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초짜 철학도의 분투기
* 질료적 근원(아르케):
1. 모든 있는 것들이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2. 그것에서 최초로 생겨나서
3. 소멸되어 그것으로 돌아가는데
4. 그것의 상태는 변하지만 실체는 영속하는 것
밀레토스 학파
탈레스( 기원전 624~546년경)
1) 올리브 짜는 기계의 일화
2) 물이 만물의 근원이다. 라고 생각한 이유:
a) 모든 것의 자양분이 축축하다.
b) 열 자체가 여기서 생긴다.
c) 물에 의해 모든 것이 생존한다.
d) 모든 것들의 씨앗들은 축축한 본성을 갖는다.
3) 탈레스의 우주론: 지구는 물 위에 떠 있고 지진은 이 물의 운동으로 야기 됨.
4) 탈레스의 신들과 혼: a) 혼이 우주 안에 섞여 있어 모든 것은 신들로 충만하다.
b) 혼은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것이다.
5) 기하학/수학에도 관심을 보여 추론을 통해 기하학적/수학적 증명 시도
피리미드의 높이를 비례 관계로 설명
6) 탈레스는 현상과 실재(본질), 다양성과 단일성의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철학자
7) 로이드의 『그리스 과학 사상사』 : 탈레스는 최초의 과학자였다. 그 이유는
a) 자연의 발견
-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의 차이를 이해했다. 즉 자연 현상은 엉터리라거나 우연 발생적인 힘의 산물이 아니라 규칙적 확정할 수 있는 원인 결과의 연쇄에 의해 지배받는 사실을 인식한 사람이다.
- 세상 만물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초자연적인 힘을 들추어 내지 않았다.
-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는 특정 지진이나 번개의 원인에 주의를 기울인 반면에 밀 레토스 학파들은 현상의 개별 사례가 아니라 지진이나 번개 일반에 주의를 기울 였다.
b) 이성적인 비판과 논쟁의 실천
- 그리스 초기 철학자들은 다른 이들의 이론과 직접 경합을 벌렸다. 가장 좋은 설 명을 찾아내기 위해 그들은 경쟁 상대가 가지고 있는 이론의 약점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고의 근거, 유리한 증거를 고찰하고 제시하였다.
- 반면에 예컨대 이집트인들은 하늘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설명할 때 기둥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어떤 신이 하늘을 유지하고 있다. 하늘은 벽 위에 놓여져 있다. 하늘은 암소이거나 여신으로서 팔과 다리가 대지에 뻗쳐 있다는 등의 다양 한 신화적 설명을 하지만 이 가운데 어느 것이든 그 속에 모순이 있다 해도 별 고민을 하지도 할 필요도 없었다. 서로 비교해 보겠다거나 내 주장의 근거가 더 낫다거나 너의 근거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빈약하다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
2. 아낙시만드로스(기원전 610 – 546년 경)
아낙시만드로스는 프라시아데스의 아들로 밀레토스 사람이다. 이 사람은 있는 것들의 근원은 무한정한 것이라는 본연의 어떤 것인데 이것에서 하늘들과 하늘들 속의 세계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이것은 영원하고 늙지 않으며 그것은 또한 모든 세계들을 둘러싼다고 그는 말했으며 여기에 덧붙여 운동은 영원하며 이 운동 속에서 하늘이 생기게 된다고 했다.
a) 모든 것이 근원이거나 근원에서 나온 것인데 무한정한 것(무한계, 무경계 apeiron)의 근원은 없다. (무한정한 것의 근원이 있다면) 무한정한 것을 제한하는 한정이 있게 될 테니까.
b) 게다가 무한정한 것은 근원이기 때문에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생겨난 것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모든 소멸에는 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 에 우리가 말한 것처럼 근원의 근원은 없다. 오히려 그것이 다른 것들의 근원이며 모든 것을 포함하고 모든 것을 조종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c) 또한 이것은 신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아낙시만드로스와 대부분의 자연철학자 들이 주장하듯이, 사멸하지 않고,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1) 있는 것들의 근원은 무한정한 것(apeiron)
a) 그는 근원을 대립물들 가운데 하나로부터 구하면 안된다며 만물의 근원은 대립되는 물질 보다 더욱 원초적인 것이므로 물은 대립물 중 하나라고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한 것을 비판한다.
b) 근원은 물도 아니고 원소라고 불리는 것들 가운데 다른 어떤 것도 아니며 물이나 원소들 과는 다른 무한정한 어떤 본연의 것으로 보았으며 생성을 원소의 질적 변화로 설명하지 않고 영원한 운동으로 인한 대립자들의 분리에서 나옴으로 설명하고 대립자들이란 뜨거 운 것, 차가운 것, 마른 것, 젖은 것을 비롯해서 다른 것들을 말하며 무한정한 것에서 모든 하늘들과 하늘들 속의 세계들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c) 그에게 무한정자(무규정성)는 현실적으로는 어떤 것도 아니면서 잠재적으로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며 바로 이 무한정자로부터 온, 냉, 건, 습이라는 대립적인 힘들이 갈라 져 나오고 이것들의 조합을 통해 물, 불, 흙, 공기가 만물이 생겨난다.
2) 힘겨루기의 대립적 힘으로부터 네 원소를 비롯한 자연물이 생성
네 원소를 비롯한 자연물들이 생기고 소멸하는 이차적인 과정은 대립적 힘들로서 온, 냉, 건, 습 사이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이고 이 힘겨루기의 결과 모든 자연의 변화가 진행된 다. 그런 뜻에서 네 원소인 물, 불, 공기, 흙은 지은 잘못에 대한 벌과 대가를 시간의 질서 에 따라 서로에게 지불하는 것이다.
3) 불의의 배상: 여름은 따뜻한 요소가 지나쳐 타 요소들을 침탈해서 더워지는 것이며 겨울은 그 반대의 경우이며 이후 이 침탈이라는 불의를 보상하기 위하여 더위 혹은 추위 같은 확 정적인 요소들은 무한정자 속으로 다시 흡수되므로 보상(배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불의를 배상한다는 의미는 남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뜻이고 아낙시만드로스는 사회적인 현 상을 자연에 투사했다.
4) 우주론
a) 지구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떠받쳐지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으며 모든 것들로부터 같 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음으로 인해 머물러있다. 그것의 모양은 둥글며 돌기둥(혹은 북)과 거의 비슷하다 그것의 표면 바닥 한편은 우리가 발붙이고 있고 다른 편은 우리와 마주 보고있다.
b) 그는 해는 지구와 크기가 같지만 해의 바퀴는 지구보다 27배 큰데 그것 바깥으로 숨구 멍이 나 있고 바퀴에 의해서 해가 둥글게 움직인다.
c) 그는 별들은 바퀴들과 구들에 의해 움직이는데 바퀴와 구들 위에 별들이 제각기 자리잡 고 있다. 별들은 불의 바퀴로서 우주에 있는 불에서 분리되어 공기(짙은 안개)로 감싸여 있고서 생각난다. 또 불의 바퀴에는 날숨을 위한 관 모양의 통로 같은 것들이 있어서 그 통로들을 통해서 별들이 우리에게 드러나 보인다. 그렇기때문에 날숨들이 차단될 때는 식(蝕)들이 생긴다. 달은 통로들이 차단되고 개방됨에 따라서 어떤 때는 차오르는 것으 로 보이고 어떤 때는 기울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해의 바퀴는 지구의 그것보다는 27배 더 크고 달보다는 17배가 더 크다. 그리고 해는 가장 위에 있고 달이 그다음이며 떠돌지 않는 항성들과 떠도는 행성들의 바퀴들은 가장 아래에 있다.
그의 우주론을 정리하자면:
세계가 무한정자의 운동에 따른 소용돌이에 의해 운동(침탈, 응보)하게 되므로 최초의 무거 운 대립자는 중심으로 가벼운 대립자는 외부로 밀려난다.
a) 천체들의 궤도는 완전한 원을 이룬다.
b) 지구는 우주의 한가운데 위치하므로 지탱물 없이 떠 있다.
c) 천체들은 어떤 사물이 아니라 불이다.
d) 천체들의 길은 바퀴통 모양으로 지구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중첩되어 있다.
e) 바퀴통은 촘촘한 안개이며 뚫린 구멍들로 나오는 빛이 우리가 보는 천체이다.
f) 별들, 달, 해의 순서로 지구로부터 9배, 18배, 27배의 거리에 있다.
5) 진화론
a) 최초의 동물들은 물고기 같았고 가시 돋고 비늘 난 외피들 속에 둘러싸여 있었다가 이러 한 동물들로부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육지 동물들이 진화되어 나왔으며 인간은 최종적으 로 일종의 물고기로부터 진화
b) 더 나아가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 건조화의 증거로 내륙의 조개 화석을 들며 인간 진화 의 증거로써 인간의 생후 상당 기간 무기력하며 보호를 필요로 하는 물고기를 발견함으 로써 제시
3. 아낙시메네스(기원전 585 – 528년 경)
1) 철학: 공기가 만물의 근원이다.
