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즈

Chet Baker - blue room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7. 6.

Blue Room - Chet Baker/ Paolo Fresu & Omar Sosa - YouTube
https://m.youtube.com/results?q=blue%20room%20chet%20baker%20vocal&sm=12


새벽 내내 열심히 썰을 풀다가 하도 심심도 혀서 친구 Chet 에게 식은 커피 한 잔 대접하며 그의 웅얼거림에 흠뻑 빠져보았답니다.

Chet Baker - blue room

We'll have a blue room
A new room for two room
Where ev'ry day's a holiday
Because you're married ro me
Not like a ballroom
A small room, A hall room
Where I can smoke my pipe away

We will thrive on, keep alive on
Just nothing but kisses
With Mister and Missus
On little blue chairs
You sew your trousseau
And Robinson Crusoe
Is not so far from worldly cares
As our blue room far away upstairs!

  Chet의 목소리는 가희 환상적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그의 연주보다는 목소리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술과 마약에 찌들어 쾌락의 도취 속에 헤매다 결국. 어쩜 내 안에도 그와 같은 잠재된 강한 욕구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공. 한없이 게으르고 쾌락적인 삶에 도취되어 차라리 현세와 격리돼 나만의 공간에 살고 싶은 이 개떡 같은 욕구.
  AC8.
  아마 영원히 환상 뿐임을 알지 못한다면 오늘 이 자리에 없겠죠. 휴우, 얼마나 다행인지... 그의 읊조리는 듯한 blue room의 풍경을 그려봅니다. 그대와 나의 공간으로 확대됩니다.
Chet의 노랫말에 내 식의 호흡을 불어 넣습니다.


그대와 나의 사랑 때문에
매일 황홀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작은 방
그대의 무릎을 벤 내 뺨 위에서
한 줄의 시를 읊고
한 소절의 노래를 부르는 그대
불루 소파 위에서
오직 여자와 남자로서 나누는 우리의 입맞춤은
그대와 나를 가슴 뛰게 하리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은 물리치고
그저 그대와 내가 그리는 소소한 일상에 취한
그런 사랑을 하리
그런 사랑만을 하리.

히힝! 흉보지 마삼. 직설적인 해석은 맛이 안나니께...

