이드로스』에서 이데아의 세계를 관조하는 것이 영혼을 정화하고 고양시키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는 철학적 명상과 깊은 사색을 통한 가능성을 말함이겠다. 또한 영혼을 잘 돌보려면 진리와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이는 철학적 탐구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내가 선택한 배움의 길에 대한 자부심을 북돋기도 했다. 그는 또한 영혼 삼분설을 통해 영혼의 각 부분(이성, 기개, 욕망)이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는 정의로운 삶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러한 개인의 정의로운 삶을 확대해 정의로운 국가를 이루는 개념까지로 발전시키며 이상적인 국가가 되려면 철학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펴기도 한다.
더불어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변증법적 방법(산파술적 대화법)을 통해 자기 성찰과 철학적 대화를 중요시하는 이는 스스로의 생각을 검토하고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깊은 이해와 지혜를 추구하는 방법을 제시하며 영혼을 잘 돌보려면 선을 추구하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 중요성을 거론한다. 이는 올바른 행동과 결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최고선(善)의 이데아를 모든 것의 궁극적 목표로 제시하며 철학적 교육과 수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의 책 『파이드로스』와 『향연』에서는 욕망을 절제하고, 이성을 통해 욕망을 통제하는 것이 영혼의 건강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절제와 자제를 통해 영혼이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기도 하겠다.
플라톤의 이러한 철학은 이성적인 사고와 도덕적인 삶을 강조하며, 영혼의 건강과 조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네 영혼을 잘 돌보기’ 위한 명확한 실천적 방법이었으므로 철학도로서의 나의 남은 생의 지침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엿보았다.
그리고 이번 학기 무엇보다도 내 자신의 삶에 대한 다각도의 방향성에 대해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은 아무래도 ‘고대서양철학’ 중 ‘스토아학파’ 그중에서도 특히 영혼을 치유하는 삶의 철학을 제시한 에픽테토스의 사상이었다.
스토아학파는 “인간의 고통에 아무런 처방도 내려주지 않는 철학자의 말들은 얼마나 공허합니까? 신체의 병들을 고쳐주지 못하는 의학적 실천이 아무런 가치도 가지지 않듯이, 영혼의 고통을 치유해주지 못하는 철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라는 주장을 펼치며 영혼을 치유하는 삶의 철학으로서의 사상을 펼친 것이다.
우선 스토아 철학자들이 활발히 활동했던 시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활동으로 인한 그리스 문화의 확산되는 즉 동양과 서양의 문화의 융합으로 인한 코스모폴리타니즘(Kosmopolitanism, 세계시민주의)의 탄생의 배경이 된 헬레니즘 시기에는 특히 쾌락주의라 불리는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가 융성했는데 나는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스토아 주의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내 삶의 지침서로 했던 바, 왜 내가 그토록 명상록에 빠졌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초, 중기 스토아주의는 형이상학, 자연철학을 주로 연구했지만 후기 스토아주의는 로마를 중심으로 노예부터 황제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같은 서구 사상사에 현재까지 지속적인 영향력을 주는 사상가들이 활동하게 된다.
이러한 스토아 학파의 핵심 주장은 우주 전체는 법칙, 즉 자연법칙을 따르는데 우주와 자연 안에는 ‘신의 섭리’가 깃들어 있어 신은 세계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일종의 세계영혼(The World Soul)이며 세상 만물은 자연의 일부인데 인간인 우리는 저마다 신성한 불(신)의 일부를 품고 있다는 우주에 관한 결정론을 펼친다. 특히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신의 뜻[=자연의 이성적 목적]과 일치시킬 경우에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인간이 행하는 덕은 자연의 법칙(logos)과 일치된 의지 속에 있고 유일한 참된 선은 덕을 행하는 것으로 사악한 사람은 억지로 신에게 복종하지만, 선한 사람은 자유의지에 따라 복종하는 현실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모든 일은 그 사람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음을 주장하며 탐욕, 불안, 근심, 두려움, 분노, 괴로움, 좌절, 후회, 허망함, 시기, 질투 등의 온갖 정념, 감정(pathos)에 시달리는 인간들을 향해 이러한 정념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이성적 합리성이 작동되지 못할 때 얻어진 오류 판단임으로 정념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탁월한 치료책으로서 apatheia 제시하기도 한다.
이 아파테이아는 부동심, 평정심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 무정념의 상태를 말하는데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에픽테토스는 그의 책 『엥케이리디온』에서 “세상사 가운데는 내 권한에 속하는 것이 있고, 속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내 권한에 속하는 것은 생각, 충동, 욕구, 혐오 등 우리가 하는 행위다. 내 권한에 속하지 않는 것은 육신, 재산, 평판, 직위 등 우리가 하는 행위가 아닌 것들이다.”이라며 ‘우리에게 달린 것/우리에게 달리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우리에게 달린 것에 노력을 집중하면 진정한 삶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에픽테토스(Epictetus)는 기원후 55년경에 태어나 135년경에 사망한 고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로 “아로스만큼 불쌍하고, 걸을 때마다 절뚝거리는 몸을 가지고 노예로 태어난, 나 에픽테도스는 신의 친구였네.”라고 말하며 자신의 삶의 긍정성을 설파한다. 그는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를 얻은 후에도 평생동안 가난하게 살면서 철학을 가르쳤으며 그의 제자 아리안이 기록한 『엥케이리디온(Encheiridion)』과 『대화록>(Discourses)』에 자신의 사상을 담아 주로 자기 통제, 내적 자유, 그리고 덕을 중시하는 삶을 강조한다.
위의 책들에서 발췌한 에픽테토스의 주요 사상들은 외부의 사건을 통제할 수 없지만, 우리의 반응은 통제할 수 있다고 가르치며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에 집중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외부 상황, 다른 사람의 행동 등)에 집착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내적 자유와 자기 통제를 언급한다. 또한 에픽테토스는 덕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며 지혜, 용기, 정의, 절제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는데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통해 우리는 내적 평온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덕과 윤리적인 삶의 태도를 지니면서 동시에 과거의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휘둘리지 말고 현재 순간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며 현재에 집중하여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함과 더불어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믿었는데 이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며, 우리의 위치와 역할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픽테토스는 이성을 통해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며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음을,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권장하며 타인의 잘못을 용서함으로써 자신의 내적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그의 사상들은 당시에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들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특히 심리학, 자기개발, 리더십 등의 분야에서 자주 인용되며 현대의 복잡한 삶 속에서도 내적 평온과 진정한 자유를 유지하며 참다운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실천적 핵심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어제 기말시험을 끝내고 가장 먼저 손에 든 책은 단연코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과 『대화록』을 함께 엮은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이라는 제목을 단 김재홍님의 책이다. 그리고 난 이제 2달의 방학 동안 길고, 아득한, 그러나 깊이를 알 수 없는 것들을 향해 여행을 떠날 참이다. 내 손에 들린 이 여행 목록은 나에게 어떤 세계를 펼쳐 보일까?
이 자리를 빌어 나의 무지에 대한 깨우침을 이끌어 주시는 교수님들, 특히 군산대 철학과 교수님들, 서양고대철학을 강의하시는 유재민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교수님은 수업 중 종종 플라톤의 책을 읽기를, 권해주시고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얼마나 설레는지 아시기나 할까? 정말 끝 간데 모를 즐거움이다. 인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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