흙/물/구름/바람은 <농축:촘촘< 공기>희박/팽창:느슨> 불
양을 가지고 설명한 최초의 철학자
모든 질을 양적 개념으로 이해하거나, 혹은 양적 개념 위에 정초하려는 시도를 했으 며 이는 물리적 세계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접근을 보여주는 최초의 시도였다. (양화 된 세계관 = 법칙적 세계관)
a) 만물의 근원은 무한정한 공기이다. 생겨나고 있는 것들, 생겨날 것들, 그리고 신들과 신 적인 것들이 공기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여타의 것들은 이것의 산물들에서 생겨난다.
b) 공기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그것이 가장 고를 때는 시각으로 보이지 않지만 차가운 것, 뜨거운 것, 축축한 것, 그리고 움직이는 것에서는 보인다. 그것은 언제나 운동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운동하지 않는다면 변화하는 모든 것들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기 때 문이다.
c) 그것은 촘촘해지거나 희박해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그것이 흩어져서 가장 희박 하게 될 때는 불이 된다. 반대로 공기가 촘촘해진 것이 바람이다. 구름은 응축에 의해 공기에서 만들어지며 더 많이 촘촘해지면 물이 만들어지고 그보다 더 만힝 촘촘해지 면 땅이 만들어지고 가장 많이 촘촘해진 것이 돌이다. 따라서 생성이 가장 주도적인 요 소는 대립자들인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다.
2) 응축과 희박:
모든 질을 양적 개념으로 이해, 혹은 양적 개념 위에 정초하려는 시도. 이는 물리적 세계 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접근을 보여주는 최초의 시도였다.
3) 우주론:
- 공기가 응축되면서 맨 먼저 아주 평평한 지구가 생겨났으며 그 때문에 땅이 공기 위에 떠 있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며 해도 달도 나머지 다른 별들인 천체들 도 생성의 근원을 지구에서 얻는다.
- 아낙시메네스와 아낙사고라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는 지구가 머물러있는 까닭은 그것 이 평평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밑에 있는 공기를 자르는 것이 아니 라 뚜껑처럼 덮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편평한 물체들은 분명히 그런 작용을 한다. 왜냐 하면 그것들은 바람에 대해서조차도 저항으로 인하여 움직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3) 기상학: 땅은 적셔지고 말라붙음에 따라 갈라지며 이렇게 갈라지면서 함몰하는 흙더미들에 의해 흔들린다. 그렇기 때문에 지진들은 한발 기간에도 또 호우 기간에도 일어난 다. 땅은 한발 기간에 바싹 마르면서도 갈라지기도 하고 물에 의해 흠뻑 젖으면서 도 부서지기도 하니까.
4. 크세노파네스(기원전 570/60~475년 경)
1) 밀레토스 학파의 우주론을 비판
a) 대지는 아래로 무한에 이르기까지 뻗어 있다.
b) 모든 것은 대지(흙과 물)에서 생겨나서 그것으로 소멸한다. 경험적, 상식적
2) 신화 비판
a) 신화적 설명에서 자연주의적 설명으로 이리스(무지개의 여신)과 대홍수를 언급
3) 신인동형론 비판
a) 민속 종교의 신들은 인간의 형상을 본뜬 투사체에 불과하다.
b) 신에 대한 사유의 한계와 상대성(소의 신, 말의 신)
c) 우주 및 세계에 대한 참된 이해를 위해선 인간적 사유를 넘어서는, 참된 신적 사유(유 일신)의 단계에 이를 것을 촉구했다.
4) 참된 신관
a) 부정의 길을 통해 얻어짐, 신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존재이다.
b) 가장 위대하며 가장 완전한 존재는 불변, 불생, 불사, 부동, 불가분으로서의 하나인 근 원이므로 궁극적 원리이자 진리로서의 근원이 가변적이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c) 부동의 원동자는 부동의 일자 존재이다. ( 파르메니데스와 유사한)
5. 피타고라스(기원전 570~490년 경)
1) 피타고라스 학파의 성격은 철학적 성격을 띤 종교집단의 의미가 보편적이다.
a) 수학, 음악: 우주의 근원을 설명하고 혼을 정화하기 위한 도구로 삼아라.
b) 공동 생활방식으로 하나의 집단을 이루며 공동체화하며 혼의 윤회설 등 여러 면에서 오 르페우스교의 영향을 받았다.
2) 종교적 금기
a) 콩을 삼가라: 치부와 하데스의 문을 닮고 유일하게 마디가 없고 썩으며 우주의 본성과 닮았고 또는 과두정에서 콩으로 추첨해서 통치자들을 뽑는 과두정적이기 때문에.
b) 떨어진 것을 주워 올리지 말라: 무절제한 식사를 지양, 죽음과 관련이 있다.
c) 흰 수탉에 손을 대지 말라: 달의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이자 탄원자.
d) 제물로 바쳐지는 물고기에 손을 대지 말라: 신과 같은 것들을 할당해서는 안 된다.
e) 한 덩어리의 빵을 부수지 말라: 친구들을 모이게 해주는 빵. 하데스의 심판. 우주가 한 덩어리의 빵에서 시작
f) 저울을 넘기지 말라: 탐욕을 부리지 말라.
g) 칼로 불을 쑤시지 말라.: 화가 나서 터질 듯한 사람에게 화를 돋구지 말라.
h) 왕관을 벗겨내지 말라: 법률을 어기지 말라
I) 심장을 먹지 말라: 자신을 슬픔으로 괴롭히지 말라
3) 영혼의 윤회와 불사: 영혼 불멸설, 영혼 윤회설, 영원 회귀 역사관, 혼의 정화
a) 혼의 불사성은 한편으로는 오르페우스 종교 전통을 계승한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후대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적 분 리를 통해 불결한 육체로부터 어떤 방식의 정화를 통해 영혼은 정화되어야 한다.
b) 이는 당시 그리스 전통 종교이던 아폴론 종교에 비춰보면 상당히 혁신적이다. 불사성은 ‘신’의 속성이고 인간은 하루살이처럼 가멸성, 필멸성을 속성으로 갖기 때문이다.
4) 피타고라스 주의자들은 왜 혼을 정화 시키려고 했을까?
a) 그들의 영혼 불멸설에 의거하여 이루어진 결과로 즉 그들은 혼이 신체의 사멸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닌, 신체를 벗어나 스스로 살아가는 불멸의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b) 혼은 윤회하며 전생의 혼은 현생의 육체에 들어오고 다시 현생의 혼은 후생으로 이어지 는데 이 과정에서 현생의 혼이 더렵혀질 경우 후생에서 더욱 낮은 육체 계급으로 들어 가게 된. 더 나아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 혼의 영원한 해방 을 이루기 위해서 혼을 정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혼의 정화를 위해 그들은 육체적 순결 및 음악과 수학(철학)을 통한 정화를 추구했다.
5) 음악
a) 피타고라스는 음계에서 세 협화음(조화음)과 네 자연수 (1, 2, 3, 4)의 비율 관계를 발견 했다. 1:2, 2:3, 3:4라는 세 비율은 1, 2, 3, 4라는 수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들을 모두 합치면 완전수 10이 된다.
b) 비율로 표현될 수 있는 음악(협화음)은 우주를 이해하는데 적용했다. 협화음, 즉 조화로 운 음악의 비밀이 1, 2, 3, 4로 이루어진 비율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질료가 아 니라 형상을 중시한 철학자였다. 다시 말해서 음악적 간격들의 수적 비율처럼 관계된 두 사물들도 상호적 수적인 비율을 가지며 즉 음악적 조화의 수의 의존성처럼 우주의 조화도 수에 달려 있으며 수 자체가 만물의 근원이라 주장했다.
6) 수(數) 이론
a) 음악적 비율은 형태 없는 소리 위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질서와 아름다움은 일정 한 형태의 한정이나 정의가 성립했을 때 가능하다. (예컨대 형태 없는 밀가루 반죽에서 일정하게 분간되는 모양을 찍기 위해 제과용 틀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형태 없는 소리는 귀에 거슬리는 소음에 불과하며 여기에 일정 비례(한정)가 주어지면 아름다운 질서가 성립한다.
b) 건강한 신체, 고결한 영혼, 정의로운 사회는 모두 근본적으로 구성 요소들 간의 조화로 운(올바른) 비율을 갖는다.
c) 수비(수비)학적 경향: 정의는 4, 결혼은 5(남성은 3, 여성은 2의 결합), 행운은 7(이를 두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북두칠성과 테바이를 공격한 장군의 예를 들어 비판했다.)
7) 피타고라스의 정리
피타고라스 본인이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했다는 초기 자료는 없다. 수학에서 증명 방법 은 피타고라스 사후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최초로 알아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 다. 기원전 2,000년부터 바빌로니아 점토판에는 3:4:5와 같은 수 조합들이 등장한다. 단지 그는 그 정리가 참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8) 우주론: 최초의 지동설: 모든 천체들이 중심의 불 주위를 돈다.