*

  장과장과는 집 방향이 같았다. 신촌이었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신촌의 여자대학이 가까운 옥탑방. 신촌의 공기는 세상 어느 곳보다도 신비였다. 식당 구석진 방을 전전하다 집을 나온 칠년 만에 얻은 안식처였다. 월세가 다소 부담이 되었지만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는 사실, 어떤 음식 냄새도 술 냄새도 없는. 하여 가볍게 하늘이라도 날 것 같은 첫날. 눈송이가 풀풀 내렸었다. 선물 같은. 곧 다가올 산타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옥탑방 바로 앞 골목에 작은 재즈카페가 있었다. ‘blue room’이라는 카페의 이름이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자극하는지 카페 주인장도 알았을까? 새어 나오는 음악들은 늘 나를 비틀거리게 했다. 마치 ‘조금은 타락해도 좋아요’ 속삭이는 것처럼. 월급을 타는 날 혼자서라도 오고 싶었던 장소였다. 신촌을 꽉 채우던 여자 대학생들처럼, 잠시의 착각이나마 나도 그들 중 하나이기를. 세상에서 그들처럼 멋지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없을 것 같았다. 그 시절엔. 하지만 그 세계는 내가 속한 세계가 아니었고 나는 그 세계로부터 영원히 괴리될 수밖에 없는 내 인생의 참담함에 늘 허우적거렸다.
  눈이 푹푹 빠질 정도로 폭설이 내린 날. 버스는 마비되었고 지하철엔 타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몇몇은 폭설 속을 함께 걸었다. 장과장은 내 옥탑방에서 한 블록 떨어진 주택에서 산다고 했다. 어머니와 함께. 걷기에는 먼 길이었지만 동행이 있어 좋았다. 더 좋았던 것은 처음으로 골목 재즈카페에 진입했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차나 한 잔하며 몸을 녹이자는 장과장의 말에 생각난 곳이었다. 폭설을 맞으며 새어나오는 거친 남자가수의 목소리가 그날따라 무척 유혹적이었다. 손님은 없었다. 주인장은 머리에 눈을 쓰고 들어서는 우리에게 재빨리 수건을 내밀었다. 수건을 받아든 장과장이 내 머리를 먼저 닦아 주었다. 깜짝 놀라 얼굴을 드니 그가 웃고 있었다. 순간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왜 그랬을까? 낯선 배려. 오랜만에 느껴본 다정함이랄까?
  “엘피군요.”
  “네. 좋죠?”
  장과장은 주인장에게 아는 체를 했다. 고깃집 홀 메니저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엘피라는 단어조차 나는 생경했었는데.
  “이런 날 특히 좋군요.”
  “네. 그렇죠.”
  “에스프레소 도피오”
  그때 장과장은 낯선 말을 던졌다. 잠시 멍해왔다. 주인장은 내 차례라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같은 걸로요.”
  다행히 들키지 않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커피라면 아메리카노 정도였었다. 솔직히 말하면 카페라는 곳을 처음으로 경험한 날이었으므로. 주인장은 주문한 커피를 준비하기에 바쁘면서도 장과장의 대화에 열중했다. 수동 그라인더를 작동하는 그가 힘겹게 보였다. 하지만 막 갈아놓은 커피에서 풍기는 냄새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이었고 몽환적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때의 커피냄새를 잊을 수 없다. 아니 그때의 커피의 맛을 잊을 수 없다가 더 적확하다.
  “제일 좋아하는 트럼페터입니다. 하지만 목소리 또한.”
  주인장과 장과장은 오랜 지인인 듯 말을 섞었다. 처음 그들의 언어는 나에게 외계어였다. 단지 흐르던 노래의 한 제목이 카페의 이름과 같은 ‘불루 룸’이라는 것밖에 기억할 수 없었던. 왠지 내 옥탑방과의 연관성이 너무 생생한 느낌이랄까.
  “세상 모든 것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우리들의 작은 방에서,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은 물리치고, 그저 그대와 내가 그리는 소소한 일상에 취한, 그런 사랑을 하리, 그런 사랑만을 하리.”
  씹기라도 하듯 커피를 홀짝거리며 장황한 설명을 하던 장과장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날이었다. 다음해도 또 다음해도, 오랫동안 폭설이 내리면 가수의 목소리와 장과장의 흥분된 표정이 오버랩 되었던 것을. 그날 이후 장과장이 적어주었던 쳇 베이커라는 트럼페터에 대해 팬이 되고 말았던. 연주보다 오히려 거친 목소리에 끌릴 수밖에 없었지만. 장과장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절대 다시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 그가 유부남이었더라면 커피조차 마시지 않았을 것을. 인두에 지진 흔적. 그 흉터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이 계속되었는지. 다시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리. 아마 폭설처럼 내 첫사랑은 그렇게 찾아왔고 상처만 남기고 간 것일까? 쓰고 아린 기억이었다.
  상처에서 벗어난 시점에 이르면 오히려 폭설이라도 내렸으면 다시 바라게 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고비사막처럼 건조한 모래바람을 맞는 삶보다, 고통이라도 폭설 같은 사랑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 나은지 모른다. 인생은 참 신비하다. 상처를 잊은 순간부터 또 새로운 상처를 기다린다는 사실. 이젠 더 이상 쳇 베이커의 타락한 인생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해주는 노래가 싫지 않다는 사실. 아니 미치게 다시 쳇 베이커가 좋아졌다는 사실은 폭설도 모래바람도 인생엔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까닭일까. 어느 한 쪽에 너무 오래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있다면 말이다. <미래의 소설 - 생일상 차리는 여자의 한 대목>