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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뻐꾸기 울음소리에서 태어난 여자의 탄생 비화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2. 7. 19.

  지난 모든 시간이 그리운 시절이다. 페친 남덕현작가의 글을 읽다가 예전에 보관한 내 이야기를 꺼낸다.

 

 

 

 

  가진 것이란 튼튼한 몸과 살가운 마음뿐인 한 사내가 있었답니다. 사내의 아버지는 형님을 대신해 징용을 갔고 아이가 없던 사내의 큰아버지는 사내를 입양해 호적에 올리고 대궐 같은 기와집과 전답을 물려준다는 약속을 했죠. 그러나 약속했던 사내의 큰아버지마저 징용에 끌려가자 사내와 큰어머니는 그 넓은 땅과 기와집을 지켜야만 했답니다. 어렸던 사내는 큰어머니를 어머니 마냥 떠받들었지만 큰어머니는 사내가 귀찮았고 그에게 물려줄 재산이 아깝기도 했겠죠. 그러나 또 농사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도 했으므로 비록 자신의 호적에 올린 조카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기에 사내를 농사짓는 머슴 마냥 부렸다죠. 사내는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내내 머슴처럼 온 전답을 돌보며 먹는 것이란 보리밥뿐이었답니다.

그러나 사내는 언젠가 자신이 기와집과 전답을 물려받을 후손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묵묵히 큰어머니의 구박을 견디며 일하다 입대했고 제대를 하자마자 큰어머니의 집으로 곧장 향했죠.

  사내가 큰어머니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집은 큰어머니의 친정집 식구들도 득실거렸고 사내는 큰어머니가 그동안 일한 품삯이라며 내민 쌀 한 말을 등에 지고 몇 백 리 길을 걸어 자신을 낳아준 친어머니를 찾아 나섰답니다. 동생을 데리고 개가를 했던 어머니 또한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군식구가 부담스러울 처지에 사내가 나타났으니, 사내는 군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지고 온 쌀 한 말을 어머니에게 넘겨주고 동네 아들이 없던 과부댁 곁방에 세를 들어 살며 날품팔이를 시작했답니다.

  묵묵히 일하던 사내를 지켜보던 당시의 교회의 권사님이었던 과부댁은 사내에게서 교회에 다니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서 같은 동네의 딸처럼 여기던 홀아비의 여식에게 중매를 섰답니다. 사내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키지 않는 교회에 나가 꾸벅꾸벅 졸기도 하며 선을 본 처녀를 오매불망 그리워했겠죠.

  그러나 처녀의 아버지는 당최 ** 두 쪽밖에 없던 사내에게 금쪽같은 딸을 줄 수 없다며 완강하게 버텼답니다. 사내와 처녀는 맞선 자리에서 한 눈에 서로에게 반해 가슴앓이만 하다가 꾀를 내었죠. 칠흑 같은 늦은 밤, 어둠을 틈타, 초저녁잠에 녹아떨어진 홀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사내는 처녀의 오두막 뒤 대숲에 숨어들어 뻐꾹, 뻐꾹뻐꾸기 울음소리를 냈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처녀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잠든 아버지의 고른 숨소리를 확인한 후에 도둑고양이처럼 빠져나가 뻐꾸기로 변해버린 사내와 雲雨之情(운우지정)의 밤을 보냈다죠.

  그 결과로 처녀의 배는 불러왔고 처녀의 아버지는 배가 불러오는 가엾은 여식을 두고 볼 수 없어 드디어 **두 쪽밖에 없는 사내와의 혼사를 허락하고 말았답니다. 사내와 처녀는 정안수를 떠놓고 집안 어른들을 모신 간략한 혼사를 치루고 사진방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의식을 마치고 한 집 살림을 시작해 점점 부풀어 오르는 새댁의 배만큼이나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건만 어느 날 밤, 친구들과 마실을 나가 돌아오다 새댁이 소똥을 밟아 넘어지는 바람에 그만 유산을 했더랍니다. 그래도 건강한 몸이라 새댁은 몇 달 뒤 또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번은 친구가 까꿍 놀래키는 장난을 치다가 또 유산을 하고 말았다죠. 실의에 빠진 새댁과 사내는 열심히 또 아이를 만들었는데 결혼한 지 3년 만에 오매불망 원하던 첫 딸래미를 보았답니다.

 

  어느 날 말이죠. 울 엄마가 그러데요.

  “니는 뻐꾸기가 만들었다야.”

  "하하하하핫! 그렇게 소중하게 낳은 아이를 왜 그렇게 방치했소?”(저는 다정하지 못한 제 품성은 세 살 이전 어린아이를 팽개치고 품삯을 받기 위해 들로 산으로 헤맸던 어머니 탓이라고, 그 트라우마가 이렇게 괴팍한 인간이 되게 만들었다고, 오뉴월에 씨도 안마를 변명을 여지껏 하네요.)

  “그때는 당장 내일 끼니를 걱정혀야 할 만큼, 가난했으니께. 느그 아부지도 나도 늘 남의 논밭으로 삯일을 가여 안혔냐. 그려도 니 외할비는 니가 배고프다고 울적마다 들로 산으로 꼬박꼬박 술에 절어 비틀거렸어도 니를 엎고 달려오시곤 혔다야. 몸은 고단혔어도 니헌티 젖을 물리고 나면 그리 포듯혔어야.”

  “근디 말이요. 뻐꾸기가 만든 난 왜 그렇게 노래를 못할까잉?”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니의 애창곡인 산장의 여인을 함께 부르던 저는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그 알지 못할 뜨거운 어떤 것을 재우기 위해 또 뜬금없는 투정을...

 

  저는 이렇게 끝없는 수다를 피우면서 이 우주상의 누군가와 연결되어있다는 이 느낌이 참으로 고맙고 기쁘고 신기하다. 네가 없는 나는 존재치 않는다는 사유가 감동이며 하나님은 왜 저에게 이런 감동까지 선물하셨을까? 가만 묻기도 한다. 무에그리 제가 예쁘다고!!!

 

  살아있는 하루하루가 더없이 소중하고 소소한 것들에 감탄하는 것은 내 시절이 막 익어가는 10월 초순이나 중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