우주의 중심부 한가운데에는 불이 있고 이것은 우주의 화덕이며 제우스의 거처이자 신들의 어머니의 제단이며 자연을 결속시키는 자연의 척도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시 제일 상층에 우주를 둘러싼 또 다른 불이 있다. 그런데 한 가운데 것은 본성상 첫째가는 것이며 그 주 위로 열 개의 신적인 물체들이 춤을 춘다. 붙박이별들(항성)의 구 다음에 다섯 개의 떠돌이 별(행성)들이 있고 그 다음에 해가, 그 밑에 달이, 그 밑에 지구가, 그 밑에는 대지구(對地 球)가 있고 이 모든 것 다음에는 중심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화덕이라는 불이 있다.
a) 대지구의 상정: 천구의 개수 10개, 월식이 일식보다 2배 자주 일어남(임의적임)
b)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천구들의 회전에 관하여』에 붙은 헌사에서 지구가 우주의 중 심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혁신적인 생각을 탐구하도록 이 끈 것은 바로 이 고대적 우주론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출발점으로 나는 지구의 운동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c) 케플러(1571~1630)는 진정한 의미의 피타고라스주의자이다. 케플러의 수학적으로 표현 된 세 가지 운동법칙은 근대 천문학을 시작한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또한 『우주의 조 화』 (1619)라는 글에서는 오로지 장단의 화성음계와 관련해서 행성들의 운동을 분석하 고 토, 목, 화, 금성, 달, 지구의 궤도에 의해 들리지 않게 연주되는 서로 다른 선율들 까지 상술한다.
6.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35 – 473경)
1) 생애
a) 에페소스의 귀족 출신으로 왕위를 물려받고 동생에게 물려줌. 그 외 생애와 관련 알려진 바 없음.
b) 상반된 해석: 서양 철학사를 통틀어 그만큼 다양하게 해석되어 온 철학자는 드물다. 그 를 둘러싼 해석은 고대부터 심하게 엇갈린다.
(1-1) 플라톤: ‘변화’를 강조한 철학자로 해석. 만물 유전설.
(1-2) 아리스토텔레스: 근원으로서의 ‘불’을 강조한 철학자로 해석. 이오니아 일원론자들 의 전통 속에 놓음.
(2-1) 스토아 학파: 가장 호의적인 평가. 학파의 시조로 평가함. ‘불’, ‘로고스’,‘신’ 개념 을 계승. ‘불’과 ‘로고스’와 ‘신’은 어떤 점에서 동일하다.
(2-2) 히폴뤼토스(3세기 로마 주교): 기독교 이단 철학의 원조.
2) 독특한 글쓰기 방식 (다양한 해석의 이유)
⑴ 120개 정도의 단편들은 격언이나 금언들과 닮은 신탁이나 수수께끼 형식을 띠어 의미 파악이 쉽지 않음.
⑵ 역설적이고 자기 모순적인 표현
⑶ 은유적으로도 문자 그대로도 이해될 수 있는 다의적인 표현
⑷ 주어가 애매한 표현
⑸ 몇 개의 주제로 묶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해서, 단편들을 정리하여 전체에 일관성을 부여 하는 것도 쉽지 않음.
⑹ “수수께끼를 내는 자”, “어두운 자”
⑺ 의도적으로 기획된 글쓰기 방식: 단편 25는 “moroi mezones mezonasmoiras lanchanousi”(더 큰 죽음은 더 큰 몫을 받는다)이다. 처음 네 낱말의 첫머리는 모두 m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더 큰’이라는 뜻의 낱말을 둘로 병치시키며
(mezones/meznoas), 각운(-as)과 두운(mo[i]r-)을 맞추고 있다.
⑻ 그의 의도: 철학적 탐구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나 암기 과정이 아니며, 탐구자 스스 로 문제와 직접 씨름함으로써 궁극적인 이해와 통찰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
3) 대중들과 기존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
a) 사람들이 그의 말(로고스)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감 각’과‘지성’을 무반성적으로 일관성 없이 사용하고, 전통과 권위에 의존하며 서로에게 귀를 기울임으로써 결국은 자신들의 생각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한다.
b) 또한 그들은 알지 못하며 그러면서도 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인 진리가 어디에나 있으며 모든 이들에게 공통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c) 선대 사상가들은 박학다식할지는 모르나 분별력을 갖지는 못했다. 서사 시인들은 어리 석으며, 피타고라스는 사기꾼이다.
4) 진리 탐구의 방법
a) 자신은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이 진리는 모든 것을 이해하는 열쇠와도 같다. 이때 ‘모든 것’은 자연 세계, 윤리와 정치, 종교를 모두 포괄한다. 그는 이 진리를 ‘로 고스’라고 부른다. 로고스에 대한 통찰은 두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① 자신을 탐구하는 길(반성)과
② 자연을 탐구하는 길(감각)
b) 자연 세계는 우선 감각을 통해 접근하게 된다. 그러나 감각이 자연 세계의 탐구에 무조 건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지성의 사용이 필수적이다.
c) 자연의 원리, 사물의 본성은 바로 들여다볼 수 없다. 그것들은 현상들 이면에 놓여 있 어서 통찰을 위해서는 현상들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 현상들은 하지만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현상들은 진리를 드러내는 ‘징표’로, 여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5) 로고스와 진리
자신이 발견한 진리는 ‘로고스’라고 표현한다. 만물은 이 로고스에 따라 있고
a) 이 로고스는 만물에 공통적이다.
b) 왜냐하면 감각과 지성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면 누구나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고스’라는 단어 자체가 다의적이다. 단어, 말이나 문장, 이것들이 결합된 이야기 나 논변(논증), 설명을 뜻할 수도 있고, 더 확장해서는 비율이나 비례, 척도나 법칙, 원리로도 해석된다.
c) 이 로고스를 “사람들은 듣기 전에도 듣고 나서도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서‘로고스’는 헤라클레이토스 “자신이 한 말이나 글이나 설명”을 의미함.
d) 하지만 “나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로고스에 귀를 기울여라.”
e) ‘로고스’는 자신의 말이나 글 이외의 어떤 것. “자연의 원리, 사물의 본성. 계산, 비 율, 척도”를 의미함.
f) 불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이런 ‘로고스’는 만물의 근원적인 요소이자 원인이다.
6) 로고스란: 하나로부터 모든 것, 모든 것으로부터 하나
진리인 로고스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은 하나다”로 표현된다.
자연을 구성하는 사물들은 그 각각이 전체이며 전체의 부분이다. 예를 들어 동물의 눈은 그 자체가 전체이지만, 동물 전체의 부분이다.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부분들의 상호 관 계나 그 전체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깊어진다. 이렇게 앎은 모든 것으로부터 하나를 이해 하고, 하나로부터 모든 것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하나인 전체를 이해하려면 모든 부분들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그것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해서 갖거나 갖지 않는지(“전체이면 서 전체 아닌 것”), 그것들이 어떻게 해서 결합하고 결합하지 않는지(“함께 모이면서 따로 떨어지는 것”), 그것들이 어떻게 여러 맥락들 속에서 함께 작용하거나 하지 않는지(“같은 음 을 내면서 다른 음을 내는 것”)를 고찰해야 한다. 이것이 다양성 이면의 통일성을 찾는 작 업이다. 다양성의 통일은 ‘대립적 성질들의 통일’에 다름 아니다. 이때 모든 것은 ‘대립적 성질들’이고 하나는 ‘통일성’이다. 전체와 부분들이 보여주는 상호관계는 이중적인 상호 관 계이다.
① 대립적 성질들(모든 것)과 그 이면의 통일성(하나)의 상호 관계: 현상으로 드러나는 대립 적 성질들은 이면에 숨어 있는 통일성의 원리를 따른다는 점에서, 그리고 통일성의 원리 는 대립적 성질들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상호 의존적이다. (모든 것 들로부터 하나가, 하나로부터 모든 것들이)
② 대립적 성질들 상호 간의 통일성: 균형과 조화의 원리.
ⓐ 조화란 ‘서로 다른 것들’ 간의 관계이므로 서로 다른 요소들이 없다면 조화도 없다. 그러므로 대립자들은 화합하고, 불화하는 것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지 며, 파괴와 소멸을 가져오는 투쟁이 생성을 가져오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립하는 것은 한데 모이고, 불화하는 것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모든 것은 투쟁에 의해 생겨난다.”
ⓑ 대립자들 간의 관계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 한쪽이 있음으로써 다른 쪽이 있는 관 계이지만, 다양하고 복합적인 모습을 보인다.
활은 시위와 활대로 이루어진다.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활을 활로 만들어 주는 관계, 즉 시위와 활대의 ‘긴장과 투쟁’이 이면에서 작용하고 있다. 이 둘은 서로 반대쪽으로 향하는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시위는 활대에 의해 바깥 방향으로 당겨지고 활대의 양 끝은 시위에 의해 안으로 모인다. “활”의 존재와 기능은 활대와 시위 간의 ‘대립적 긴장 관계’에 의존한다. 여기서 바깥으로 당겨짐과 안으로 당겨짐은 상호 의존적이며, 이 대립된 두 힘의 긴장과 투쟁이 균형을 이룰 때 활은 활로서 기능하게 된다. -> 대립 관계의 통일성이란 ‘긴장 관계의 균형’이다.
* 로고스의 진리는 현상들이 보여주는 대립적 성질들과 그 이면의 통일적 관계(하나의 사물)에서 드러난다. 감각에 드러나는 것은 대립적 성질들뿐이나, 그 이면에는 대립적 성질들의 주체로서 하나의 사물이 놓여 있다.
현상적으로 질병은 나쁘고 건강이 좋은 것이지만, 병과 건강이라는 대립적 성질들의 상호 의존 관계를 통해 우리는 “병이 건강을 달콤하고 좋은 것으로 만들고, 굶주림이 포만을 피로가 휴식을 좋은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면의 진리는 대립적 성질 중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합: 활에서 대립하는 두 요소(활대와 시위)의 긴장 관계는 ‘동적’이다. 운동과 변화가 전제된 긴장 관계, 여기서 오는 통일이다. 활의 이 대립적 성질은 활로 기능하지 않을 때는 드러나지 않지만, 화살을 메기고 시위를 당겨 쏘는 과정에서 표면화된다. 이렇듯 모든 사물의 대립과 통일은 동적 상태, 움직임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7) 우주론
a) 그는 세계를 ‘살아있는 불’로 설명한다. 살아 있는 불의 이미지는 이 세계가 동적인 상 태, 운동과 변화의 과정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b) 세계가 자기 정체성을 갖는 것은 이 변화와 운동 과정 속에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세 계의 정체성 자체에 포함된다. 강물이 흐름을 멈추면 더는 강이 아니며, 밀크, 치즈가루 로 만든 음료는 젓지 않으면 분리되어 음료가 되지 못한다. -> 전체로서의 우주는 변화 의 과정과 정체성의 유기적 통일체이다.
① 변화의 측면은 대립적 성질을 드러내는 사물들의 다양성을 의미하며,
② 정체성은 그 다양성 이면에 작용하는 통일성이다.
8)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플라톤 비판)
a)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의 과정’과 ‘정체성’에 똑같은 무게를 둔다. 그가 말하는 변화는 정체성이 전제된 변화이다. 한 가지 오해...
b) 어떤 정체성도 없는 변화. 만물 유전설. 상대주의. 허무주의.
c) 모든 점에서 철저한 변화 속에 있다면, 어떤 사물을 가리켜 “그것은 어떠하다”고 말할 수 없고, 심지어 ‘그것’이라고 지칭도 못한다. 그렇게 말하고 지칭하는 순간 그것은 변 화를 멈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언어조차 불가능한 철저한 유전 이론은 헤라클레 이토스의 것이 아니다.
d) 강은 물의 흐름으로 말미암아 대립적 성질을 갖는다. 단편이 말하는 대로 동일한 것(같 은 강)으로만 남아 있다면,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으나 같은 강에는 들 어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강이라는 정체성이 확보되고 나서야 우리는 그 강물 의 흐름을 언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플라톤처럼 후자만 강조해서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가 아니다. -> 활이 대립적 긴장 관계 속에서 활로서 정체성을 유지 하듯, 사물들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나름의 정체성을 유지할 만큼의 안정성과 지속성 을 갖는다. --> 이 세계가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유지하는 안정성과 지속성은 ‘불’의 이 미지와 어울린다. 불은 활활 타오르며 끊임없이 변하지만 자신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유 지한다. 불은 능동적으로 우주에서 다른 것들을 지배하며 신과 같이 모든 대립적인 것들을 자신 속에 포괄하고, 다른 상황에서 매번 다른 모습을 취하지만 자신의 정체성 을 유지한다. 지배하는 불이 곧 로고스이고, 이 로고스에 따라 모든 것들이 발생한다. e) 로고스 = 불 = 신
존재하는 모든 것의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하나를 주장한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은 영원불변한 세상으로 함축할 수 있다. 그의 사상은 절대적 일원론이다. 그런데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생성 변화의 기저에 놓인) 보편적 이성 로고스 역시 일원론이다.
플라톤은 엘레아학파의 파르메니데스가 주장한 영원불변한 세상과, 그와 대비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항상 변화하는 세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영원불변한 세상과 만물유전설을 정리하여 자신의 이데아론을 정립할 수 있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이론을 토대로 질료형상론을 수립할 수 있었다. 플라톤의 기획에서 불변하는 이데아의 세계와 대비되는 것이 변화하는 자연의 세계다.
7. 파르메니데스(엘레아: 기원전 510 – 450년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엘레아 학파의 대표. 존재론과 형이상학의 창시자. "형이상학의 아 버지"로 불린다.
1) 출신 배경:
이오니아 식민 도시 남부 이탈리아 엘레야의 귀족 집안 출신으로 존경받는 입법가(엘레아 헌법 제정)이자 철학자로 활동했는데 제논을 비롯한 제자들도 엘레아를 주 무대로 활동해 ‘엘레아 학파’라 통칭한다.
2) 철학적 배경:
이오니아의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철학과 신화적 모티브와 논리적 사유를 했던 이탈리아 철학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철학을 완성한다. (피타고라스와 크세노크라테스)
3) 특이 사항: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철학을 시로 표현했고 원본은 남아있지 않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에 관하여』란 책 속에 150행 정도가 인용되어 있다.
4) 소크라테스가 20세일 무렵 파르메니데스는 65세, 제논은 40세 정도에 만났을 거란 추정.
5) 파르메니데스 주장들
그는 서시의 진리편에서 ‘존재의 길’과 ‘비존재의 길’에 대해 썼고 의견편에서는 ‘가사자들 의 길’에 대한 것을 노래했다. 우리는 특히 진리편에 주목해야 한다.
a) 파르메니데스의 사유는 감각이나 경험과 대비되는 이성, 지성의 사고작용으로 이것을 참된 지식을 대상으로 하는 사고작용으로 생각했으며 그는 평생 이러한 사유를 위 한 탐구의 길을 걸었다.
b) 그는 ‘있다’를 탐구하는 길과 ‘있지 않다’를 탐구하는 길을 구분하며 있다, 를 탐구하는 길이 진리를 배우는 길이며 ‘있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사유하는 경우에는 아무런 지식 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c) ‘있지 않은 것’은 알 수 없고 지적할 수 없는 길이라고 하는 이유는 ’있지 않은 것을 우리는 알 수도 없고 지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기에 ‘있지 않은 것’은 앎과 전달의 대상 이 아닌, ‘있는 것은 사유’될 수 있지만 ‘있지 않은 것’은 사유될 수 없는 ‘상대적 부정’ 이 아니라 “절대적 부정”에 속하므로 아예 없는 것, 더 나아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사유될 수 없다.
d) 그의 논증형식에는 ‘모순율’이 숨어 있는데 모순율이란 두 모순 항은 동시에 참이거나 동 시에 거짓일 수 없는 두 모순항 중 하나가 참이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거짓이라는 논 리적 원칙이므로 탐구의 두 길은 동시에 참일 수 없으니 있는 것만을 일관되게 주장하 는 길이거나 있지 않은 것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길이거나 이 둘 중 하나만을 받아 들 여야 한다.
e) 그는 감각과 이성을 구분하고 절대적으로 감각이 아닌 이성만의 사유를 통해 ‘있는 것’ 만을 논변으로 파악하라고 주장한다.
f) 그는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있는 것’의 표지, 특성을 논의한 다.
1) 있는 것은 생겨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
2) 있는 것은 운동, 변화하지 않는다.
3) 있는 것은 분할되지 않는 연속적이고 균질한 하나(일자)이다.
4) 있는 것은 완전하다. (중심으로부터 등거리에 위치해 있는 최고의 완전성은 구형의 하나이다.- 일자의 개념)
g) 이에 따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전제하는 ‘생성 소멸하고, 운동하거나 변화하며, 분할 되고 불완전한 것’은 실재하지도 않고 사유나 지시(언어)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며 오직 ‘생성 소멸하지 않고, 부동 불변의, 연속적인 완전한 하나의’ ‘있는 것’만이 사유와 언어의 대상이 되다고 하며 ‘생성/운동/변화/분리/소멸/하는 현상 세계는 신뢰할 수 없 는 세계로 ’있는 것‘의 진리의 세계만이 참된 인식의 세계임을 강조하는,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 구조의 출발점이 된다. 이러한 ’생성/소멸/변화/운동/분할‘은 감각을 통해 파악 하는 것들이므로 파르메니데스는 감각 세계가 주는 신뢰성을 거부하는 것으로 자연 부정 론, 우주 부정론, 운동 부정론의 길을 선언한 셈이며 진리는 오직 ’이성‘만을 통해 도달 할 수 있는 감각을 통해 보는 현상 세계를 탐구에서 철제히 배재하는 오직 이성(logos) 만을 사용하라고 하며 세상에 여러 다양한 것이 있다는 것은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고 감각에 의존하는 것은 모두 속임수이다라고 주장함,
h) 파르메니데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 했던 탈레스, 아페이론이라 했던 아낙시만드로스, 공기라고 했던 아낙시메네스 등의 밀레토스 자연철학자들을 비판하며 존재가 비존재가 되는(변화) 혹은 비존재가 존재가 되는 길은 제대로 된 진리 탐구의 길이 아님을 주장하 며 가령 물이 공기(나 기타 만물)이 됨을 인정하는 것은 물인 것과 더불어 물이 아닌 것 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므로 모순율을 위반한 것이라 했다.
6) 파르메니데스 적 사고가 가지는 의의
a) 처음으로 추상적 순수 사유의 길을 시작했으며 외부의 감각적 현상으로부터 독립하여 정신(지성)이 활동하도록 하였고 또한 감각적 지각의 활동 결과보다 정신의 활동 결 과를 더 신뢰하고 중시 여겼다,
b) 지각/감각에 의해 휩쓸리지 않은 채, 순수하게 사변적인 이성의 역할을 제시함
c)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으나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길을 끝까지 가서 문제와 직면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 철학의 초기 성장기 파르메니데스를 비롯한 학파 가 던진 화두이다. 이것은 지성만으로 철학을 하라는 플라톤의 이상과도 통한다.
8. 제논(Zeno of Elea, 기원전 490 – 430년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계승했으며, 역설적인 명제들을 제시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 중 제논의 역설이 유명하다. 엘레아 출신으로 텔레우타고로스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파르메니데스와 양자의 연을 맺었다고 한다.
1) 귀류법
귀류법 즉 A를 증명하기 위해서 “만일 A기 아니라면”이라고 가정한 후 이 가정이 불합리한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으로 ‘모든 것은 하나’라고 단언한 스승 파르메니데스를 비판하는 사 람들에게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변호하려 애를 썼다.
많은 이들이 모든 것은 하나(A)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면, 이 전제로부터 불합리한 결론들이 귀결된다고 비판하니까, 이에 대한 한 가지 대응 방법으로 “그렇다면 반대로 모든 것이 여 럿(not A)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 전제로부터는 이러저러한 더 불합리한 결론이 귀결된다. 따라서 A가 오히려 맞는 주장이다”라고 대응하는 방법이다.
2) 제논의 역설
a) 유명한 제논의 역설은 모두 9개가 전해오는데 ‘여럿’의 역설이 3개, ‘운동’ 역설이 4개, 이 외 공간과 감각과 관련된 역설이 각 1개씩이다.
b) 제논의 역설은 지금까지도 여러 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심리학자들의 사유를 자극하 고 새로운 해결 방법을 제안하게 만드는 고전적인 역설이다.
대부분의 역설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무한’개념을 포함하며 역설들에 관련 계속해서 새 로운 방법과 논의 거리가 나오는 것은 더 정확하게는 ‘무한’에 관련해 보다 많은 논의 거리들이 생산된다는 것이다.
그의 사상은 특히 운동하는 것은 그것이 운동하는 장소에도 없고, 운동하지 않는 장소 에도 없다. 는 것이며 유명한 ‘제논의 역설’은 고대 그리스 엘레아의 제논이 '만물은 흐 른다'는 이론을 반대하기 위해 만들어 낸 역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만물은 언제나 정지해 있다'는 건데 다른 사람들이 주위를 가리키면서 "보시오. 이렇게 움직이고 있지 않소!"라고 말하면 "착각이오. 눈의 착각이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3) 제논의 역설의 설명
a) 사람은 결승점을 통과할 수 없다.
올림피우스가 달리기를 할 때, 결승점에 도달하기 전에 1/2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이후 중간점과 결승점의 1/2이 되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후 또 다시 중간점과 결승점의 중간 에 해당하는 지점과 결승점의 1/2이 되는 지점에 도달한다. 결국 무한히 계속되는 중간 점에 의해 결승점에 무한히 가까워지지만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각의 절반 지점 을 통과할 때마다 1분씩 걸린다고 가정할 경우, 끊임없이 가까워지지만 도달하지는 않는 다는 것으로 처음으로 무한 개념이 등장한 셈이다.
b)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가장 유명한 역설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의 주인공 발 빠른 아킬레우스가 영웅의 대표 였기 때문에 그를 예시로 들었다.
아킬레우스가 100m 가는 동안 거북이 10m을 간다고 가정하고, 거북이가 아킬레우스 보다 100m 앞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상태에서 아킬레우스가 거북을 따라잡기 위해 100m 앞으로 갔다고 하면 동시에 거북은 10m를 나아간다. 그러면 거북과 아킬레우스 는 10m만큼 떨어져 있는데, 이때 아킬레우스가 다시 10m를 더 나아가면 거북은 1m를 이동하여 거북이 다시 1m 만큼을 앞서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킬레우스가 다시 1m를 가면 거북은 0.1m 더 나아간다. 따라서 아킬레우스는 아주 미세한 거리만큼을 항상 뒤 처지게 되므로 아무리 가까워져도 거북을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이는 제논이 피타고라스의 정수론을 공격하기 위해 던진 논제였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당연히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았지만, 이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당시의 수학 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역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렇듯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것은 당시의 시대엔 '무한', '극한'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며 무한/극한의 개념이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정립된다.
c) 화살의 역설
화살을 쏘았다. 날아가는 화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어느 점을 지나게 될 것이다. 한 순간 동안에라도 화살은 어떤 한 점에 머무르게 되고 그다음 순간에도 어떤 한 점에 머 무르게 된다. 화살은 항상 머물러 있으니 결국 움직이지 않은 것이 된다. 역시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개념이다.
<다원론(多元論)과 원자론>
이오니아학파로부터의 과제는 다양한 현상 세계를 어떤 하나의 원리로 환원하여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을 극단으로 밀고 간 것이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이었다.
(‘무우주론’ - 현상 세계의 부정) - 파르메니데스 이후 철학자들에게 남겨진 과제는
① 파르메니데스의 성취(즉 있는 것과 있지 않은 것의 분리)를 받아들이면서,
② 탈레스 이래로 지속된 학문의 이상(즉 여럿을 설명하는 것)을 살리는 것이었다.
- 엠페도클레스 --> 아낙사고라스 --> 원자론자(데모크리토스)
9. 엠페도클레스 (아크라가스: 기원전 490~430년경)
1) 출생
현재 시칠리아 남부 해안 아크라가스 출신으로 아크라가스의 정치적 위기 시 민주주의를 옹호한 정치적 인물이자, 뛰어난 수사가이고, 비바람을 부르는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인물. - 자신을 신적 경지에 이른 자로 자처 -> 아이트나 화산의 분화구에 뛰어듬. - 파르메니데스, 피타고라스의 제자로 전해지며, 무엇보다 엘레아학파의 계통을 잇는 철학자로 ‘있는 것’에 대한 주장을 받아들임.
2) 철학
a) 파르메니데스적인 기준을 가능한 한 깨뜨리지 않으면서 양보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 파르메니데스의 단편 8: “그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도, 있게 될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지 금 전부 함께 하나로 연속적인 것으로’ 있기에...”, “있는 것은 있지 않은 것에서 나올 수 없다”. - ‘있는 것’이 생성, 소멸하지 않는다는 엘레아학파의 주장을 수용한다.
- ‘있지 않은 것’이 ‘빈 것’(kenon)이라 이해하고 있고, ‘있지 않은 것’의 존재를 받아들이 지 않는다.
b) 엠페도클레스의 근원(아르케)
* 파르메니데스 일원론과의 차별화: 있는 것은 하나가 아니라 넷이다. 이 네 개의 근원들 은 (파르메니데스의 기준에 따라) 생성, 소멸을 겪지 않고 자기 동일성을 유지한다.
* 네 뿌리(Rhizomata) 즉, ‘물, 불, 흙, 공기’(단편 17.18): 감각의 대상인 현상 세계 의 개별 사물과 그 운동이 있기 이전부터 존재해 오던 것들로, 이 네 뿌리들로 하여금 감각 대상들이 생겨나거나 소멸하며 운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c) 물, 불, 흙, 공기는 아리스토텔레스 용어로 원소, element (stoicheion: ‘철자’라는 말에 서 왔다. 엠페도클레스는 시인이어서 element라 부르지 않고 뿌리(rhizomata)라는 말을 썼다. ⇒ 엠페도클레스가 왜 뿌리(원소)의 개수를 넷으로 잡았는지, 왜 이것들을 ‘불, 물, 흙, 공기’라고 한건지 그의 단편들을 가지고서는 알기 어렵다. 여기에 대한 명확한 설명 은 없다. 하지만 그 의도는 분명하다.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의 파괴적인 결과와 비교해 볼 때,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 현상을 어떻게든 설명해야 했을 것이다. (“혼합과 분리”: ‘있는 것’의 근본 징표를 보존하면서도, 자연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 추구)
d) 엠페도클레스의 혼합과 분리
무언가가 생겨나거나 있던 것이 소멸하지는 않는다. - 우리가 보는 자연 현상은 네 뿌 리들이 서로 ‘혼합’이나 ‘분리’로 이루어진다. - 네 뿌리들 각각은 ‘동등한 힘을 가지고, 각기 서로 다른 권한을 가지고 자신만의 성향을 간직하고 있다.’(단편 17.27~8) - 실체 인 궁극적 원리에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을 접목시켰기 때문에, 엠페도클레스의 네 뿌 리는, 탈레스 이래의 철학자들의 이론처럼 변화하여 다른 것이 ‘되는’(생겨나는) 것이 아 니라, 그 자체로 자신의 정체성을 영원히 유지하고 불변인 채로, ‘혼합과 분리’만 가능하 다 -> 따라서 물이 흙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물/불/흙/공기가 “혼합”되어 이 세계 안의 구체적인 대상을 형성. - 그러므로
① 근원적 차원에서 근원(원소/뿌리)들은 생성, 소멸하지 않고,
② 현상 세계에서만 이것들의 혼합물인 구체적 대상들만이 혼합되고, 분리될 뿐이다. 우 리는 이‘혼합과 분리’의 결과를 ‘무언가가 생겨나거나 소멸했다’고 말할 뿐이다. 비율에 따른 사물과 생물(개체)의 발생⇒ 특정의 비율에 따라 그 뿌리들이 혼 합하여 특정 대상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피타고라스적 존재론 역시 반영. ⇒ 근원 으로서 네 뿌리인 물, 불, 흙, 공기가 합쳐져서 현상에서 지각을 통해 확인되는구체 적인 것들이고, ‘빵’은 1 : 2 : 2 : 1 …… 이라는 식.) 즉, 모든 대상들은 네 뿌리가 일정한 혼합 비율을 갖는다. (밀레토스적 ‘질료’ 개념에 피타고라스적‘비율’ 개념을 접 목)⇒ 이처럼 비율로 대상의 생성 및 대상들 사이의 개체적 특징을 설명하는 것은, (아낙시메네스가 꾀했듯이) 질적인 차이를 양적인 것의 비율로 환원하여 설명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일종의 ‘미립자론’ 사고)
e) 엠페도클레스의 사랑과 불화
[우주에 작용하는 물리적인 힘: 인력과 척력(중력, 전자기력 등)]⇒ 이 세계는 시작, 끝이 없는 영원히 필연적으로 계속되는 순환적 주기 과정을 이룸.
① 생성의 단계에선 사랑이 필연적인 지배원리: 네 뿌리들이 불화의 힘으로 인해 모두분 해되어 제각각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에서, 사랑으로 인한 결속의 힘으로 인해 모 든 것이 조금씩 결합하여 흙/불/물/공기의 혼합이 일어남. 사랑만이 완전히 지배하 는 단계에선 모든 것들이 결합하여 한 덩어리의 구(球)가 됨.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존 재] [현대 물리학: Big Crunch]
② 소멸의 단계에선 불화가 필연적인 지배원리: 이후 불화가 전체를 천천히 둘러싸는과 정이 발생하면서, 다시 이 불화가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가 분리의 과정, 즉 근원들의 분열이 발생. / 불화만이 완전히 지배하는 단계에선 모든 것들이 분리되어 모두뿔뿔 이 흩어져 산재한 상태가 됨. [현대 물리학: Big Bang] - 사랑과 불화로 인하여 혼합 으로 진행하는 과정과 분리로 진행하는 과정은 영원히 지속되는 순환의 과정. [영원 회귀사상]=> 현세는 완전히 결합된 단계와 완전히 분리된 단계 사이의 중간 단계. 사 랑과 불화가 자기가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우주 모든 곳에서 경쟁하는 단계. - 엠페 도클레스는 원소로서의 근원인 네 뿌리(물, 불, 흙, 공기)를 혼합 및 분리시키는 외부 적 힘인 사랑과 불화를 도입.
* 사랑과 불화에 대한 비판: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이러한 엠페도클레스의 사상은 결국 6원소, 궁극적 으로는 2원소 설에 불과하다고 강조. 왜냐하면 모든 것이 결국엔 사랑과 불화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 아울러 사랑과 불화는 일종의 신비적인 힘 이기에, 자연의 물질적 순환과정에 대한 참된 논리적 설명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
3) 진화론의 자연도태 개념:
모든 생명체들은 각각의 유용하고 생존하는 데 유리한 형질들을 지니고 있어서 지금 그 모습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 처음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양의 생명체들이 존재했 었으나, 이 형질을 지니지 못한 생명체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종을 재생산하기에 부적 합한 상태) - 다윈이 ‘자연도태’의 자연적 증거를 찾기 2,300여년 전. “우리는 여기에서 자연도태 원리의 원형을 볼 수 있다.”(다윈) - 엠페도클레스의 기계론 : 아리스토텔레스 의 목적론
10. 아낙사고라스 (클라조메나이: 기원전 510~428년경)
1) 삶: 이오니아에서 태어났지만, 아테네에서 활동했다. (최초의 아테네 철학자) - 페리클레스 와의 친분 때문에 ‘불경죄’라는 죄목으로 쫓겨났다. (불경죄는 아테네가 정치적인 이유 에서 여러 지식인들을 배척하는 주된 수단이 된다.)
2) 파르메니데스 수용
a) 존재하는 것은 일자이다.
- 아낙사고라스는 엠페도클레스와 거의 동시대 사람으로 나이는 많았지만, 철학은 늦게 시작했다. 엠페도클레스로부터 받은 영향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고, 파르 메니데스와 직접 대결한다.
- 아낙사고라스의 단편 1: “모든 사물은 함께 (혼합되어) 있었다.”
파르메니데스의 단편 8: “그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도, 있게 될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전부 함께 하나로 연속적인 것으로’ 있기에...”.
b) 무에서 유가 생겨나지 않는다.
파르메니데스의 단편 8: “있는 것은 있지 않은 것에서 나올 수 없다”. 이 중심 사상을 받아들여, 이 전제 위에서 “있는 것은 있지 않은 것에서 나올 수 없으니, 있는 것들은 모두 이전 있던 것들에서 생겨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 결론: 모든 것들은 함께 혼합되어 있었고, 이 하나의 것
①이 여럿으로 분리된다. 그리고 이때 여럿인 각각의 것들
②은 모두 최초의 하나의 것과 같은 부분들로 구성된다.
3) 씨앗들(종자들)
근원으로서의 “씨앗”: ‘모든 것이 모든 것 안에 들어 있다.’
⑴ 엠페도클레스는 네 뿌리의 기본 성질로 만물을 환원해서, 감각에 드러나는 무수한 질적 차이들을 이 네 뿌리들의 혼합으로 환원한다. (현상 세계와 본질 세계의 불일치) 반면 아낙사고라스에게 모든 질적 차이들은 근원적 단계, 즉 진짜 있는 것들의 차원에서 이 미 존재하고 있다. (현상 세계와 본질 세계의 일치) 빨갛게 감각되는 것은 본질 차원에 서 이미 빨갛던 것이고, 머리카락으로 감각되는 것은 본질적 차원에서 이미 머리카락이 어야 한다. “머리털에서 머리털이 생기고, 살에서 살이 생긴다.”(현상 세계와 본질 세계 의 일치) => “(엠페도클레스!) 대체 어떻게 머리털이 아닌 것에서 머리털이 생기고 살이 아닌 것에서 살이 생길 수 있는가?”
⑵ 아낙사고라스 단편 4에 따르면, 우리에게 현상으로 드러나는 개별 사물은 그 안에근원 인 “씨앗”(sperma)을 가지고 있는데, 이 “씨앗”은 엠페도클레스의 “뿌리들”처럼 네 원 소적 성질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성질들을 모두 그 안에 포함하고 있어서, 모든 사물이 될 수 있다. 씨앗 안에는 뼈도 있고 살도 있으며 머리카락도 들어 있다.
⑶ 그렇다면 어떻게 모든 것을 포함하는 씨앗이 ‘질적으로 서로 다른’ 개별자들이 될수 있 을까?:
① “우리는 모든 개별적인 것들에 모든 질적 차이들이 다 함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중 수적으로 우세한 것을 그 사물의 본성으로 지각할 뿐”(단편 A52)이다. 예컨대 ‘살’의 씨앗은 살, 뼈, 머리카락, 불, 물, 공기, 흙 등등을 모두 포함하지만, 비례상 이것들 중에서 ‘살’을 가장 많이 포함하고 있다. -> 구성 요소는 동일하지만, 구 성비가다른 무한 개의 ‘씨앗들’.
② 그래서 그의 ‘살의 씨앗’과 감각 세계의 ‘살’은 구성비가 똑같다. 즉 부분과 전체의 구성비가 동일하다. -> ‘같은 부분으로 된 것’(homoiomere)
[정리] 아낙사고라스의 근원(아르케): 씨앗들(Spermata)⇒ 씨앗들 안에 여럿[多者]의 맹아가 들어 있음. ⇒ 반면 이 씨앗들은 그 자체로 생성이나 소멸이 불가능하다는 파르메니데스적 존재론을 반영. 무로부터의 발생불가(Nihil ex Nihilo)라는 파르메니데스의 전제를 충족. ⇒ 씨앗들 = 같은 부분으로 된 것들(homoiomerē: 동질소)o 전체는 부분 속에 모두 들어있음
- 현상에서 보이는 살 속에는 전우주의 요소들이 다 들어있음. 살을 제아무리 작게 잘라도 그 안에는 전우주의 요소들이 남아 있음. 동등한 위치의 무수하고 무한히 작은 모든 종류의 씨앗들이 전부 뒤섞여 있는 원초적 덩어리의 상태로서 우주가 있다가, 이 씨앗들이 (우세성에 따른) 비율에 따라 분화하여 이 세상의 대상이 된다. ⇓분화의 원인이 요청됨: 이 원인은 지성(Nous: 정신)
4) 지성
① 아낙사고라스는 모든 것이 모든 것에 같이 있는 ‘원초적인 하나의 우주’를 상정한다
이 우주는 여타의 사물들과 달리 모든 질적 차이들이 ‘완벽하게 혼합되어 있어서 어느 하 나의 질적 차이가 우세를 보이지 않는 평형 상태’이다.
② 이제 이 한덩어리 우주에서 ‘같은 부분으로 된’ 원초적인 ‘씨앗들’을 서로 다른 비율들로 분화시켜 내야 원초적인 씨앗들이 ‘어떤 것의 씨앗’이 될 수 있다. => 서로 다른비율들로 분화시키는 주체가 바로 “지성”이다. - (고대 그리스의 창조 사고관인 (無→有의 개념이 아니라) [‘혼돈(chaos) → 질서(kosmos)’] 개념에 따라 한 덩어리로 뭉쳐 있는 모든 씨앗 들을 분리시켜 정돈, 질서 지움. → 우주(세계)의 창조.
③ 지성을 제외하곤 어떤 것도 다른 것과 완전하게 분리되어있지 않음. → 지성은 외부적인 것으로서 우주의 배후에서 변화를 다스리고 정돈시킴. → 무한하고 자율적이며, 혼합되지 않고 홀로 그 자체로 존재하며, 대립적 성격을 지니지 않음. → 자립적 존재이며, 다른 씨앗과의 결합을 필요로 하지 않음.
④ 만물 중 가장 미세하며 가장 순수: 지성은 모든 대상들 안에 들어 있으며, 그 대상들 의 생성과 소멸을 (씨앗들의 결합과 분리로) 일으키는 원인. - ‘지성’은 ‘가장 미세하 기’ 때문에 원초적인 하나의 우주에 골고루 퍼져 있다. 엠페도클레스의 ‘사랑과 불화’ 의 역할을 아낙사고라스의 ‘지성’이 맡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인)
11. 데모크리토스: 원자론
1) 삶
레우키포스에 의해 창시되고, 데모크리토스에 의해 발전 및 완성. - 레우키포스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음. - 데모크리토스 BC 460-360: 압데라 출생(소크라테스 BC 469-399와 동시대)
① 과학적 사고 – 추론적, 인과적 사고.
② ‘웃는 철학자’ - 마지막에 웃는 자(2,300년 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기독교 등 주류 사 상에 의해 배척됨, 갈릴레오, 보일, 로크 등 과학혁명 이후 재조명됨.)
③ 소크라테스 이전 자연 철학자들 중 다방면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김 (220여개의 단편만 전 승)
④ 원자와 진공: 파르메니데스적 일자 존재를 ‘원자’가 계승하고, 현상을 구제하기 위한 장치 로서 ‘있지 않는 것’으로서 ‘진공’을 상정.
2) 원자와 진공(빈공간)
a) 차 있는 원자와 비어 있는 진공: 그가 ‘있지 않은 것’을 ‘빈 것’으로 놓았다는 것은반대 로 ‘있는 것’은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데 모크리토스에게 근원에는 ‘꽉 찬 것’(pleres)과 ‘빈 것’(kenon)이 있고, 이 둘이 각각 ‘있 는 것’과 ‘있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 분할 불가능: 꽉 차 있다는 것은 비어 있지않 다는 것으로, 데모크리토스는 원자(atom)를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으로 본다. tom이 나눈다는 뜻이고, a-는 부정이다. 나눌 수 없는 것 = 아톰.
3) 제논의 운동 역설에 대한 해결책] - 연장성: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이라면 ‘있 는 것’은 “연장”(extension)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 원자들 차이: 원자들은 질적으로 똑같 다. 다만 서로 간에는 ‘모양’과 ‘크기’에서만 차이가 난다. (모양과 크기 이외에 ‘무게’의 차 이를 인정한 사람은,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아마도 헬레니즘 시기 원자론자 에피쿠로스였 을 것이다.) - 양적인 세계관과 과학의 발전: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물체의 크기, 모양을 재기만 하면 된다. (기하학, 역학 등) 즉 세계는 기하학, 역학 등 물리적 지식으로 환원되어 파악될 수 있다는 서양의 합리적 세계관이 나오게 된다.[질적으로 무수히 다양한 현상 세계를 양적 장치로 환원]
4)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답변: 있지 않은 것도 있는 것 못지않게 있다.
a) 엠페도클레스나 아낙사고라스는 엘레아학파의 주장에 입각해서 ‘있지 않은 것’의 존재 를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지만, 데모크리토스는 ‘있지 않은 것’을 ‘빈 공간’으로 놓고, 이 것을 여럿과 운동의 가능한 조건으로 적극 받아들인다.
b) 원자론자들은 엘레아학파의 일원론에 대항하여 ‘변화’와 ‘여럿’을 특징으로 하는 현상 세계를 구제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c)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있지 않은 것’으로서의 ‘진공’ 개념이다.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있지 않은 것’도 ‘있는 것’ 만큼이나 존재한다. “있는 것만 있고, 없는 것은 없 다”가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이라면, 데모크리토스는 “있는 것도 존재하고 없는 것도 존 재한다”고 주장한 셈이다.
d) ‘있지 않은 것’ 즉 ‘빈 공간’이 ‘있으니까’ 있는 것들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며(운동),‘있 지 않은 것’이 ‘있으니까’ 있는 것을 나누어 여러 개의 있는 것들이 가능해진다(여럿). => ‘있지 않은 것’이 존재해야 “운동”도 “여럿”도 가능해진다.
e) 단편 156에 따르면, ‘있지 않은 것’이 ‘있는 것’보다 존재의 측면에서 덜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봄으로써, 엘레아학파와 확연히 선을 그어놓고 있다.
5)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현상 세계의 구제)
a) 엠페도클레스의 현상과 본질의 불일치가 데모크리토스에게도 이어진다. 데모크리토스는 이를 거시 세계, 미시 세계로 구분하였는데, 실재 감각되는 거시 세계(현상세계)의 무수 히 많은 다양성들은 미시 세계의 ‘원자’와 ‘진공’으로 모두 환원된다.
b) 내재적 성질과 외재적 성질: 특징 자체를 두 가지로 나누는데, “모양, 만나는 방식,
방향”은 원자 자체가 내적으로 갖는 특징이고 “색, 맛, 냄새”와 같은 성질들은 원자의 결합이 인식 주관에 드러나는 특징이라고 보았다. 원자 자체는 색도 맛도 냄새도 없다. 이것들이 결합하면서 ‘푸른색’으로 보이고 ‘단 맛’이 나며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이 다.(질적 차이를 양적 차이로 환원해서 이해함) => 근대 보일과 존 로크의 primary & secondary qualities 구분 및 설명.
12. 소피스트
1) 소피스트란?.
소피스트(sophistes)라는 단어는 ‘지혜’(sophia)나 ‘지혜로운’(sophos)이라는 단어들과 연관 된‘지혜로운 자’를 가리키는 일반명사.
2) 발생 배경: 정치적 격변기와 민주주의
⑴ BC 5세기 중엽,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승리. ‘반-페르시아 동맹(델로스 동맹)’과 아테네 를 중심으로 그리스의 부가 집중됨. (페르테논 신전, 아테나 여신상) “우리가 이룩한 제 국의 표식들과 기념비들은 진정 위대한 것입니다. 미래 세대들은 현세대가 지금 우리 옆 에서 경탄하듯, 그렇게 우리를 경탄할 것입니다.” (페리클레스 연설)
⑵ 아테네를 중심으로 민주주의 발전, 정착되면서, 하나의 특수한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부각됨. “우리의 헌법은 민주주의라 불립니다. 왜냐하면 권력이 소수의 손이 아니라 대다 수 시민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이해 관계가 문제가 될 때, 만인은 법 앞에서 평등합니다. 공적인 책임을 지는 자리에 누구를 앉힐 것인가가 문제가 될 때, 특정한 계 층에 속하는가 아닌가는 고려되지 않으면 오로지 한 인간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 력이 있는가“만이 문제가 됩니다.”=> 정치적 집회나 재판소의 배심원들 앞에서 설득력 있 게 말하고 토론하는 능력. (대중의 분위기를 자신에게로 끌어오는 능력: 설득술, 웅변술, 수사술)
⑶ 토론과 아름다운 논증을 사랑함. “학생: 자, 여기에 세계지도가 있죠? 바로 여기가 아테 네입니다. 농부: 치워라. 자넬 못 믿겠어. 배심원들은 어디 있나?”
⑷ 민주주의가 제공한, 그래서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설득력 있 게 말하고 토론하는 능력”을 갖춰야 함. => 이런 지적인 자기 확장의 요구에 응하기 위 해,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가진 자들이 그리스 여기저기서 아테네로 몰려듦. 이들이 바로 “소피스트들”.
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소피스트관(觀)
① 플라톤: 토론에서 진정한 진리에 관심 없이, 어떻게든 이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만 열중한 자들. (‘부유한 젊은이들을 포획하는 사냥꾼’, ‘덕을 상품처럼 매매하 는 자’, ‘쟁론술을 일삼는자’, ‘철학의 야바위꾼’ => “궤변론자”)
② 아리스토텔레스: “소피스트들의 재주는 실재에 대한 인식 없이 지혜롭게 보이는 데에 있고, 그들은 바로 외관상으로만 지혜로우면서 그 거짓 지혜를 팔아 돈을 버는 자들이다.”
* 19세기 소피스트에 대한 객관적인 재평가가 시작됨
ⓐ 플라톤의 대화편 내에서도 소피스트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새로운 연구가 대두됨
ⓑ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소피스트와 대비하려던 플라톤의 입장이 그의 탁월한 문학적 기법을 통해 강조되는 바람에 그의 의도 이상으로 소피스트가 오해받은 측면이 있었다는 해석
ⓒ 플라톤 대화편 거의 대부분에서 소크라테스의 사상적 대립자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역설적 으로 플라톤이 그들의 주장을 중요한 철학적 논쟁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었음을 보여줌 (참 고로 플라톤의 저술 내에서 데모크리토스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번도 없음)
3) 소피스트의 철학적 특징
① 타-문화(他文化)와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한 지역(아테네)에서 믿었던 종교, 윤리, 생활 방식, 법전 및 관습 등 그들이 불변의 원리로 믿었던 것들이 일종의 상대적으로만 진리 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됨.
② 소크라테스 이전 자연철학자들의 ‘삶과 동떨어진’ 주장들. -> 외부의 자연과 세계에만 관심을 기울이다 상식적 세계관의 건전성이 위협받게 됨. -> 그에 대한 반성과 반발의 결과로서 탐구 대상이 외부 대상에서 인식과 행위의 주체로 전환됨.
⑴ 프로타고라스의 상대주의 (인간 척도설)
① 같은 바람에 대해 어떤 사람은 차갑게 느끼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느낄 수 있음. 프로타고라스는 이 경우 그 바람이 이 사람에게는 ‘실제로’ 차고 저 사람에게는 ‘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함. => 감각 지각은 모두 참이며, 각자가 그것에 대한 기준. (감각적 상 대주의)
② 나아가 감각뿐 아니라 일체의 판단, 특히 윤리적, 법적 판단의 영역에서도 참의 기준은 각 자가 됨. => 범죄 행위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판단 내릴 수 없음. (도덕적 상대주의)
③ 진리란 은폐되어 있어 발견을 기다리는 하나의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서 누 구나 그 한 조각을 얻을 수 있는 것.
* 플라톤의 비판: 소피스트의 주장은 ‘자기 논박적’(자기 모순)임.. 각자가 판단하는 것이 각자 에게 참이라면 아무도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프로 타고라스가 다른 사람보다 현명하다고 주장할 수 없고, 그가 “다른 사람을 교육하는일”도 있을 수 없음. => ‘인간은 모든 것의 척도’라는 그의 주장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거짓이 되므로 받아들일 수 없고 교육하 거나 설득할 수 없게 됨.
③ 프로타고라스의 의도: 객관적 참이란 성립할 수 없고, ‘유용성’에 대해 고려해야 함.. 판단 이 바뀌는 것은 보편적 진리(객관적인 참, 거짓)가 아니라 ‘설득에 의해서’ 이루어 짐. 따라 서 생각을 바꿀지 말지는 그렇게 하는 게 ‘유용한지 불리한지’로 결정해야 함.
⑵ 고르기아스 허무주의:
레온티노이 출신의 고르기아스는 규준(kritērion)을 폐기하는 자들과 같은 집단에 속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프로타고라스를 따르던 자들과 같은 전략을 따르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있지않은 것(비존재)에 대하여 혹은 자연(본성)에 대하여』라는 자신의 저술 안에서 세 요점들을 순차적으로 구성하는데, 우선 첫째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로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셋째로 ‘설령 이해된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전달될 수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섹스토스 엠페이리코스, 『학자들에 반대하여』 7권 65~87: DK82 B3)
① 일상 세계를 무시하는 철학(‘감각에 대한 회의’)이 너무 지나쳤음을 보여주기 위해 제시 한 논증이었을 수 있다.
② 혹은 이른바 어떤 ‘진리’도, 그것이 표면상 아무리 확실하게 보여도, 자신과 같은 능숙한 교사에게 논박당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을 수 있다.
③ 혹은 토론을 즐기는 이들에게 단순한 지적 유희를 제공한 것일 수 있다. => 철학자들이 궁극적인 진리에 관해 말하고 논변한 방식에는 뭔가 ‘결함’이 있음을 말하고, 이를일깨우 고 있다. “당신들의 결과를 받아들이면, 이런 부조리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라고 말이다.
④ 고르기아스의 논변의 목적: 일상의 경험과 상식을 포용할 수 있는 철학으로의 관심의 전 환.
4) 반면 소피스트의 이런 특징들로 인해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비판이 이어지고 있으나, 소피 스트 는철학의 대상을 외부 대상(객체)에서 주체, 즉 자연 현상에서 인간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또한 현대에서도 적극적으로 차용되는 문화적, 사상적, 인종적, 정치적 상대성의 중 요성과 의미를 논했다는 점에서 진중히 살펴보아야 함.
5) 법과 자연. 사회적 규범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보다 근원적으로 “규범 체제 일 반”의 정당성, 즉 도대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규범 체제가 어떤 이유로 인간에 구속력을 갖는 것인가?. 여기에 다양한 답들이 제시되는 과정에서 “법(nomos)과 자연(physis)”의 대 비가 부각됨. (법: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 / 자연: 자연 그대로의 것)① nomos는 nomizetai(믿어지다, ~라고 여겨지다)가 어원, nomizetai는 nemetai(분배, 할당되다)가 어 원. -> nomos는 어떤 사회에서 믿어지고 그것에 따라 옳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두루지 칭하는 단어로 전통, 관습, 행위 규범, 법규 등을 포괄함. “법”으로 통칭. ② physis는 phyomai(자라다)에서 파생된 명사. 그 뿌리에는 따라서 동적인 측면, 즉 역동적이고변화하 는 세계와의 관련성이 있음. “그 안에 운동과 정지의 원리를 갖는 것”(아리스토텔레스)
⑴ nomos의 두 가지 의미
① 법은 할당되고 배당되어 옳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그 의미 속에 “어떤 지적 주체”가 전제됨. 종교가 사회 규범 체계를 형성한다면, 그 주체는 신이 됨. -> 신으로부터 유 래하고 신의 권위에 의해 뒷받침되는 법, 그래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법의 관념이 성 립하게 됨.
② 반면 다양한 관습과 규범 체계를 가진 도시국가들의 존재. 이는 신으로부터 유래한 법, 그래서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구속력을 갖는 법과 충돌.
⑵ 법의 근거와 원천에 관한 설명: 프로타고라스 위대한 연설
① 국가 성립 이전 자연적 상태와 그 이후 상태 사이의 대조. 전자는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반면, 후자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내적 능력(부끄러움, 정의)이 발현되어, 국가에 는 질서를 인간들에게는 우애를 제공한다. (‘자연’은 혼돈, ‘법’은 질서)
②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편 능력(신의 선물)의 기초 위에서 ‘구성원들 간 상호 합의를 통 해 성립된 국가의 법’이 그들에게 정당한 구속력을 갖는다는 점. -> 자연 상태로 전락 하지 않으려면 상호 합의로 만든 법에 복종하라!!!
③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최초의 이론적 정당화(최초의 민주주의)
(3) 법과 자연의 대비: 안티폰
① 법의 상대성: 법적인 것들에 연관된 이로움과 해로움은 상대적. 누가 지켜 볼 때는 지 키면 이롭고, 어기면 해롭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으면, 이롭거나 해롭거나 하지 않음. => 법의 영역에서는 ‘누군가 지켜볼 때’만 신경 쓰면 이롭게 살 수 있다.
② 자연의 절대성: 자연적인 것들과 관련, 이로움과 해로움은 절대적. => 자연 영역에서 는 보는 사람과 무관하게 그에 따라 사는 것은 이롭고, 거스르는 것은 해롭다. (자연 에 대한 옹호
(4) 법과 자연의 대비: 트라쉬마코스
“정의란 다름 아닌 더 강한 자의 이로움(이익, 편익)일 뿐”(국가 336b)
① 거의 노골적, 도전적 표현들은 당대 전통 윤리 규범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대변함. 전통적이고 상식적 도덕관을 뒤흔들 필요가 있었음.
② 모든 도시국가에서 강자는 지배층이고, 지배층은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법을 제정하기 마련임. -> 정의란 지배층에게 이로운 것, 피지배층에게는 해로운 것.
③ 부정의야말로 피지배층에게 이롭고, 지배층에게 해로운 것. “정의는 남 좋은 일이고, 자 신에게는 되었던 식으로, 그처럼 이것들도 분배를 할까요? 그것들은 다음과 같이 분배 되었습니다. 여럿의 개개인들에겐 의술을 지닌 자 한 명이면 충분하고, 다른 장인들도 찬가지고요. 제가 정의와 부끄러움도 인간들 사이에다 이처럼 배치할까요, 아니면 모두 에게 분배할까요?” 그러자 제우스가 말했다네. “모두에게, 그래서 모두가 나누어 갖게 하여라. 다른 기술들처럼 만약 소수만이 그것들을 나누어 가진다면 도시는 생기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그리고 부끄러움과 정의를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자는 도시의 질병으로 간주하고 사형에 처하는 것을 내 이름의 법으로 세우도록 하라.”(플라톤, 프로타고라스 320c~322d)“인간이 정의를 자신에게 가장 이롭게 사용하는 것은, 지켜보는 사람이 있 을 때는 법들을 존중하지만, 지켜보는 사람이 없을 때는 자연적인 것들을 중요시할 때 이다. 왜냐하면 법적인 것들은 덧보태진 것들인 반면, 자연적인 것들은 필수적인 것들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적인 것들은 합의된 것이지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 아닌 반면, 자연적인 것들은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지 합의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진리에 관 하여단편A, B44)- 90 -해가 되는 일이며, 부정의는 피지배자에게 이롭고 지배자에게 해가 되는 일”(343c)”
④ 통속적 정의를 거부하고 통속적 부정의를 옹호하는데, 후자가 바로 사실상 자연에 따르는 정의라 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 (법에 대한 비판과 극복으로서의 자연 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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